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경이 엄마!
잊을 수가 없습니다.
퇴직금을 받아 빚잔치를 하고 부산 시댁으로 내려갈 때였습니다. 내 사정을 속속드리 아는 주인집 아주머니가 바로 영경이 엄마였죠.
어제같은데 어언 30년 세월이 흘렀군요.
숨막히는 고비를 지나는 동안 영경엄마는 내 인생살이의 좋은 스승이었습니다.
"영경 어머니! 부산으로 이사갑니다. 저의 큰댁 전화번호입니다. 제가 곗돈은 보내드리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믿으실 수 있겠습니까?"
"믿고 말고! 내가 남선생을 못 믿으면 누굴 믿어?
암! 믿고말고, 염려말고 가서 잘 살아요.
옛이야기 할 때가 올꺼야! 난 그리 믿어요"
나는 왈칵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영경이 엄마 손을 잡고 많이 울었습니다.
그 때는 왜 그리도 계가 성행하였는지 모릅니다.
영경엄마가 계를 들으라고 해서 평생 처음 계를 들었습니다.
계주가 돈 떼어먹고 달아나기 일수였고, 곗돈 타먹고 잠적하는
경우도 많았었죠. 영경엄마는 계주였고 나는 계를 들어
3번을 이미 탔으니 내가 부산으로 떠나는게 영경엄마에겐 많이
불안했을 것입니다.
내가 부산으로 가서 흔적없이 사라질 수도 있고,
연락이 된다 하더라도 돈을 못 부친다고 하면 영경엄마는
그 곗돈을 책임져야 하며, 부산까지 수금하러 올려면 차비도
만만치 않던 세월이었습니다.
지금처럼 교통이 좋은 시절도 아니었으니까요.
나는 굶더라도 영경엄마 돈은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루도 어김없이 제 날짜에 그 돈을 부치려니 너무 힘들었습니다.
영경엄마를 섭섭하게 해선 안된다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훗날 인천으로 다시 삶의 터전을 옮겼을 때 영경엄마를 찾아 만났습니다.
'그 때 나를 믿어주고 힘을 주었던 것을 평생 잊을 수 없노라'고 말했습니다.
영경이는 출가했고, 할아버지는(시아버님) 돌아가셨더군요.
지금은 연락이 끊어진 상태지만 지금도 나는 영경이 엄마처럼
사람을 믿어주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가를 되뇌이고 있습니다. >
세상엔 이토록 잊을 수 없이 고마운 사람들이 종종 있어서
아직 살만한 세상인것 같습니다.
"믿고 말고 남선생을 못 믿으면 누굴 믿어?" 이 말은
평생 내게 힘을 주는 생명언어였습니다.
나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무척 애를 썼습니다.
그녀의 믿음을 깨뜨리면 온 세상이 깨어진다는 마음으로
혀를 깨물며 열심히 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