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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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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낀 샌드위치


BY cosmos03 2002-02-26

" 동서 나야 "
수화기의 저편에서 맏동서인 형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 아, 네에 형님 "
심드렁하니 대답을 하고는 아예 몸을 요위에 깔고 길게 누워버린다.
( 오늘은 또 몇시간을 시달려야하나? )
한두번, 하루 이틀도 아니고...
형님의 푸념을 들어주는것도 서서히 지쳐만 간다.
들으나 마나 또 형님의 며느리 얘기이겠고.
뻔한 레파토리가 오늘도 어김없이 이어진다.
" 내가 말이야 무슨 죄를 전생에 그리도 많이졌다고
며느리한테 이리도 홀대를 받아야하느냐구.. "
" .... "
" 동서 말해봐 내가 며느리한테 못한게 뭐있어? "
" 오늘은 또 무슨일인데요? "
마지못해 묻는 내게 형님은 임자 만났다는듯 넋두리를 쏟아내신다.
" 아, 글쎄 오늘이 보름날아녀? 근데 이것이 전화도 없네그려 "
" .... "
" 지가 맏며느리이고 젤루 큰것이잔여 "
" ... "
" 동서! 듣고 있어? "
" 네 듣고 있으니 말씀하세요 "
하지만 나는 보이지 않는속에서 딴청을 하고 있었다.
미처 읽지못한 오늘 신문을 눈으로라도 대충 훑고는
형님의 말에는 건성으로 네, 네...

형님은 삼남매를 두셧는데 모두 예를 갗추지 않은 딸하나와 아들하나까지 합해서는
여우살이를 시킨 터 였다.
딸과 막내아들은 그들의 짝까지를 어여삐 여기는데
이상하리만치 큰 아들과 며느리를 마뜩찬케 여기곤 하셧다.
큰 아들의 작은 손자는 장애아이다.
아이가 밤과낮 구별없이 오로지 제 에미의 등허리에서만 있으려고하여
질부가 무척이나 힘들어하는것을 나 역시도 간간히 보아오는데.
같은 말이라도 형님은 그리 하신다.
" 이상하네~ 우리집에는 저런애가 없는데 어디서 저런애가 태어났을까? "

그걸 말이라고...
너무도 한심하지만 나는 그저 시 숙모일뿐.
그리고 손 아래의 동서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
형님에게 무어라 반박할수도 없다.
아이가 맨날 제에미의 등에만 매달려있으니 밥을 먹어도 업고 먹고.
잠을 자도 엎드린 상태로 깜박잠을 잔다고 한다.
질부가 그리도 안쓰러워도 나 역시도 선뜻 그 아이를 한번이라도 보아줄테니
자네 조금 편히 쉬라는 말을 하지를 못한다.
한 30여분만을 보아도 온몸이 다 아플정도로 등허리에서
온갖 요동을 다 치는것이다.
그러니 시할머니인 형님도 장애손자를 본다는것이 힘들겠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당신의 친 손자인것을...
가까이 사는 외손녀는 그리도 어여삐여기며 흔한말로 물고 빨고를 하시면서...
왜 친손자에게는 그리도 냉정한것인지 알수가 없다.
아무래도 정상적인 아이를 보는게 편하지.
정신지체 일급의 장애손자 보는것이 편하겠는가?

며느리는 며느리대로 서운한것이 많은모양이다.
지 설움에 못견디면 내게로 전화를 헤서는 하소연을 한다.
결국은 시어머니와 시 아버님에 대한 서운함이지만.
그래도 나는 시 숙모가 아닌가?
오죽하면 내게까지 저리도 서운함을 보일까 싶어
그저 묵묵히 제 얘기를 들어주다보니.
때로는 내가 시 숙모가 아니라 친 숙모로 착각을 하는것도 같다.
며느리의 하소연 들어주랴.
또 한편으로는 시어머니 자리의 형님 하소연 들어주랴.
중간에서 힘들고 불편한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둘은 서로가 혼자만 하소연 하는줄 알지 양쪽 모두 내게 이야기한다는것을 모른다.
그냥, 한귀로 듣고 흘려버리니까.

그래도 답답하다.
어른이, 시어머니의 자리가 조금은 너그럽게 조금은 봐 줄수도 있는것을...
윗 사람이라고 윗 사람 노릇한다고.
그 장애자식을 데리고 힘들게 사는 며느리를
조금만 헤아려주면 안되서 그리도 내게 오만 하소연을 할수가 있는것인지.
중간에서 답답한것은 나다.
혹시라도 말중에 말실수라도 할까봐서 조심조심 하고 살자니
결국 나만 스트레스를 받는것도 같다.
며느리편도 못 들어주겠고...
그렇다고해서 막무가내 시 어머니의 편도 못 들어주고.

그냥 안방에 가면 시어머니의 말이 옳고.
건너방에 가면 며느리의 말이 옳다고.
이쪽 저쪽의 하소연을 들어줄밖에.
너무 많은시간을 형님과 질부 가운데서 샌드위치가 되어 있었더니.
이제는 상대의 말에 진지하질 못하고
그냥 심드렁 해져서는 형식적으로 네, 네와 응, 응을 하며
건 대답을 한다.
오늘도 형님의 전화로 인해 설겆이도 세탁도 청소도
모두 미루어 놓고는 전화기를 왼쪽귀 오른쪽귀를 번갈으며
그 길고 지루한 하소연을 들어야했다.
언제쯤 나는 중간에 낀 샌드위치 신세에서 벗어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