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길 옆으로 먼지를 뒤집어 쓴 개나리며 진달래가
그래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아침을 맞고 있었습니다.
햇살도, 바람도 아름다운 오늘을 우린 또 만날 수 있을까요?
만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오늘을 살아내는 우리들은
정말 아름다운 사람들입니다.
어느날 제가 근무하는 사무실에 도우미를 하시겠다 찾아오신
저 만큼의 나이를 먹은 여자가 있었지요.
지참한 서류를 보니...그여자도 저처럼 사별을 했습니다.
동변상련이랄까, 가슴이 먼저 미어지는 아릿함을 느꼈습니다.
사무적인 이야기를 마치고 서류작성을 하고 싸인을 하고...
모든 절차가 끝이 났는데 그 여잔 일어날 생각을 하질 않았습니다.
아! 지금 이여잔 누구에겐가 말을 하고 싶은것이구나...
전 상담사의 직감을 동원해 그여자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세상사는 것 참 힘들죠?"
그 여자는 아무소리 하지 않고 눈물만 그렁그렁 합니다.
저역시 아무소리도 하지 않고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지요.
그 침묵의 시간을 저도 그 여자도 속죄의 시간인양 보냈습니다.
시계의 분침이 한바퀴는 족히 돌았을 시간에 여자는 눈물을
훔치고 말을 시작합니다.
"처음엔요, 아무 생각도 나질 않고 저도 따라 죽고 싶었어요.
그런데 죽어지지가 않더라구요, 저도 정말 죽고 싶었는데...
지금도 실감이 나질 않아요, 얼마나 시간이 흘러야 실감이 나게
될지 모르겠어요. 아마 죽는날까지 실감이 나질 않을 것 같애요.
몇달을 거리도 방황하고, 버스를 타고 아무곳이나 다니곤 했어요
해가져서 집엘 들어오면 아들들이 끓여먹은 라면냄비가 계수대에
딩굴고, 벗어놓은 옷들은 거실에, 안방에...널려있고...
먼지가 풀풀 날리는 이불을 뒤집어 쓰고 울고 또 울었어요.
새벽에 눈을 떠 잠자는 아이들을 바라보니 정신이 번쩍 들겠죠!
그래, 아직은 숙제를 해야 하는구나! 그래서 이곳을 왔습니다."
숙제...
그래요, 지금 우리들은 모두 숙제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 그때도 바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었지요, 바람으로...
생각해보니 제게 지워진 짐을 벗어버리고픈 욕심에서 바람이고
싶었다는 것을 그 여자를 통하여 알게 되었습니다.
바람이고 싶던 마음을 잠시 유보해 두었습니다.
언제든지 바람은 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숙제가 밀리게 되면
내일은 더 많은 분량의 숙제로 힘들어 질테니, 오늘 숙제는 오늘
마무리를 해야한다는 생각으로 말입니다.
그 여자가 남편을 보내고 그렇게 힘들어 하는 것을 보면서
전 조금 부끄러워 지기 시작했지요.
전 남편을 보내고도 죽고 싶다거나 방황을 했다거나 하진 않았거든요
남편이 누워있던 병원에서 새벽마다 제가 다니는 교회로 새벽기도를
다녔지요, 보호자 대기실에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으니 그렇게라도
해서 제 스스로 달래보려 했던 것입니다.
남편이 가기 전날 새벽에...
좀 이른시간에 병원에서 나왔지요, 집엘 들르기 위해서요.
제게있던 순금의 패물을 챙겼습니다. 그리곤 봉투에 담아 새벽기도
시간에 봉헌을 했지요. 그것역시 절 위로하기 위함 이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남편이 갔습니다. 임종을 보고 중환자실을 나오는데...
세상에, 그 패물생각이 나는 것입니다.
하루만 참아볼걸... 그게 값이 꽤나 나갈텐데...
전 이렇게 이기적인 사람이였습니다.
어느날 책장정리를 하다가, 남편을 보내고 쓴 일기장을 읽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유치하던지...
사랑이라든가, 그리움이라든가 그런것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곳엔 그때 제 심정이 그대로 묻어 있었습니다.
군데군데 시도 한편씩 씌여져 있더군요.
어쩌면 남편을 보낸 여자가 이리도 차분할 수가 있을까!...
제 자신에게 혹독한 매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였습니다.
아마도, 그때 그런 심정이였기에 지금까지 살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무엇이든지 긍정적으로 생각을 해야 하니까요.
상대에게서만 자신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 스스로 에게서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터득하며 살아가는 것일겝니다.
우린 자신의 부끄러움을 숨기고 살지는 않았는지요!
애써 부끄럽지 않으려고 두 얼굴을 가지고 살지는 않았는지요!
산다는 것은...
부끄러움을 그대로 들어내 보이며 다시는 부끄럽지 않기 위하여
진실을 풀어내며 사는것은 아닐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