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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다시 태어나도... *


BY 쟈스민 2002-03-25

휴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돌아 온 그는
내일을 위하여 이른 잠을 청하는 아내 곁에서
"나는 다시 태어나도 당신하고 결혼할꺼야"라며
약간은 간지러운듯 느껴지는 말을 했다.

나의 대답은 " 글쎄..."
뭔가 생각해볼 일이라는 여운을 간직한 채 함축된 언어로 대답을 대신하는
나의 깊은 속을 그가 다 알려는지 온통 궁금한 머리속은 점점 깊어만 가는데 ...
개구장이처럼 장난기 가득한 남편의 웃음에 난 그냥 웃고 만다.

우리 부부는 둘다 덩치로는 한 덩치 해서 어른들이 보시면 참 인물좋다 하시곤 하는데,
나란히 어디를 가면 너무 많이 닮았다고들 한다.

벽에 걸린 가족사진을 가만히 바라다 보고 있으면
두 부부가 닮았고, 한 아이는 엄마를 또 한 아이는 아빠를 꼭 빼어 닮았는데
더 우스운 일은 그 넷이서 모두 한 얼굴이라는 것이다.

비슷한 음식을 먹으며, 같은 환경에서 살아가는 일은 서로를 아주 많이 닮게 하나보다.

결혼하고 10년 남짓 살면서 남편의 자리에 있는 그는 무던히도 내 속을 썩였었다.

한 직장에 오래 머물지 못했으며, 이것 저것 도전 정신이 많아 늘 뭔가 변화를 추구했으니
무슨일인가를 준비하는 데는 공백기가 뒤따라 다녔으며,
나는 늘 기다리는 시간을 내 몫으로 안고 살아야만 했다.

때로 그런 그가 너무 지쳐보이거나 그러면 내가 그의 어깨에 놓인 짐을
가녀리기까지는 아니지만 여자인 내 어깨로 대신 나누어 지어야 했으니
어찌 보면 그리 평탄한 삶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다시 태어난다면 아마 나는 그저 평범한 아낙으로 남편의 그늘에서
조금은 부족해 보이는 이로 살고 싶을 것 같다.

그래서 가끔은 그의 든든한 어깨에 때론 살포시 기댈 수도 있는
내가 먼저 손 내밀 수도 있는 그런 여자로 살고 싶다.

살아가면서 아내의 목소리가 담장 밖으로 나가지 않게 살아내는 일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란 걸
어느만큼은 살아보고 난 연후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는 아마 꽤나 여러번 담장 밖을 넘나들 만치 나의 목소리를 흘려 가며 살았던 거 같다.

쌀쌀맞고 차가운 아내에게
다시 태어나도 당신이랑 결혼하겠다고 말해주는 남편의 그 말이 비록 빈말일지라도
듣고 있으면 기분좋은 걸 보면 우린 누구나 사는 동안 누구에게 어떻게 대하며 살았는가가
사는 내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마치 무슨 업적처럼 남아있는 듯 하다.

사랑은 늘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는 곳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나이를 보태어감과 함께 깨달아졌으면 좋겠다.

상대방의 부족함을 더 많이 알면 알수록
내가 채울 수 있는 빈 공간이 있으면 있을수록
내가 표현할 수 있는 사랑의 깊이가 더해간다고 그리 생각하며 살 수 있기를
나는 진정으로 바란다.

내게 주어진 현실은 아직도 내가 기댈 수 있기 보다는
내가 더 넉넉한 언덕이 되어 주어야 하는 삶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마저도 내 몫의 삶이기에 그냥 그렇게
좋은 시선으로 바라다 보며 좋은 마음으로 보듬어야 하겠지 ...

이제 좀 있으면 본격적으로 바쁜 시즌이 그에게 올텐데 ...

그의 건강을 위하여 나는 좀더 윤기나는 밥상이라도 마련해 주며
그가 마음 편히 그의 일에 열중할 수 있게
늘 그래왔듯이 우리 가정을 살뜰히 가꾸어 줌이
내가 그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일 수도 있을 것이다.

20년, 혹은 30년을 살고난 뒤엔 나도
다시 태어나도 난 당신과 결혼하고 싶어... 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 만큼
지금 내가 그에게 용기와 기운을 가져다 주어야 한다면
마땅히 그리해야겠지 ...

지금의 나는 그에게 가장 필요한 사람일런지도 모르니까

물오른 나뭇가지에 봄의 생명력이 느껴지는 이즈음
우리의 가정에도 저마다 새록 새록 움트는 사랑의 메세지가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해가 뜨면 활짝 웃음짓는 베란다의 빨간 튜울립 꽃바구늬가
출근하는 나에게 잘 다녀오란 인삿말을 건넨다.

해가 지면 다시 아담한 크기로 예쁘게 안으로 미소지을 줄 아는
튜울립 바구늬는 돌아오는 나를 다시 반겨 주리라.

우리의 사랑도 그렇게 환하게 미소지으며
하루 하루를 영글어가게 할 수 있었으면 ...

뚜렷한 이유도 없이 며칠동안 우울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농담처럼 건네는 남편의 말 한마디에
아무도 모르게 찾아온 혼자만의 우울을 걷어내 보고 싶다.

아주 열심히 길을 걷다가도 때론 돌부리에 채이기도 하는 게
우리네 삶이겠지만
이상하리만치 쉽게 털어내지 못하고 자꾸만 쌓이는 감정의 두께들을
내 스스로 치유하기까지는 일정한 시간들을 필요로 한다.

일상속에서 들었던 따스한 몇 마디의 말이 위로가 되기도 하니
나도 누구에 말한마디라도 정겨웁게 건네 보아야지 ...

오늘의 삶이 나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이에게
내가 뭔가를 해줄수 있어 그 즐거움이 남다른 거라면
기꺼이 순응하며 고락을 함께 할 줄 아는 것이야 말로
그 무엇보다 진솔한 삶의 의미가 아닐까?

다시 태어나도 당신이랑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 만큼
지금 곁에 있는 이를 사랑할 수 있음은
잠깐 동안 주어진 삶의 여정에 내린 축복일 것이다.

사랑하는 일에 인색하지 않은 사람으로
내게 주어진 아름다운 소풍을 보낼수 있었으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