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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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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H이야기 -1, 2(우리들의 여행)


BY hl1lth 2001-04-03

우리들의 여행-1.


아주 오래 전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 일이다.
방학이 오기 한 두 달 전쯤이 되면 나는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보러 다니곤 했었다.
슈퍼에도, 남의 집일도, 식당에도 어디서든
일자리만 생기면 그 한달 간은 열심히 일하곤 했는데
그것은 방학동안 아이들과 박물관이며 연극 관람이며
여행 등을 다닐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남편이 벌어 오는 돈으로 사용 할 수도 있는 일이긴 했지만
어쩐지 혼자 애쓰는 남편에게 미안해서
"초등학교까지는 딴 마음 먹지 말고 집에서 있으며 아이들 챙기라"는
남편의 말을 어기고, 방학동안 아이들과
쓸 경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며 내가 직접 벌었던 것이다.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한달 간 부지런히 일한 돈으로
방학이 되면 해외여행은 못 갔어도 아이들과 함께
여름 방학엔 산행이며 박물관 답사 등을 주로 할 수 있었고
겨울 방학이면 스포츠 한가지씩을 가르치고 나머지 돈으로
연극이나 영화 등을 관람하거나 서적에서 책을 구입해
읽게 하곤 했었다.
하루의 일정이 정해지면 그것에 소용되어질 최소한의
경비만을 가지고 움직였기 때문에 난 늘 돈 관리에 신경을
쓰곤 했었는데 처음엔 그저 먹고 노는 일이라는 생각을
갖고 따라 다니는 아이들 때문에 짜증이 날 때도 있었다.
어느 여름 날, 경복궁에 있는 박물관을 구경하러 간 적이
있었다. 집과는 가까운 거리에 있는 곳이었으므로
아침 일찍 서둘러 움직이다 보면 점심은 집에 와서
먹어도 되겠거니 생각했는데 날이 더운 탓도 있긴 했었겠지만
그날 따라 아이들이 왜 그리도
먹고 싶은 것이 많은지. .
아이스크림, 콜라, 햄버거, 음료수 등등. . .
"그래, 너희들 돈 무서운 줄 한 번 알아 봐라"
속으로 작정을 한 나는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군소리 없이 모두 다 사주었다.
흐뭇한 표정에 만족한 웃음.
뭔가를 보고 배웠다는 것보다는
뭔가 맛있는 것을 먹고 놀았다는 데서 오는 듯한
만족한 아이들의 얼굴에 띤 미소를 보며
아이들 앞에서 난 주머니를 뒤집어 털어 보였다.
사달 라는 것을 죄다 사주고 나니 주머니엔 달랑 세 사람이
타고 갈 버스차비 에서도 200원이 부족한 돈만이 남아있었다.
"애들아, 차비가 200원 부족하다. 어떻게 하니?
걸어갈 수도 없고. . . 할 수 없다.
자 이리로 와서 모자 벗고 앉아라."
경복궁 출입구 쪽으로 자리를 잡은 난 모자를 벗어
앞에 두고 걸인처럼 앉아 보였다.
"뭐해? 앉으라니까?"
황당해 하는 아이들에게
"생각 없이 다 쓰고 놀았으니 구걸이라도 해야
집에 갈 거 아니야, 자 이리로 와서 모자 앞에 놓고 앉아"
너무도 당연한 듯 구걸을 권하는 내 모습에
거의 울음이라도 울을 듯한 아이 들이 나를 양쪽에서
팔을 잡으며 일으켜 세웠다.
"엄마, 그냥 걸어가자~"
사정하는 아이들에게 못 이기는 척 끌려 나오며
아이들 모습을 보니 그야말로 어깨가 축 늘어 진 것이
보기에도 안 돼 보였다.
그날 이 후 아이들은 자신들의 주머니엔 단 돈 1000원 씩
이라도 비상금을 챙겼고,
"엄마, 오늘 얼마 가지고 나갈 건데?"하며
그날 쓰여질 돈에 관하여 생각하고 절제 할 줄 알게 되었다.
나가면 먹고 논다는 생각에서, 뭔가를 느끼고 공부하기 위해
나가는 것임을 차츰 깨닫게 된 두 딸들은
놀러 나간다는 생각으로 돌아 다녔던 박물관을
조그마한 노트에 연필까지 챙겨 뭔가를 배운다는 진지한
자세로 임하게 되었고,
점심 값으로 단 돈 1000원을 사용 할 수밖에 없는 날에도
붕어빵 한 봉지를 사서 나눠 먹을 망정 불평하는 일이 없었다.
오히려 "우리 음료수 사 먹을까?" 하고 묻는 나에게
"아~니, 엄마. 우리 그냥 물 하나 사서 셋이 나눠 먹어요."
하며 나를 말렸다.
어쨌든 서울의 전철역 근처에 있는 박물관이란 박물관은
죄다 휩쓸고 돌아다니며 그렇게 지난 여름방학을 보냈던 우리들에게
겨울방학이 오자 뜻밖에 경주를 다녀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부산 근처의 군포로 이틀간 출장을 가게 된 아빠가 우리를 동행하여 함께
데리고 가기로 한 것이었다.
아빠가 일을 보실 동안 셋이서만 경주를 돌아다닌 다는 것이
쬐끔 미안하기는 했지만 일부러 경비를 들이지 않고도
여관비와 교통비와 식비일부가 해결된다는 사실은 나를 행복하게 했고
염치 불구하고 일 때문에 떠나는 아빠를 따라 비행기를 타고
부산근처의 군포로 가게 되었다.
처음 타보는 비행기가 신기하기만 했던지
아이들은 조금은 흥분한 듯 볼이 발그래 해졌고
비행기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자 긴장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막상 비행기가 하늘로 높이 솟아오르자,
노을이 지는 하늘을 발 아래로 바라보며,
밑으로 펼쳐지는 산이며 도시의 모습들이
깨알처럼 멀어지는 모습에 즐거워했다.
저녁에 군포에 도착한 우리는 여관을 잡고 모처럼 만에
아빠와의 나들이를 기꺼워하며 근처의 회 집에서 저녁을 먹고
내일 돌아보게 될 경주를 상상하며 이야기꽃을 피우느라
밤이 늦도록 행복해 했고, 새벽이 되자마자 저녁엔,
아빠와 다시 이곳 여관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군포를 떠나 부산 역에 도착했다.
오늘의 경비로 거금 10만원을 계산한 우리에게는 우선 경주까지의
왕복기차표를 끊고 다시 군포로 돌아가기 위한 차비를 제하고
아침으로 햄버거 한 개씩을 사서 먹으니 아이들의 비상금까지 죄 합쳐
7만원의 돈이 수중에 남게 되었다.
하루 경비로 기껏해야 만원에서 이 만원만을 쓰고 다니던
우리였는지라 7만원이란 돈은 어쩐지 오늘 하루 경비론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고 공연히 마음이 넉넉해진 세 사람은
경주로 가는 기차 안에서
차창 밖으로 스치고 지나치는 경치들을 눈으로 쫓으며
약간은 설레임에 콧소리를 흥얼거리고 있었고,
오전 10시쯤 경주 역에 도착을 했다.
경주에 관한 안내도가 그려져 있는 곳으로 발길을 옮기려는데
관광을 안내하며 영업을 하시는 택시 기사 님 한 분이 우리 앞을
가로막고 서셨다.
"관광 오셨어요?"
"네, 저희는 버스로 석굴암에 가 보려 구요."
"이 곳까지 오셔서 석굴암 만 가시게요?
그러지 마시고 10만원에 경주 일주를 하시고 가시지 그러세요.
아이들 공부 겸 마음먹고 오신 것 같은데,
석굴암 빼고 다른 명소들만 약 13군데 정도 볼 수 있는 코스랑,
석굴암 포함해서 7군데 정도 가 볼 수 있는 코스는 10만원,
그냥 명소 8군데 정도 돌아보는 데는 7만원인데요,
제가 하루종일 다니면서 같이 움직여 드리니까 공연히 고생하시고
몇 군데 들러 보지도 못하는 것 보단 나을 겁니다."
막상, 경주에 내려서니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겠고,
차라리 경비가 좀 들더라도 제대로 볼 것을 보고 가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 나는 아저씨께 사정을 해 보았다.
"저희가 지금 군포로 갈 차비 제하고 딱 7만원이 남았거든요.
7만원으로 석굴암 빼고 13군데 돌아 볼 수 있는 코스를 저희와
함께 다니시면 안 될까요? 석굴암도 함께 보면 좋기는 하겠지만
석굴암은 나중에 저희끼리 와서 보고 가도 되니까. . ."
달랑 석굴암 한 곳만 보고 가겠다는 생각으로 왔던 나는
아저씨가 권하시는 13군데나 볼 수 있다는
패키지 상품에 마음을 빼앗겼고 기왕이면 제대로
보고 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들에게 혹시 싶어서 나누어 맡겨 두었던 10,000원 씩을
도루 회수하여 보태가며 7만원을 내어 보이는 나를
쳐다보시던 그 아저씨는
"그러세요."하시며 차 문을 열어 보였다.
순식간에 결정 된 일이기는 하지만 싸게 잘 구경하게 생겼다고
내심 흐뭇해 진 나는 7만원을 아저씨께 내밀었다.
"아저씨, 감사합니다."
어쩐지 7만원에 경주를 구경하기로 결정을 한
엄마가 조금은 무모해 보였던지 망설이는 아이들의
등 짝을 밀어대며 " 빨리 타자 "고 하던 나는 순간 ,
아차! 하는 생각에 막 차를 타려고 하는 아저씨를 불러 세웠다.
"아저씨, 가만 생각하니까 점심 값이. . . 저, 죄송하지만
5,000원만 더 깍아 주시면 안돼요?"
"에이, 그러세요. 자, 니 들도 타라"
먼저 차에 오르시는 아저씨의 뒤를 따라 우리는 택시 안으로
올라탔고 경주 시내를 빠져 풍경이 좋은 어느 길을 달리고 있을 때,
옆에서 운전하시던 아저씨께서 "아차차!"하신다.
"왜요?"
"입 장 료~ "
고뇌에 찬 아저씨의 얼굴을 모른 채 외면하고
아저씨의 결정만 기다리고 있는 우리들에게, 아저씬
"에~이 그냥 가십시다. 애들 공부하러 가는 건데. . ."하셨고
미안하고 염치가 없었지만 우린 아저씨를 따라 경주일주를
시작하게 되었다.
불국사와 천마총, 통일전등
우리가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동안
밖에서 기다리실 아저씨께 공연히 미안했던 우리 세 사람은
거의 뛰다 시피 돌아다니면서도, 부지런히 사진도 찍고
노트에 필기도 해가며, 하나도 놓치지 않고 죄 보고 가려고
눈에 불을 켜고 기를 쓰며 돌아 다녔고,
1시경이 되자 아저씬 경주의 박물관 앞에 우리를 내려놓으시며
"이곳에선 점심도 드시고 천천히 구경하시고 난 후 2시간 후에
여기 매표소 앞에서 만나기로 하지요."하시며 우리들이
관람 할 수 있도록 표를 끊어 주셨다.
죄송한 마음으로 표를 받아 들며 나는
"점심은 저희가 사 드렸어야 하는 건데 죄송합니다."며
아저씨께 죄송해 했고, 아저씬 ?I챦다시며 우리들을 박물관 안으로
들여보내 주셨다.
아저씨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새벽에 햄버거 하나 만을 먹고
버틴지라 몹시 배가 고팠었는지 아이들은
"엄마, 밥부터 먹자" 며 매점을 ?았다.
국수 한 그릇씩이라도 먹일 요량으로 매점을 ?았는데
어머나? 매점이 수리 중이라 우리가 먹을 수 있는 것이라곤
자판기에서 나오는 음료뿐이었다.
점심을 먹고 나면 경주를 자세하게 소개한 책자 한 권도 사 가지고
가지 못할 것이 못내 아쉬웠던 난 오히려 다행이라 여기며
아이들을 자판기 앞으로 데려갔다.
동전을 꺼내 율무 차 한 잔씩으로 점심으로 떼우고
두 시간을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박물관 구경을 마친 우리는
3시가 되자 박물관 앞에서 기다리시는 아저씨를 만나
다시 이곳 저곳을 부지런하고도 바쁘게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황룡사지의 너른 터와 경주임해전지, 신라 무열왕릉, 김 유신 묘,
분황사 석탑, 경주 월성, 도자기 단지 등등등. . .
마지막으로 첨성대와 석빙고를 돌아보고 경주에 관한 책을
5,000원을 주고 구입한 우리는,
우리가 관광을 마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셨던 아저씨 앞에 서자
공연히 돈이 있는데도 염치없게 입장료까지
아저씨께 물리게 한 건 아닐까하고 생각하실 까봐 소심한 마음에
아까 박물관에서의 간단한 식사를 한 탓에 돈이 남았고
그 돈으로 책을 구입하였음을 묻지도 않았는데 줄줄이 이야기
하고 있었다.
이야기를 다 들으신 아저씨 하시는 말씀.
"참, 대단하십니다. 다른 사람들은 5-6군데만 돌아다니면
더 가자고 해도 못 간다며 포기하시는데 점심까지
거르신 채 패키지에 속한 곳을 다 구경 하시다니요.
지금도 관람시간이 끝나서 더 이상 들어 갈 수가 없어서 그렇지,
들여보내 주기만 하면 더 보실 수 도 있을 것 같으십니다."
하며 고개를 흔드신다.
"그랬나요? 저희는 아저씨가 밖에서 기다리시는 것이 너무
죄송해서 거의 뛰다 시피하며 열심히 다닌 건데. . ."
미안해하며 웃는 나와, 뒤에서 거의 지쳐서 실신하다시피
의자에 기대어 있는 아이들을 뒤돌아보시던 아저씨는
"그나저나 군포까지 가시려면 저녁 11시나 되어야
도착 할 수 있으실 텐데, 아이들이 배가 고파서. . ."하시며
차를 몰고 어둑해 진 경주 역 근처의 시장 앞에 우리를
내려 주셨다.
하루를 우리 때문에 고생만 하셨던 아저씨께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너무나 죄송한 마음에 어찌 할 바를
몰라하는 우리들에게 아저씨는 뜻밖에도
"아이들이 참, 착하군요. 이거 애들 햄버거라도 사주세요"
하시며 5,000원을 사양하는 내 손에 굳이 쥐어 주시고는
손을 흔드시며 차를 몰고 그 자리를 떠나셨다.
미안하고 송구하고 감사한 마음도 잠시, 우리는 시장 안의
어느 국수 집으로 뛰어 들었고 1500원 짜리 국수 두 그릇에
1500원하는 김밥 한 줄을 시켜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아, 살 것 같다. 야, 너희들 아빠한테 점심도 못 먹고
다녔다고 이르면 안돼, 알았지?"
워낙에 지난여름 단련되고 훈련된 아이들이라 당연히
견뎌내리라 생각했던 아이들도 오늘만큼은 무척이나 배가 고프고
힘이 들었었는지
"몰라, 아빠한테 가면 저녁 사 달라고 할 꺼야."
하며 나의 부탁을 메몰 차게 거절한다.
"지금 저녁 먹었쟎아?"
"이건 점심이지 저녁이 아닙니다요. 엄니!"
하고는 둘 다 어림없다는 얼굴을 한다.
아무리 달래고 얼러도 절대 저녁을 포기 할 것 같지가 않은지라
나 역시 그들을 달래기를 포기하고
이따 여관에서 만날 남편에게 오늘 일을 야단 맞을 생각에
혼자 걱정을 하며 경주 역을 출발해 군포의 여관에 도착하니
시간은 벌써 11시가 훨씬 넘어 있었다.
너무 늦게 도착한 우리들을 걱정하며 기다렸던 아빠를 보자마자
아이들은 "아빠! 저녁 사 주세요. 배고파요! 하며
아빠에게 이야기 보따리를 풀러 놓기 시작했고
욕심으로 무리하게 아이들을 끌고 다녔던 나는, 구석에서
쥐 죽은 듯이 아무 소리 못하고 남편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당신은 저녁 먹었으니까 안 먹을 꺼 지?"
당연히"네"라고 대답해야 하는데 이게 어찌 된 일일까.
생각과는 달리 나는
"아니, 나도 배고파요."라고 답하고 있었다.
"엄만 안 먹는 다면서?"
아이들과 아빠는 나를 골려대기 시작했고
지은 죄 때문에 아무 말도 못하고 있던 나는
방으로 음식이 도착하자마자 그릇을 깨끗이 비워냈다.
작은아이가 한 쪽으로 밥을 조금 남긴 듯이 보이 길래
"너, 그거 안 먹을 꺼니?"하고 물었더니
잽싸게 지 앞으로 끌어당기며 "아니, 먹을 꺼 예요."한다.
아쉬워하는 나를 보며 기가 막힌 듯 남편이 웃었고
"그런 마음씨 좋은 아저씨 만났기 망정이지 어쩔 뻔했어?"하며
생각 없이 무리수를 둔 나에게 눈을 흘긴다.
경주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경주에서 구입한 책과
찍어 온 사진들로 스크랩북을 만들며 방학숙제를 하던 아이들이
한 곳 한 곳을 되 집으며 부르르 치를 떤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 .
아니, 그런데 아이들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언니, 우리 여기 돌아다닐 때 ,아저씨 차에 기름 넣고 오신 것 알지?
동생아, 여기선 그 아저씨 입장료 내시면서
처량해 하시던 그 얼굴 생각나니?
정말 그 아저씨한테 미안해서 죽고 싶더라. 편지라도 써서
고맙다고 인사해야 하는데
엄만 아저씨한테 명함까지 달래 놓고 그 명함 홀딱 잃어버릴 건 또 뭐니?
칠칠치 못한 나를 원망하며 아이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다.
착한 아저씨, 정말 고맙쥐~ 예쁘쥐~ 잘 사셨으면 좋겠쥐~
아~ 정말.
어쨌든, 경주에서 만났던 그 아저씨. 나도, 정말 잊을 수가 없다.
아마 아이들이 커서 엄마가 되어 자신들의 아이들을 데리고
그 곳 경주에 가면 그 때, 그 아저씨를 다시 생각하며
자나간 시간들을 추억하며 웃게 될 것이다.
고마웠던 아저씨와, 추억을 만들어준 경주와, 하루 종일 굶겨가며
이곳 저곳 열심히 함께 뛰어 다녔던 철없는 이 엄마를
다시 생각하게 될 것이다.
잊지 못할 경주와 잊지 못할 고마운 아저씨.
정말 꼭 한 번 다시 보고 싶다.





우리들의 여행-2


설악산으로 향하는 우리 일행은 지금 몹시 흐뭇해 하고있었다.
해마다 여름 휴가철이면 연중행사처럼
어디라도 꼭 다녀와야만 할 것 같은 마음에 하다 못해
한강변 수영장이라도 다녀와야만 직성이 풀리곤 하였던 우리는
경비가 많이 든다는 이유와, 부모님들 건강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늘 단촐 하니 네 식구만이 돌아 다녔을 뿐
부모님과 한번도 휴가다운 휴가를 지내 본 적이 없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올해는 부모님의 건강상태도 좋으시고 부지런히
저축을 한 덕에 약간의 여유자금이 생겼으므로
친할머니와 외할머니까지 모시고 강원도의 남 대천으로
모처럼 만에 효도를 겸한 여행을 하게 된 때문이었다.
양쪽 집 다 어머니만 계신 탓에 친구 삼아 두 분을 함께 모시니
벌써부터 차안에선 두 분의 입담으로 웃음꽃이 만발했고
소녀처럼 들 뜬 두 분의 모습이 보기에도 흐뭇하기만 했다.
아이들까지 덩달아 기분이 좋은 듯,
친할머니와 외할머니 두 분을 마치 쌍둥이처럼 꾸미기 위해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두 할머니를 위해 준비했던
예쁜 꽃이 달린 밀짚모자와
하얀 티에 짧은 반바지, 그리고 하얀 운동화,
이모와 고모 것까지 빌려가며 준비한 검은 썬그라스를
두 할머니에게 똑같이 입히고 신기고 하여 꾸며 드리고는,
가방 안에는 저녁에 두 분이 함께 노실 화투 한 벌과
물놀이 할 때 입으실 검정 원피스 수영복을 몰래 준비해
숨겨 두곤, 나름대로 행복해 하고 있었다.
손녀들의 배려로 모처럼 만에 젊은 사람들이나 입음직한
하얀 티에 짧은 반바지를 입으시고 쑥스러워 하시면서도
싫다 마다 않으신 두 할머니께서는 운동화에 모자,
선그라스를 끼신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며 마냥 좋아 하셨고,
서로 자신이 더 선그라스가 잘 어울린다면서 사돈간에
시샘까지 하시는 모습이 그렇게 정겨워 보일 수가 없었다.
고속도로가 막힐 것을 염려하여 지도를 보아가며
지름길을 모색한 아빠 덕에 우리는 강원도까지 막히지 않고
수월하게 도착 할 수 있었고 콘도가 아닌 텐트에
모셨음에도 불구하고 두 어머니께서는 무척 기뻐 하셨다.
텐트를, 연어가 산란하기 위해 올라온다는 남 대천의 강변에
치고, 내가 먹거리를 준비하는 동안 두 어머님께서는,
돗자리를 펴시고 벌써부터 손녀들이 준비해온 화투를
반가워하면서 점에 10원 짜리 화투내기를 하고 계셨다.
찌는 듯한 삼복 더위에 두 어머님들의 기운을 돋우기 위해
나는, 닭에 찹쌀과 인삼, 생강과 마늘을 넣고 닭 6마리를
들통에 넣고 삶기 시작했다.
들통을 차에 실을 때 이그러지던 남편의 얼굴을 못 본 척,
차 뒷 칸에 커다란 도마에 부엌칼까지 싣고 온 나는
텐트 곁에서 음식을 만들며 혼자 웃고 있었다.
"거봐, 가지고 오길 잘 했쟎아? 얼마나 시원시원하게 잘
썰어 지는데. . ."
닭과 함께 익히려고 깍은 통감자를 도마 위에서 절반으로
쪼개며 난 혼잣말을 한다.
어느 틈에 친정 어머니가 다가 오셔서
"내가 뭐 도울 것 없냐?" 고 물으셨고
시어머니께선 화장실 간다며 자리를 털고 일어 나셨던
친정 어머니가 나에게 와 계신 모양을 보고는
"사돈, 빨리 와요. 사돈 할 차례예요." 하시며 어머니를 부르신다.
"엄마, 할 거 없어요. 그냥 가서 놀고 계셔요."
어머니를 텐트로 먼저 가시게 한 나는 닭이 익는 동안
수박을 몇 조각 쪼개 가지고 텐트로 갔다.
"이거 드시면서 하세요."
"오냐, 너도 이리 와 앉아라"
친정 어머니가 자리를 내 주시며 말씀 하셨고
"너도 먹어라. 더울 텐데. . ."
하며 시어머님께서도 나를 챙기신다.
"여보, 이리로 와서 수박 드세요, 너희들도 빨리 와"
벌써 남 대천의 물 속에 발을 담그고 아이들과 함께
물고기를 잡는다고 첨벙거리는 남편과 아이들을 불렀다.
"누가 많이 따셨어요?"
화토를 조그마한 손에 펄쳐 쥔 시어머님께서 바닥에
깔린 화토장과 같은 그림을 ?느라 위아래를 바쁘게 ?어 보시며
"아가, 너희 친정 엄니는 집에서 화토만 하셨나 보다.
그사이 내 돈 200원이나 따 가셨다. "하신다.
아이들과 텐트로 온 남편이 젖은 발을 수건으로 닦으며 돗자리에
엉덩이를 걸치고는
"엄마, 그림이 같은 거라도 껍데기는 놔두고 알맹이만
가져오셔 야지요. 이런! 죄다 껍데기만 같다 놓으셨네"
하며 두분 앞에 따다 놓은 화토장을 보며 그만 웃음을 터트린다.
"껍데기는 가져오면 안 돼는 거야?"
"이건 민화토니까 알맹이를 많이 먹어야 돼요."
민화토가 뭔지, 알맹이가 뭔지, 껍데기가 뭔지,
그저 그림이 같은 것만 골라서 앞자리에
죄다 같다 놓으신 시어머니에 비해,
친정 아버님 살아 계실 때 두 분이 함께 민화토를 치신
경력이 있으신 친정 어머니 앞에는 시어머님으로부터
따다 놓으신 10원짜리 동전들과 함께 알짜배기 화토장 들이 그득했다.
아무 것도 모르시는 시어머니 편이 되어, 아이들과 남편이
응원을 하자, 친정 어머니가 토라지시며
"나, 화토 안 한다" 고 하셨고, 막 화토에 재미를
붙여 가시던 시어머니께서
"느그들 저리 가라"며 남편과 아이들에게 수박을 저쪽으로
밀어 주시며 가라는 시늉을 하신다.
할머니들의 화토 판을 몰래 지켜보는 동안 닭이 익고
어느덧 시원해진 여름 하늘 아래서 우리 여섯 명은
각자에게 배당된 닭을 뜯어먹으며 할머니들의 소시적
이야기를 듣느라 밤 깊어 가는 줄도 몰랐다.
그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서두른 우리 일행은 텐트는
남 대천에 친 채로 놓아두고 근처의 해수욕장으로 출발했다.
탈의실에서 생전 처음 입으신다는 수영복을 입고
머리엔 밀짚모자를 쓰신 두 할머니는
고무튜브를 허리춤에 각자 끼시고 어느 덧 바다로 뛰듯이
달려가셨다. 행여 라도 파도에 휩쓸릴까봐
조바심을 치는 우리는 안중에도 없으신 듯,
파도에 몸을 싣고 대범할 정도로 물과 어울려 노시는
두 어머님의 모습은 칠순을 바라보시는 할머니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저 자연과 더불어 웃고 노는 순박한 어린아이의
모습일 뿐이었다.
하루종일, 물 속에서 지치지도 않으시고 노시더니
물 속에서 조개를 잡아 올리는 손녀들을 따라 자신들도
손가락으로 모래를 헤집으며 조개를 건져 올리셨고
한 마리씩 건져 올릴 때마다 서로에게
"난, 잡았지 롱" 하며 약을 올리셨다.
지칠 줄 모르고 웃으시며 노시는 두 분을 좀 쉬시게 하려고
모래찜질하면 예뻐진다고 달래 눕게 하신 후,
우리 네 사람은 두분 할머니의 배며 가슴이며
다리가 보이지 않도록 모래로 덮어놓았고,
모래 속에 묻혀 겨우 얼굴만 내 놓고도 두 분은
바다와 파도 속에 자신들이
뛰어 놀았다는 사실에 흥분하시며 내내 즐거워 하셨다.
그러다 결국 모래 속에서의 아늑함을 이기지 못하고
할머니 두 분은 모래 속에 몸을 뭍고 밀짚모자로 햇볕을 가린 채
백사장 위에서 한 이십 분 가량 낮잠을 주무셨는데
어머니 두 분은 이날 파도와 함께 흥겨웠던 시간을 휴가 중 가장
즐거웠던 시간이라고 말씀하셨다.
다음날, 설악산에 가 케이블카를 타고 산새를 구경한 우리
일행은 설악의 온천으로 가 휴가중의 피곤함을 씻고
아쉬워하시는 두 어머님을 모시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행여 라도 무리한 여행 때문에 병이라도 나시면 어떻게 하나
하는 우리의 염려를 비웃기라도 하시는 듯, 두 분은
건강하셨고 오히려 내년의 휴가를 기다리셨다.
여늬 휴가보다도 더욱 신나고 재미있고 보람있었던
어머님들과의 휴가는, 생각 할 때마다 우리식구들의 가슴을
웬지 따듯하게 만들었고 , 즐거워 하셨던 그분들의
웃는 모습이 뇌리에 남아 가장 행복했던 휴가로 기억되고 있다.
건강하게 오래 오래 두분, 장수하시기를 바라면서
친구 같은 사돈간의 우정으로 내내 사이좋게 지내시길 바라면서
내년, 내후년의 휴가도 그 분들과 함께 하게 되기를 기도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