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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늉3] 만우절의 슬픈 공식


BY ylovej3 2001-03-31

오늘이 벌써 3월의 마지막 날....올해의 1/4 이 훌쩍, 그야말로 훌쩍 지나가 버렸다.
그리고 내일이면 오늘의 이 아침햇살을 찬연히 드러내며 또 다시 4월이 찾아올 것이다.
'4월의 노래'를 부르며......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노라// 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영국의 시인이자 철학자인 T.S.Eliot은 그의 작품 '황무지'에서 4월을 이렇게 말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도 라일락이 싹트고 봄비와 함께 무딘 뿌리들이 약동한다/

엘리엇이 말한 잔인한 4월은 전쟁으로 인하여 황무지가 된 땅에서도 새로운 생명이 움터옴을, 극한 절망의 끝에 희망이 존재함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렇지만, 나의 4월은 생명도 희망도 아닌 말 그대로 '잔인한 달'의 기억으로 시작된다.
4월의 첫 날에 턱하니 버티고 선 '만우절'인지 '망할절'인지 때문에....

내일은 만우절(April Fool's Day)이다.
말 그대로 바보가 되기도 하고 바보를 만들기도 하는 날이다.
만우절의 다양한 경험 중 백미(白眉)는 뭐니뭐니 해도 학창시절에 친구들과 작당을 해서 선생님을 놀려먹는 것이었다.

그 시절에 선생님을 속이는 가장 흔한 방법은 '교실바꾸기' 였다. 60명 가까이 되는 친구들이 모두 옆 반과 교실을 바꿔 태연히 앉아 있는데,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알아채는 선생님이 계시는가 하면 어떤 선생님은 수업이 다 끝나도록 모르셨는데, 우린 선생님을 속였다는 기쁨에 사로잡혀 수업은 뒷전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우리가 선생님을 속인 게 아니고 선생님이 우릴 속인 것만 같다.
이처럼 만우절에 학생들의 속임수를 예쁘게 봐 주시는 선생님이 계시는가 하면, 단체기합을 주는 고지식한 선생님도 간혹 계셨다. 후자의 경우에는 학생들에게 두고두고 '밴댕이 선생님'이라는 놀림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남들이 만우절에 얽힌 다양한 에피소드를 얘기하며 웃을 때, 난 하나의 공식밖에 떠올리지 못한다.
[만우절=체육선생님+분필-자존심]
간단하지만 슬픈 공식이다.

중학교 3학년 비오는 만우절. 체육시간이었다.
비오는 날의 만우절 체육시간이라.....
비오는 날에 체육 수업은, 교실에서 이론을 배우지만 가끔 고민상담이나 오락으로 시간을 때우던 터라 우리들은 이 날을 '하늘이 주신 기회다'며 쾌재를 불렀다.
총각에다 미남이긴 하지만 성격이 불같고 괴팍스런 체육선생님을 속이는 건 일종의 모험이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장난 끼 가득하고 뭉치면 겁나는 게 없는 10대 소녀들이었다.
선생님을 속일 수 있는 갖가지 재미있는 의견들이 분분하고... 우린 고심 끝에 하나를 선택했다.

교탁 앞면에 분필을 살짝 칠해서 선생님 옷에 묻게 하자는 것이었는데, '너무 시시하다'는 의견이 많아 결국 학생들의 책상 옆면에도 색색깔의 분필을 칠해 놓았다. 체육선생님은 수업시간 내내 책상사이를 왔다갔다하는 버릇이 있고, 또 늘 체육복 차림이라 분필이 묻어도 심하게 혼내지는 않을 것이라는 얄팍한 생각에서였다.

드디어, 4교시 체육시간.
'드르륵' 교실 앞문이 열리고 선생님이 들어오는 순간, 우린 '악'하는 외마디 비명을 삼키며 우리의 처절한 만우절을 예감해야만 했다.
선생님은 체육복도 아니고 잠바도 아니고 티셔츠도 아닌.... 새하얀 와이셔츠에 감색(곤색) 양복을 입은 말끔한 모습으로 교실에 들어오셨기 때문이다.
-내가 3년 동안 학교를 다니면서도 선생님의 양복 입은 모습을 본 것은 한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뒤로 나자빠질 뻔한 몸을 겨우 지탱하며 책을 폈지만 누구하나 책을 보고 있지는 않았다. 이미 엎질러진 물을 앞에 두고 우린 각자 주문을 외우느라 여념이 없었다. '주님, 부처님, 조상님... 도와주소서!'

우리의 절박함은 안중에도 없이 한껏 폼을 잡은 체육선생님은 습관대로 책상사이로 저벅저벅 걸어 가셨다. 오랜만에 입은 양복을 자랑하고픈 마음이 있은 때문인지 평상시보다 더 분주히 책상사이를 왔다갔다하며 수업을 하는 동안, 선생님의 양복에는 흰색, 분홍색, 노란색, 하늘색의 분필이 알록달록 줄을 긋고 있었다.
'아, 야속한 양복이여...'
대부분의 학생들은 벌써부터 겁에 질려 고개를 못 들고 있는데, 분위기 파악 못하는 몇 몇 친구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키득키득 거리고 말았다. (꼭 이런 애들이 한 두명은 있었다)
웃음소리에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린 선생님은, 몸 여기저기를 둘러보다가 양복 끝자락에 묻어있는 총천연색의 분필자국을 발견하고는 얼굴이 새하얗게 -각도에 따라 새파랄수도 있다- 질려 버리셨다. 그 모습을 본 우리는 '거의 죽음이다'고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만우절인데, 설마......'하는 요행을 바라고 있었다.

한참만에 혈색이 돌아온 선생님은 조용히 교탁 앞으로 가서 분필 묻은 양복 윗도리를 벗으셨다. 그리고는 만우절이라 봐준다는 표정으로 태연히 수업을 계속하시고 우리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안도의 한숨도 잠시... 우리는 또 다시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교탁앞면에 칠해놓은 분필이 선생님의 양복바지에 어김없이 색칠을 해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천당과 지옥사이를 왔다갔다하는 우리의 표정을 읽으신 선생님은, 또 다시 상황파악을 한 듯 고개를 숙인 채 양복바지에 묻은 분필자국을 한참이나 쳐다보셨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이번엔 만우절이 아니라 만우절을 만든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오신다고 해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는 비장한 얼굴의 선생님......... 아니나 다를까?
선생님은 손에 들고 있던 책을 교실바닥에 내팽개치시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셨다.

"이 XX들! 주동자가 누구야, 주동자 나왓!"
"..................."
"주동자 없어? 반장, 일어낫!"

고개를 숙인 채 밍기적대며 일어난 반장.

"반장, 주동자가 누구야?"
"..................."
"이 XX들! 오늘 너거들 죽은 줄 알아. 1번부터 5번까지 나왓!"

나를 비롯한 4명의 친구들은 교실 앞으로 불려 나가서 칠판에 두 팔을 뻗고 엉덩이를 뒤로 뺀 채 -속된 말로 '빠따' 맞을 자세- 선생님의 일장훈시를 들었다. "만우절은 선생님을 놀리라고 만든 게 아니다."는 설교조로 말씀을 시작했으나 도저히 감정정리가 안되는지 "1번부터 5대씩이다. 불만 있는 놈 나왓?" 버럭버럭 소리치며, 지름이 3cm는 족히 넘을 몽둥이를 번쩍 집어들었다.
곧이어 교실을 울리는 불협화음의 '퍽, 퍽, 퍽' 소리와 함께 우리 반원 모두는 비오는 날 X 패듯이 패는 선생님 앞에 '깨깽'소리 한 번 못 지르고 X 맞듯이 맞았다. 그나마 제일 먼저 맞은 우리는 덩치라도 있으니 견딜만 했는데 키 작고 몸집 작은 친구들은 1대씩 맞을 때마다 휘청대었다.

'이게 뭐냐.
양복에 분필자국 좀 났다고 우리를, 이렇게 연약한 우리를 비오는 날 먼지나게 두들겨 팬단 말이냐......
억울하다, 너무하다, 이건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아픔은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60여명을 젖먹던 힘을 다해 두들겨 패 놓고도 성이 안 풀린 선생님은 그 다음 지시를 내렸다.
선생님은 우리 모두를 각 자의 책상 위에 무릎 끓고 앉게 한 뒤 걸상을 두 손으로 높이 쳐들게 했다. 그 때 '선생니임....'하며 애교를 부리면서 용서를 구할 수도 있었으나 누구하나 그럴 생각이 없는지 모두가 이를 악다물며 걸상을 들어 올렸다.

'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여'

우린 그런 모습으로 수업 마치는 종이 울릴 때까지 있었다. 선생님이 교실을 나가신 후 우리 모두는 일제히 엎드려 울기 시작했다.
'엉 엉' 소리내어 울었다.
점심시간이 끝날 때까지 울었다.
점심을 먹는 것도 잊은 채 말이다.

우리가 계속 운 것은 선생님을 향한 야속함과 억울함도 있었지만 진짜 이유는 복도창문으로 우리를 서커스단의 원숭이처럼 바라보는 수많은 눈동자들 때문이었다. 구경꾼은 자기네끼리 서로 밀치며 소란스럽게 우릴 관전했다. 구경꾼이 늘어날수록 우리의 쪽팔림도 더해갔다. 정말 창피했다. 그리고 난 울면서 생각했다. "아! 인생의 쓴 맛이란 바로 이런걸까"하고.........

지금 생각해도 만우절의 처절한 기억이다.
-이 체육선생님과는 그 후에도 나와 악연으로 연결되었다. 이 얘기는 칼럼에 다시 한 번 올릴 생각이다.-

지난 일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퇴색되기도 하고 미화(美化)되기도 하는데, 그 날의 기억은 왜 이리도 생생한지 모르겠다. 생각할수록 억울한 기분도 들고....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그 후 몇 번 더 있은 만우절은 무사히(?) 넘기며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런 '밴댕이 소갈딱지 같은 선생님'이 또 있을라구.....

만우절에 너무 처절한 얘길했나요? 그냥 재미로 읽으시라구요..
여러분의 만우절은 어땠나요? 설마, 이런 처절한 기억은 없겠지요? *^o^*

2001. 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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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지친 내 발걸음을 칭칭 감아대는 아지랑이....
조금만 더 힘내어 그대의 뜨락에서 쉬라고,
그대의 사랑안에서 머물러라고 자꾸만 자꾸만 끌어 당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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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묻는다
안도현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 제 칼럼에서 퍼 왔습니다.
칼럼에도 막 올린 글이라 뜨끈뜨끈 할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