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공부 좀 하려고
책 펴놓고 돌아가지 않는 머리 굴리다가
머리가 아프면
저번에 서점에 들려서 사온 '시 읽은 기쁨'을 읽다가
흐린 날씨 탓으로 돌릴 일도 아니고
그냥 이유를 알 수 없이 우울하고 짜증나는 날인데......
남편은 오늘따라 일찍 퇴근을 했다.
20~30대에는 퇴근 시간이 늦어지면
안절부절 대문 밖에서 기다리기도 했었다
기다리다 못해 나갔던 늦은 밤길
달빛아래 환하게 피어있던 노란 개나리가
지금도 기억속에 잊혀지지 않고 있지만
이젠 솔직히 저녁먹고 들어온다는 전화가 반갑다
남편이 좋아하는 콩나물밥과
좋아하는 반찬 메뉴인
물미역에 오이를 넣고 새콤달콤하게 무치고
시레기 넣은 된장찌게. 무우생채,
시금치무침, 생선조림, 묵나물 무쳐서
한 상 차려서 갖다 바쳤더니
양념간장에 콩나물밥 한 대접 비벼서
쓱싹 해치운다.
마누라 기분이야 자기가 아랴?
건너방에서 책상 앞에 앉아 있는데
평소 습관대로 밥먹은 상 그대로 놓고
열심히 바둑보고 있다
밥상 주방에 좀 갖다 놓고 보면 안되나
바둑으로 성공할 것도 아닌데
퇴근해서 출근할 때까지 그 놈의 바둑 체널
바둑체널 없에버리려고 생각했지만
그럴수도 없고.....
이구 지겨워 !
부글거리는 맘 꾹꾹 누르고
밥상 치우고 설거지 끝
다시 책상 앞에 앉아 책 한페이지도 읽기 전에
남편이 어리광 섞인 목소리로
"여보"하고 부른다
누가 어리광을 부려야하는데?
난 부릴 틈도 없이 어리광은 자기 몫이다
"왜 또?"
"양갱 좀 가져와"
살이 찌든 말든 난 몰라 (속으로) 하며 갖다 주었다
줄 때까지 달라고 할거니까......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또 부른다
이번에는 수정과를 달라고 한다
정말 미쳐!
공부 좀 하려는데 가만 놔두질 않어
나이 먹은 머리로 공부 한다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안다면
이렇게 심부름을 시킬 수 있을까?
그래도 참고 또 갖다 주었다
그 다음엔 과일 .물
내 인내심 테스트하나?
그래도 참는 이유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고
내가 학교 다니는 것 좋아하고
마누라가 즐거운 일이면 다 하라는 남편이기에
남편을 위해 이만한 수고야 할 수 있지
그렇지만 집에 있으면
마당쇠 처럼 몸종 처럼 나를 부려먹으니
가끔은 짜증난다
지금은 머리가 돌것 처럼 짜증난다
요즘 태어났어봐
누가 나처럼 심부름 하고 사나?
남편은 요즘 세상에 태어나지 않기를 다행이고
난 요즘 세상에 태어나지 못한 것이 불행이다
남편 흉 한참 봤더니 속은 시원하지만
양심이 좀 찔리네
흉은 보더라도 미워하지는 말아야지
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내가 사랑해야 할 사람이니까
오늘도 많이 참으며 심부름 끝냈다
오늘 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