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파리에서 같은 스튜디오를 사용했던 두 노인화가가 어느날
뉴욕에서 마주쳤다.
"자네 눈 수술을 받았다던데 그 눈을 가지고서야 어디 그림을 계속할
수 있겠나?"하고 한 사람이 물었다.
"보이지 않으면 미술평론을 하면 될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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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 elderly artists, who had a studio in Paris years earlier,
met in New York one day.
"I hear you have just had an eye operation." one artist said
to the other. "Will you be able to see well enough to continue
with your painting?"
"If I can't" said the second artist, "I'll then become a crit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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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5감을 가지고 있어 매일 매일 몸으로 여러가지를 느끼면서
살아간다. 이 5감을 즐겁게 하기위해서 직접 예술활동에 참여하는 사
람들을 우리는 예술가라고 부르는데 여기에는 여러가지 형태의 예술
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다.
예술가들은 직접 창작행위에 참여하는 사람들이지만 나와 같은 평범
한 사람들은 의식주가 해결되면 자연히 '문화생활'이라는 이름하에
연극,영화도 보러 가고 미술전시회도 간다.
내 친구 중에도 그림을 그리는 친구가 몇 명 있다. 그래서 가끔 전시
회에 초대를 받아서 가기도 한다. 또 내가 근무하는 직장이 화랑들이
밀집한 서울 인사동 근처에 있기 때문에 친구의 초대장을 받고서 축하
차 들를 경우도 있다.
한 친구는 추상화를 그리는데 나 같은 문외한은 봐도 잘 모르겠다. 그
래서 "야, 나는 아무리 봐도 잘 모르겠다." 고 하니 "추상화는 그리는
사람의 주관이 들어가기 때문에 뭐라고 설명할 수가 없어. 보는 사람
이 자기의 생각대로 감상하면 되는 거야. 그래서 그림을 많이 보면 감
상하는 안목이 생기는 거지."라고 말했다. 그리고 "팜플렛 뒤에 평론
가의 평을 읽으면 좀 이해가 갈거야."라고 덧붙였다.
그래서 중학교 때 미술 선생님이 생각이 났다. 미술 선생님은 방학 숙
제로 명화달력이나 우표를 가져오라고 해서 학생들간에 원성이 자자했
다. 그런데 그분은 나름대로 명분이 있었다. 학생들이 가져온 그림들
을 모아서 교육 자료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그림을 많이
보여주어서 그림보는 안목을 키워준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졸업할 때
까지 나는 그 수집한 그림들을 본 적이 없다. 후배들이 많이 감상할
것으로 생각한다.
한번은 그 선생님이 미국에서 나온 추상 회화집을 가져와서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그런데 도무지 그림 같지 않은 것들이 많이 있었다. 그것
들을 설명하면서 "그림은 사진이 아니라서 그리는 사람이 사물을 어떻
게 보았냐에 따라서 얼마든지 변형되어서 그릴 수가 있는데 그래서 추
상화가 등장한 것"이란다.
그래서 그림 그리는 방법과 재료도 당연히 다양할 수밖에 없다. 어떤
화가는 벽에 종이를 붙여놓고 멀리서 물감을 한번에 뿌려서 작품을 완
성한다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은 커다란 천을 바닥에 깔아놓고 청소하
는 밀걸레로 밀고 다녀서 그림을 그린다. 또 어떤 사람은 바탕 종이
에 물감을 풀어놓고 발로 밀고 다니면서 작품을 완성하는 사람도 있다
고 한다.
이런 그림들은 당연히 위아래가 구분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 우
스운 얘기가 있다. 어떤 화랑에서 전시회가 있었는데 작품을 설치하
는 과정에서 그림이 위아래가 바뀌었다고 한다. 그런데 나중에서야 작
가가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작가는 자기가 심혈을 기울여 그린
작품이니 위아래는 알고 있어서 거꾸로 걸은 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런데 이 미술활동에도 직접 참여해서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창작을
하는 미술가가 있는 가 하면 그 창작품을 어떻게 감상해야 하는지를
도와주는 사람인 평론가도 있다. 미술을 모르는 나 같은 사람도 유명
한 평론가의 그럴듯한 해설을 들으면 정말 잘 그린 것 같은 느낌이 든
다.
어떤 그림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보면 도무지 무엇을 그린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평론가들이 평한 얘기를 들으면 그럴듯하다. 그런
데 그 평론한 용어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어려운 그림
보다 그 그림을 설평한 평론이 더 어려울 경우가 있다. 우리가 난해
한 철학용어를 이해할 수 없는 경우와 같다.
그런데 실제로 어떤 예술분야에도 평론가라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
들은 실제로 작품을 못 만들어도 보는 눈은 높아서 예술가들이 아주
두려워한다고 한다. 즉 자기를 잘 만드는 것하고 잘 만든 자기를 보
는 눈하고는 다르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작가는
평론가를 잘 만나야 유명해진다고 한다. 유명 평론가가 훌륭한 작품이
라고 신문지상이나 방송에서 자꾸 좋은 평가를 해주어야 미술가라면
그림도 팔리게 되고 해서 그 작가가 성장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화가들이 살아있을 당대에 좋은 평가를 받고 유명해지
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서양의 화가 세잔, 렘브
란트, 고호, 고갱등은 사후에 더 유명해졌고, 살아서는 끼니 걱정을
해야할 정도로 불우한 생활을 하다 죽은 사람도 있다. 우리나라의 이
중섭 같은 화가도 종이 살 돈이 없어 담배갑 종이에다가 그림을 그리
기도 했지만 사후에 더 유명해졌다.
어떤 화가들은 열심히 그린 그림을 혹평하는 평론가들이 정말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울 것이다. 자기의 예술혼을 쏟아 부어 장기간 그렸는
데도 그것을 간단히 몇 줄의 글로 이러니 저리니 하면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도 그림이 아무리 화가의 주관적 표현이라고 해도
보아주는 사람이 없는 그림은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평론가라는 사람
도 존재하게 마련이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에겐 눈이 생명과 같고, 음악을 하는 연주가나 작
곡가에겐 귀가 생명이다. 미술평론가라면 당연히 눈으로 보고 그림에
대한 평가를 해야만 한다. 그런데 위의 유머에서는 화가가 평소에 얼
마나 평론가의 평론을 싫어하거나 못 마땅해 했으면 자기는 눈이 보이
지 않으면 미술평론을 하겠다고 했을까. 즉 평론은 보지 않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형편없는 것이라는 감정이 마음속에 깔려 있는 것 같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