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에 친정고모님들께서 나만 보면 돌놈이라 놀렸다
돌놈이란 요즘말로 돌연변이란 뜻과 일맥상통한다
왜? 그런 별칭이 붙었는지는 머리가 자라면서 스스로 알게?榮?
고모세분이 계신데 천상 여자의 조건을 고루 갖추신 분들이고
여형제는 무두 나까지 네명인데 세명은 핏줄을 이어받아
여성스럽고 얌전하다는 평을 어른들로 부터 듣고 자라온 터수인
데 유독 나만 여성상과는 거리가 멀었기에 아마도 돌연변이라고
들 했나보다
우선 나는 목소리부터가 화통처럼 크다
우리 할아버지가 제일 싫어하신게 여식의 목소리가 담밖으로
나가는걸 엄청 싫어하심에도 내 목소리는 담을넘어 삼이웃이 들
썩 하도록 소리를 질러대는 목소리에다 걸음걸이도 사뿐사뿐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보폭도 크고 빠른데다 겅중겅중 거리다못해
뭣이 바쁜지 항상 우당탕탕 부딪치고 자빠지고 별스러웠다
그것뿐인가 안방 큰 전축은 들고 다닐수 없으니 중학교때 부터는
트랜지스타 라듸오를 보물처럼 품에끼고 화장실로,바깥마당으로,
부엌으로, 볼륨도 최대한 키워놓고 들으니 할아버지 장죽이
나만 집에 들어오면 재떨이에서 불을 튀겼다
그런 내가 뭘 하고 놀았는지는 뻔한 대답이 될것 같다
앉은뱅이 책상 맨 아래칸 서랍을 열면 그 당시 내 동생이나
친구들은 헝겁쪼가리나 수놓을때 쓰는 색실 따위들이 있엇음에도
내 서랍은 구슬,딱지,제기차기 할때 제기만드는 엽전,그리고
못을 다다닥 붙여올리는 재미로 큰 말굽자석이 있었고 새총만드는
고무줄까지 다양한것들이 있엇다
구슬도 안에 무늬가 없이 그냥 검거나 푸른구슬은 먹보구슬이라
해서 바깥 대문곁 나무아래 뱅 둘러 얹어두지만 요즘 구슬처럼
구슬속에 무늬가 들어간것을 "아이노꾸"라해서 보물단지처럼
그 당시 애들이 아꼈다 "아이노꾸"한개하고 먹보구슬 다섯개하고
바꿔주기도 하고 가게서 사면 "아이노꾸"는 5원에 두개
"먹보구슬"은 1원에 다섯개쯤 준것 같다
암튼 아이노꾸구슬은 서랍에 보관해두고 남동생도 내 허락없인
가져다 쓸수 없었다
암튼간에 정적인 놀이보다 활동량이 큰 동적인 놀이를 주로
했는데 그것도 거의 져본적이 없다는게 특이할만 했다
주로 초등학교부터 중,고등학교때까지 통지표에 학교생활난에
기록한것을 보면 명랑쾌활하다던지 무척 활달하다던지 그런
소견을 적은 걸로 봐서 애초 얌전하다는 것 과는 거리가 멀었나
보다.
지금도 술은 기분좋고 벗이 잇으면 대작정도 하는데 그것은
순전히 할아버지 덕이다 . 할아버지 방엔 항상 정종이 윗목에
놓여 있었는데 반주로 드신다고 일년열두달 떨어진적이 없었다
그것을 조금씩 홀짝여 본것이 술을 알게된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
그런 나와 달리 여동생들은 요즘 와서야 맥주정도 마시는걸 본
적이 있다
그런 내게 못말리는 버릇중 하나가 있었으니 바로 좌충우돌식 호기심이다
이건 결혼해서도 이어져 큰애가 고등학교 다닐때 자율학습때문에
늦은 귀가를 하자 남편이 호신용 가스총을 사준적이 있다
손안에 쏘옥 들어갈수있는 크기인데 늘 책가방에 넣어다니다가
어느날 아침 애들 방을 치우다보니 가스총이 책상위에 얹혀
있길래 거실로 들고 나와 방아쇠처럼 생긴곳을 살짝 당겨보았다
아무 반응이 없갤래 꾹 눌러 봤더니 갑자기 슈슝하면서 흰분말이 분사
되더니 눈 이 따가워오고 목이 쓰리고 살갗이 따끔거리고 온통
거실전체가 흰 가루속에 잠겨버렸다
앞,뒤 베란다 창을 열고 그때 아직 어렸던 막내를 현관밖으로
내보내놓고 당황해 한적이 있었는데 저녁에 남편이 아무튼 못말린다면서
가스총을 분해해서 솔로털고 하더니 그걸 왜 당겨보냐구 힐난을
했다 그런경우가 한두번이 아닌 나는 그때만큼은 암소리도 못하고
겸연쩍게 서있을뿐이다
못말리는 호기심의 에필로그는 방송국 노래자랑에서 끝을 맺어야
겠다
우리집 돌연변이라고 지칭하신 고모님들이나 내 형제들은 남 앞에
나서는것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요즘이야 개성시대니 자기PR시대니 해서 마이크 안주어서
못하지 누구나 스타근성들이 있어 불러만주면 한가닥씩 하는
세상이지만 고모님 세대나 내 정도 나이에도그것은 누구나 할수
있는게 아니었다
그럼에도 스승의날,소풍날,개교기념일,등 그런날엔 첫번째 사회를
맡는다는 점이고 두번째는 분위기 맨을 한다는 것이다
그런 소문들을 듣고난후 고모님들 말씀이
"저 애는 돌놈이야 누굴 닮아서 그럴꼬"를 연발하신다
딱 한분 우리 친정아버지는 영원한 내 팬이셨다
그런 끼가 결혼했다고 없어질리 있는가
폐일언하고 애들 셋이 모두 학원보낸후 무료해서 FM을 듣고
있는데 지방문화방송에서 당시 세시에 리퀘스트 노래자랑이란
코너가 있었다
전화로 신청해서 즉석에서 노래를 하는데 반주음악을 헤드폰이나
라듸오를 통해 들으면서 수화기를 들고 노래를 하는 프로인데
하루 대충 다섯명??도 노래해서 금요일까지 수상자를 모아 토요일
주말대회는 방송국에서 하고 그 달 우승자는 주말대회 수상자
끼리 하고 그리고 연말 이런순으로 거의 지금 노래자랑과 같다고
보면 된다
어쨌든 그눔의 호기심땜시 신청을 한것 까지는 좋았다
로고방송이 나오고 담당 PD인지 누가 미리 전화해서 나중에
아나운서 하고 나눌 몇마디 말을 미리 연습시키더니 첫번째타자
노래후 바로 연결되니 전화 끝지 말라고 했다
인터뷰 비스무리한 그 내용이 그때 방학이었는데 주로 애들에게
더운날에 어떤 음료를 주느냐 ,또 결혼 15년이 지났으면 부부싸움을
했을텐데 화해는 누가 하고 어떤 방법으로 하냐 ,뭐 이런거였디
나는 목소리도 가성을 쓰면서 나긋나긋 대답도 잘했다
연습을 마치고 드디어 첫번째 아마튜어카수 노래가 끝나고 내
차례가 왔다 아참 그전에 녹음테잎까지 완벽하게 준비했음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첫 공중파 방송나들이를 기냥 넘길수 없으므로
과시용으로 녹음준비 까지 했었다
그리고 드디어 실전 남,여,아나운서가 번갈아 가면서
질문을 하는데 아귀가 척척 맞아떨어지게 내가 생각해도
기가차게 적당히 눙치고 얼버무려 답변을했다
"백지로 보낸 편지"노래 까지 비음을 섞어가며 썩 잘했는데
그날 오후 집으로 돌아온 남편때문에 상승기류에 이상이 생겼다
남편 왈
차안에서 한숨잘려고 라듸오를 틀었는데 많이 들어본 음성이
나오더라나
그래서 볼륨을 올리고 귀기울이니 부부싸움 화해는 내가 먼저하고
어떤방법을 쓰냐는 질문에는 맛있는 요리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애교작전 을 쓴다는 등 그리고 여름방학을 맞은 애들에게
청량음료는 절대로 안먹이고 집에서 만든 식혜나 오미자 물을 준다는
그런말을 들었다면서 전부 공갈아니냐고 했다
시뻘개진 얼굴로 순간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은 마음이 불쑥 들면서
목소리는 퉁명스럽게
"그라모 방송용인데 뭐라 쿠노"
눈을 희번덕 흘겨주면서 겸연쩍게 말하자
"우리집 냉장고 속 에 사이다,콜라,는 청량음료아니가?"
"그라고 니 말은 바로해야 된다이 운제 니가 내한테 아양한번
제대로 떨어본적 있나"
......................
"와~~거짓말도 잘하더라 내일 내가 방송국에 전화해서 전국민을
기만했다고 글케야 되겠고마"
이러고 약을 올렸다
부끄럽고 민망했던 마음이 싹 가시면서
"참말로 글카끼가 내 몬산다 그라모 입이 댓발 나와서 ?p일씩 빼물고 있다고 하까"
"이제부터라도 방송 나오거든 진짜만 얘기 해라이"
"이궁~ "
"참말로 도움되는게 없다 카이" 혼자서 중얼거리며
구정물 뒤집어 쓴 기분이었다
그렇게 하고도 두어번 방송연결이 되어 나오게 되었는데
아이러니하게 남편이 다 들었고
그럴적마다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돌놈이 이제 어떻게 변했냐고요
아직도 개성 강한 중년으로 이렇게 잘 늙어가고 있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