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274

요즘의 실장 선거...


BY 이쁜꽃향 2002-03-12

아컴방에 넘 오랜만이라
모든 님들께 안부 전하고픈데
하고픈 얘기 하나 있어 ...

둘째녀석 중학생이 되어
신학기 실장 선거가 있댄다.
담임은 아마 녀석이 인물이라 여기셨는지
연설문(?)을 준비 좀 해 오라셨단다.

왕년의 경험으로야 얼마든지 조언을 해 줄 수 있겠지만
강산이 벌써 몇 번이나 변할 정도의 세월이니
어찌 그 시대와 같으랴 싶어
좀 극성인 후배들에게 물어볼까 생각도 했지만
그냥 혼자서 끙끙 앓기만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밤,
그 후배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선거에 쓸 원고를 작성 중이라며
왕년에 서 먹었던 글귀 좀 기억해 보라는 거다.

푸하하하
그 시절이 얼만데...
너네들이 좀 알려주라 웃었더니
정말 어처구니 없는 내용을 불러 주는 거다.
요즘은 그렇게 해야 먹힌대나...

.......
우리는 한창 자라는 청소년입니다.
먹을 땐 실컨 먹고
놀 땐 신나게 놀고
공부할 땐 어느 누구보다도 열심히 공부하는
우리 **중학교의 최고의 반을 만들겠습니다.
저를 실장으로 밀어 주십시요.
그럼 정말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여기까진 그런대로 좋았다.
그런데 요즘은
맨 입으로 안 통하는 때라나.

들어가려다 다시 나와서,

아참!!
제가 실장이 되면
크게 한 턱 쏘겠습니다!!!
하라는 거였다.

난 그게 무슨 소리냐,
무슨 초등 학생이라더냐
말도 안된다... 등등 열변을 토했지만
그네들이 중3학년 애들에게
'얘들아, 요즘은 어떤 애를 뽑아 주니?'
했더니
'한 판 쏜 애를 뽑아 주죠'하더라나.

아들에게 그 원고를 보여 주니 노발대발.
그렇게 비겁한 짓을 해 가며
실장 하는 짓은 안 한다나 뭐래나.

수행 평가에 점수가 들어 가니 임원은 해야 한다고
아무리 설득해도
'뇌물은 절대 쓸 수 없다'라며 화만 낸다.

달래다 지쳐 나도 화가 나
잠시 숨을 돌리는데
뒤늦게 귀가 한 남편,
이 글 누가 썼느냐며 대뜸 버럭 소릴 질러 댄다.
이런 짓을 왜 하느냐고...
그런 임원은 하지 말라고...

졸지에
부정비리의 불명예를 뒤집어 쓰고 입 다물고 말았다.

한 턱 쏘겠다고 공약을 한 녀석들은
둘 다 실장이 되었고
우리 아들 녀석
끝까지 제 고집대로 정의만 부르 짖더니
한 턱 내겠다는 여자애에게 몇 표 차로
부실장으로 밀리고 말았다.

그래도
앞으로도 임원 안 했음 안 했지
그런 비열한 짓은 할 수 없다며 입술을 꽉 다문 녀석을 향 해
작은 목소리로
부정부패를 가르치는 이 에미의 심정
님들은 아실런지...

아들아.
그건 뇌물이 아냐.
딴 애들은 다 하잖아. 응?

솔직히 맘은 편치않은데
워째
세태가 그렇게도 변해 버렸다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