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에서 계속
아저씨는 네방 구석을 헤메며 날 잡고 살려달라 애원하고
"꽥! 꽥!" 하면서 내 치마에다 자꾸만 오물을 토했다
드럽다, 비위상한다.. 뭐 그런건 생각할 여유도 없이
아줌마는 걸래를 가져와 자꾸자꾸 닦고.. 할머니는 울고...
배가 불러져 옷이 터질듯해 아줌마는 옷을 또 갈아입히고..
상황이 이미 말이 아니였다.
아줌마는 기계적으로 나한테 미안해서 오물을 치우며 울고있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린 사람은 나뿐, 상황판단은 오직 내가 해야했다.
나는 얼른 교회, 그교회 주보를 찾아 전화걸어 목사님 빨리 오시라하고
아저씨를 이불에 눕히고 손 꼭잡고 기도만했다
"하나님아버지.. 제발 아저씨 살려주세요~ 네~~~~"
가족을 위로하며 울며.. 밤새 꼭꼭 손잡고 기도만 했는데..
지금까지 그때그 상황에서 기억나는 기도말은 오직 "하나님, 아저씨를 살려주세요.."
긴 겨울밤, 새벽이 뿌옇게 밝아올 때까지 그 한마디만 하고 또했다.
한참 후에 도착한 목사님은 성경책을 펴놓고 예배를 드리고.. 잠시 정적속에 평안이 도는가 싶은 순간, 나는 "꼴깍" 숨이 넘어가는 소리를 들었고 내 손을 잡은 아저씨의 손에 힘이 풀리고 내가 잡고 있는 손은 아직도 따뜻했다.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 사람의 죽음을 보았다.
이웃집 아저씨, 외간남자의 시체를 받아냈던 것이다.
그로부터 3박, 아니 5박6일 동안
장례식과 삼오제를 지낼때까지 나는 그집의 장례위원이 되어 손님접대와 잡다한 뒷일을 거들며 아저씨의 갑작스런 죽음과 그 확실한 경위를 알게 되었다.
아저씨는 간암 말기환자여서 병원에 입원할 정도의 단계가 아니였다했다.
그래서 묘터도 미리 사두고 사후 뒷처리도 이미 준비해 두고 있었다했다
혹시나 기적으로 살아날까.. 해서
병고침의 역사가 많이 일어난다는 현모권사님 제단에 은혜받으려 다녔다했다.
우연히 세든사람(나)을 잘 만나 성경말씀도 듣고 기도하는 법도 배우고
믿음에 평안을 얻으니 아저씨가 기분이 좋아져서 병세가 호전되는듯 했단다.
마지막 가는 길까지 내가 큰 힘이 되었다고 고마워했다.
위의 사연을 종합해 본 결과..
서울의 큰병원마다 엠브란스가 없는 까닭은
곧 죽을 사람이니 응급차를 보내봤자... 수고로움만 더할테고..
병원에서 곧 돌려보낸 까닭은..
길에서 초상칠래 집에갈래.. -이상-
이쯤 깨닳았을 때.... 나는 더 이상 할 말을 잊었다.
(박집사~ 너 똑똑히 봤제. 세상은 이런 것이야....) 순간, 피부에 소름이 돋았다.
한 집안의 막중대사를 치르고 나니 그집의 일가친척은 물론 그집 다니는 교회 목사님과 교인들, 우리교회 목사님과 교우들..
조그만 동네에 소문이 좌악~ 퍼져 한동안 과분한 칭찬을 너무 많이 들어서 부끄러워 얼굴들고 다닐 수가 없었다. 그 얼마후, 내문제가 잘 해결되어 강남으로 이사했다.
지금은 신도시가 되어
능곡,화정,일산.. 집단 주거지가 되니 오나가나 고층아파트에
대형마켓과 백화점이 꽉꽉 차서 시끌벅적한 동네가 된 그마을.. 그집....
아저씨는 하늘나라에서 행복할꺼고, 아줌마는 70을 바라보는 할머니..
혼자 살까.. 아니면....?
고3이던 아들도 중년의 아저씨가 됐겠다. 아직도 그동네 살고 있을까..
나도 30대 초반의 미시아줌마에서 쉰넘은 할멈이 다 됐으니..
세월이 살같이 빨리 흘렀구나.. 싶다.
지금 내가 살고있는 은평구와 멀지 않고
날마다 오르는 등산로에서 빤히 넘겨다 보이는데..
언제 한번 그동네 가 봐야겠다. -끝-
`02.3.22
**외람되지만 roos님 힘내세요
저도요.. 지금은 이렇게 씩씩하게 살고 있지만
님과 아주 비슷한 길을 걸었습니다.
이 글은 기억을 더듬어 쓰지만, 20년 전 그 시기에 경호원 대동하고
가정법원에 다녔어요..
같은 남자와 두번 이혼했다면... 이해될지, 위로가 될지 모르겠네요..
빨리 주변정리 하시고, 평안을 찾으세요.
지금의 상처와 괴로움은 잘 이겨 내시면
나중에 자신은 물론 고통받는 이에게 힘이 될줄 믿습니다.
코스모스,아리,올리비아,복숭님처럼 알콩달콩 행복하게
사는모습 보면 한없이 부럽고 샘나고 아름다워요..
님들.. 모두 행복하시고, 특히 roos님께 힘이 되면 좋겠습니다.
In Christ.. Am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