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출장을 갔다. 미국 학회에 논문 발표하러.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 나름대로 할일은 다 한다. 10박 11일의 여행 가방을 싸며 슬며시 웃음 지었다. 이제 자유다. 과연 그럴까.
'간만에 머리 좀 식히고 와요.'
뜻밖에도 입밖으로 나온 인삿말이다. 돌아서는 모습뒤로 아이들이 울고 있다. 갓난 둘째는 찌찌달라고, 네살난 큰애는 안아달라고 운다. 변한것은 하나도 없다.
어제 어느 동호회 가입신청서를 적으며 10문10답을 하게 되었다.
'당신의 꿈과 어릴적 꿈을 적어 주세요.' 이렇게 난감할 수가 있을까. 대충대충 눈치보며 비슷비슷하게 적었다. 그런데 그 질문이 하루종일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뭐였지. 나에게 그런게 있었나싶다.
어릴때 평범한 아이들이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그런 흔한 꿈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던거 같다. 그러다 십대초반 운동을 하게 되었다. 나름대로 키가 컸으니까. 선생님의 권유로 시작했다. 사실 운동신경은 영 없었다. 감언이설에 넘어 간거같다. 그때쯤 특별난 뭔가가 되고 싶었다. 무작정 열심히 했다. 야무지게도 가슴에 태극마크가 목표였다. 뭐 전혀 못 이룬건 아니다. 우리학교에서 공식적으로 국가대표선발된건 내가 처음이라니까. 고등학생때이다. 그후로 난 추락했다. 태극이란 말만 나와도 거부감이 든 시기가 이때부터다. 더이상 내가 하는 일에 쾌감도 흥미도 없고 심지어 지겹기까지 했으니까. 그게 꿈이었을까.
주어진 환경속에 최고가 항상 꿈인 것일까. 난 그랬던것 같다.
그즈음 난 작가가 되고싶었지만 그 생각을 구체화시키는 것조차 겁이 났다. 그저 어렴풋이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수동적인 자세로 이미 다른 꿈을 ?기엔 너무 많이 와버렸다는것이 나의 핑계였다.
그런데 지금은 가끔 후회를 할 때도 있다.
'내가 목숨걸고 하고 싶은것을 가지고 살아가면 어떨가.' 하는 생각을 안해본건 아니지만 무언가가 부족하다. 나는 또 주어진 환경속에 최고가 되자고 마음먹어본다. '훌륭한 엄마, 다정한 아내, 순종적인 며느리 딸.'
어느날 갑자기 또 추락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입밖으로 조차 내뱉지 못한 꿈이 정확히 무엇인지 아직도 가물가물하지만 언젠가 그 꿈을 향해 나아갈 날이 올때까지 고이고이 접어 묻어 두어야 겠다고 다짐한다.
남편출장 마지막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