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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두리 삶의 이야기 (20)


BY 영광댁 2001-04-01

뻥새랑 둘이 있는 4월 첫날 일요일
어젯밤 늦도록 밀린 일들을 다 끝낸 덕택으로 시간이 기분좋게
좀 남아서- 이 칼리지를 들어갔는데 도체 열리지 않으네요.
요즘 몸이 좀 아프고 바빠서 밀린 칼리지 공부가 한두개가 아니여서
들어갔더니 영....
얘 열렸니?
아니 ?
아줌마 안 열려요.
그래?
일요일이여서 아줌마 늦잠 자나? 아줌마 늦잠 주무시게 놔두자..
하고선...그 짱구 이야기 재미있던데 하고 맙니다.
그 어느날 일기장 한 모퉁이에 뻥새에게 썼던 편지 한 통 두고 갑니다.
맑은 일요일입니다.
에세이 방 여러 벗님들
즐거운 휴일 되시기를 빕니다.

우리집 뻥새에게

1993년 9월 29년생이니까 2002년 9월 29일이면 만 아홉살인 뻥새야.
잘 웃어서, 말도 조랑조랑 잘해서 엄마가 뻥새라고 하자니까 좋다 허고선
뻥새가 뭔데 ? 그랬겠지. 방바닥 닦느라 엎드려 다니는 엄마 등에
달랑 엎드려 붙어서...

그 뻥새는 엄마가 너만 했을 때 마당이 넓었던 집
외할머니가 외롭게 풀무질을 해 대던 그 마당 넓은 집 ,
외할아버지가 살아 계셔서 대바늘로 양말을 뜨개질하던 양지 바른
돼지우리가 있던 집 ,바로 아랫집에 술내리는 집이 있었단다.
그집 아이들은 이름도 있었을 텐데. 그냥 술술네 집이라고 불렸지.
술이 술술 내리고 술술 팔려서 인생을 술술 살고 싶었던가 봐.
너 연 날릴 때 실이 술술 잘 풀릴 때 얼마나 좋튼?
그것 뿐이니.엄마가 뜨개질 할 때 실이 술술 풀리고 늘어나는 폼세가
넉넉하니 술술하면 네가 더 좋아하지 않았니?
어쩌면 누구나 그렇게 술술 풀리는 인생을 가지고 싶었을게야.

그 뻥새는 술술이네집 바로 아래 개천을 하나 지나고
자그마한 텃밭이 있는 집에서 늙은 어머니랑 살던 노청각이였던 것 같다.
얼굴이 동그랗고 눈은 뱁새처럼 작았고 오동통한 몸매에 방실방실
웃던 모습이 항상 엄마 기억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아름다운 상처(이루지 못하여 늘 안타깝고 생각하면 배시시 웃음 나오는 첫사랑쯤?)처럼 마음 안에서 흠집이 난체 떠돈다고 하면 이해할수 있으려나?
그 뻥새는 우리가 학교가는 길목, 나무장거리 어느길목. 팥죽이 끓고
있는 어느 길목에서 자꾸 서성이고 있었단다.
뻥새네 텃밭은 얼마나 가지런 했게
봄이면 푸른빛 파가 솟아났고, 상추가 돋아났고. 왕겨를 부은 흙밭에선
막 깬 노란 병아리들이 엄마닭을 쫓아다니며 먹을 것을 ?던 따뜻한
햇볕이 있었더란다 .얼마나 이뻤는 줄 아니? 그 가지런하게 살던 집의
노마님은 낭자머리가 단정한 키작은 부인이였더란다.

그 뻥새같애 , 너 말이야.
그처럼 얼굴이 동그랗지도 않은데,
엄마랑 같이 한 통에서 목욕을 하는 아인데...
잘 웃어서 그런가봐 , 빙그르르 혹은 깔깔대는 입웃음.
엄마랑 눈 마주치고 한 눈 찡긋하는 눈 웃음. 밥상 앞에서 벙그는
동그란 웃음. 그 흥겨운 코피리까지...잘 먹겠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얼마나 엄마를 흥겹게하는 웃음소린지 아직 모르지?
너 어렸을 때 그렇게 너를 등에 업고 등그네를 태우면서 잠들기를 기다렸고.
가만 이불위에 뉘여 잠을 재운 후 다시 방을 닦았을게야,엄마는...
그런데 지금은 한 짐이구나 . 많이 컷네.

엄마가 이제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려고.뻥새야 부르면서..
기억의 오솔길로도 다시 갈거고 엄마의 한숨도 묻어날게고
그럴게야. 살아있는 동안 모든 기억이 묻혀있는 날들을 그냥 말기에는
인생이 그리 길지고 않고 재미나지도 않으리니 엄마 시작한다?
말 좀 해 봐, 응? 등그네 탔다고 너무 좋아하지만 말고...
어? 잠들었어...

그렇게 들려줄게. 너 잠들어 버리게. 잠 속에서 타박거리며
엄마 다니는 길 손잡고 다니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