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시할머니 제사다.
어휴~ 한숨이 나오지만 도리없는 일이다.
내게 주어진 일이기에...하지만,
나는 분명히 둘째며느리로 시집을 왔다.
그것도 첫째 조건이 장남이 아니라는 둘째라는
이유가 솔직히 호감이 갔기에 남편을 택했다.
친정이 종갓집이라 어릴때부터
많은 제사를 지내는 엄마의 힘든모습을 봐온터이고,
제사가 끝나면 동네어른들은 기다리고 계시다가
밤12시가 넘었는데도 제삿밥을 드시로 오셨고,
못온집에는 음식을 차려 몇군데를 아침일찍
돌리는것이 내차지였기에 나는 제사날만 되면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때부터 장남에게는 절대로 시집을 가지않겠다는
말이 입버릇처럼 되었었다.
둘째인데다가 결혼당시에 군인인 남편을 따라
전방에 있었기에 명절때도 시댁에는 가지 않았다.
그러다가 제대를 하였고, 근무처인 고향근처로 오게되었다.
10년전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기직전에 제사문제로
식구가 의논했었다. 시숙은 딸만 셋이라 제사를 지낼수 없다는
괴상한 논리로 종갓집장손임에도
제사지내기를 거부하였고,(우리는 아들하나,딸하나)
그 당시 시동생은 아직 미혼이었다.
집안일이라곤 손도 까딱안하는 남편은 내 의견은
일언반구 물어보지도 않고 선뜻 우리가 제사를 모시겠다고
선언했다.오늘내일하는 시어머니앞에서 감히
반대의사를 내비칠수가 없었고,그때부터 나는
장손며느리 노릇을 했다.
주위의 친척어른들은 조상 잘모시면 복받는다고
듣기좋은 말들을 했지만 솔직히 그때심정은
떼복이 굴러 들어와도 차버리고 심정이었다.
친정엄마는 제사를 한번 받으면 평생을 지내야한다면서
당신처럼 막내딸이 짊어지는 무거운 짐을 안타까워 했지만
어쩔수 없는 상황이었다.
일년에 9번 제사.
일자체가 힘든것 보다 사람들 뒷치닥거리가
더 힘들었다.객지에 있어 명절때는 친척들이 며칠씩이나
묵는 바람에 진을 다뺀다. 언젠가부터 제사가 다가오면
보름전부터 머리가 지끈거렸다.
시장에서 힘들게 제삿장을 보는 나에게 지나가던 수녀님이 친척들
한사람 한사람을 예수님.부처님,공자님,성모님..죄다 성인으로
여겨 보라 했다.그러면 친척들대하기가
훨씬 수월할거라고..나더러 천사가 되어 보라고...
그말의 효력으로 몇년을 버텼다.
그런데, 작년부터 서서히 약효가 떨어지는지
천사흉내가 내기싫어졌다. 올해들어 세번째 제사..두달뒤에
또 제사..
난 천사가 아닌데, 평범한 인간인데.. 천사의 가면을
이제는 벗고 싶다.
아, 그러나 현실은 나에게 가혹하게
끝까지 천사흉내를 내라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