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제비꽃 밭을 보았습니다.
오래 전 일이라 기억마저 희미한데 어느 조그만 절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앞마당 한 쪽에 마치 잔디밭처럼 가꾼 곳이 있는데 온통 제비꽃으로 덮여 있었지요.
흰 색 제비꽃과 보라 색 제비 꽃이 섞인 채로…
마치 화려한 페르시아 카펫처럼…
그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한참을 바라보았던 생각이 납니다.
지난 해 새로 이사 한 아파트 화단에 보라 빛 제비꽃이 군데군데 눈에 띄었습니다.
꽃이 지고 밥풀 크기의 씨주머니가 생겼지요.
어릴 적 생각이 났습니다.
친구들과 제비꽃 씨주머니를 따서 쌀밥, 보리밥, 맞추기를 하였던…
씨앗이 잘 익어서 색깔이 짙어진 것은 보리밥이라 부르고 미처 익지 않아 아직 하얀 색깔은 쌀밥이라고 불렀지요.
그 때 생각에 제비꽃 씨주머니를 따서 장난 삼아 손으로 문질러 보았습니다.
보리밥이었지요.
잘 익은 씨앗들이 엄지와 집게 손가락 사이에서 흘러내렸습니다.
몇 번을 해보다가 보리밥과 쌀밥을 손으로 문질러 보지 않아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씨앗이 잘 익은 것은 씨주머니가 위로 꼿꼿이 솟고 아직 덜 여믄 씨앗은 씨주머니가 꼬부라진 채 있다는 것을…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벼하고 전혀 반대였습니다.
아파트 천지에 제비꽃이 피었지만 이상하게도 우리 집 앞엔 별로 제비꽃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장난 삼아 따던 씨주머니를 일 삼아 따다가 우리집 앞 화단 가장자리에 뿌렸습니다.
얼마 후 조그만 싹이 돋았습니다.
화단 가장자리를 빙 둘러 돋은 파릇한 새싹이 있으니 보기 좋았지요.
가을이 되고 낙엽이 떨어졌습니다.
경비 아저씨는 열심히 낙엽을 쓸었습니다.
제비꽃 새싹이 솟았던 자리도 쓸려나갔습니다.
새싹이 돋았던 자리는 흔적도 없어지고 겨우내 썰렁한 모습으로 남아 있었지요.
날이 풀리고 햇살이 따뜻해져 화단에 나갔던 전 깜짝 놀랐습니다.
경비 아저씨의 야무진 비질에 제비꽃 새싹은 흔적도 없이 벌건 흙만 보이던 곳에 무엇인지 솟아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제비꽃은 죽지 않았습니다.
죽은 듯이 땅 속에 숨어있었을 뿐…
조금씩 조금씩 자라더니 드디어 오늘 그 중의 하나가 꽃망울을 맺었습니다.
꽃망울 끝에 살짝 보이는 보라 빛을 발견하고 탄성이 절로 나왔습니다.
즉시 내 머리 속엔 제비꽃이 활짝 핀 화단이 떠올랐습니다.
그 때가 되면 나의 화단은 생기가 돌 것입니다.
나의 봄은 더욱 찬란할 것입니다.
앙증맞도록 조그만 보라 빛 제비꽃이 화단 가장자리를 빙 둘러 피어나면…
제비꽃 봉우리가 가져다 준 조그만 기쁨으로 나의 하루는 행복이 가득한 날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