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하고................쏘세요!" 하며, 예전에 그 화살 쏘아 번호를 뽑던 추첨이 재미있었는데......요즘은 별 재미가 없어."
"어이구, 복권을 안 사니 재미없겠지. 그때 당시만 해도 왜, 당
신 끄떡하면 복권 사오라고 내가 깜빡 잊을라치면 뭔 큰 난리난것 처럼..."
"헤헤 엄마가 그랬어요?"
"허, 말도 마라 오늘은 꿈이 어떻다 하면서 사 오시오, 오늘은 기분이 어떻고, 어떻고 하니 꼭 잊지 말고 사 오시오.
출근하는 사람한테 꼭, 꼭, 하면서... 몇번을 다짐. 하하, .아마 그 돈 다 모았으면, 아마......"
남편은 무심결에 내뱉은 내 말꼬리를 잡고 신이 나 있다.
'하긴, 한 때 내가 복권이라는 묘한 마력에 푹 빠져들어 곁에서 이런 저런 일로 좀 피곤은 했었겠지만, 그렇다고 지금은 말짱히 손씻은 과거를 들먹거려? 그것도 얘들 앞에서.....?'
남편은 이런 내 불편한 심사를 눈치챘는지 하던 말을 얼버무린다.
"다, 한 때지 뭐."
" 안그래도 더워 불쾌지수가 팍 올라있는데, 열이 치밀어오른 나는 앞에 놓여 있는 칼, 그것도 식칼을 번쩍 쳐들고 쟁반 한 가운데서 '-날잡아 잡수-' 하는 듯 놓여있는 커다란 수박 을 단칼에 내리쳐 쩍~ 반 토막을 내버렸다.
"거 수박이 잘 익었네...당신, 수박 하나는 잘 고른단말야."
"요즘 수박 눈 감고 골라도 다 잘익었더라."
일부러 남편이 내 기분을 풀어주려고 하는 말인 줄은 알았지만, 나는 심통스럽게 받아치며, 쟁반에 '탁 탁' 칼 소리를 내며 수박을 쪼개기 시작하자, 딸아이가 제 동생한데
"복권 추첨은 왜 틀어가지고.. 다른데 틀어봐. 재미없다." 한다.
딸아이의 말에 리모콘으로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대는 아들.
"복권 당첨이 뭐 아무나 되나? 꼴찌에 당첨되려 해도 얼마나 힘든데.... 나는 그 좋다는 돼지꿈을 꿨는데 단돈 500원도 안되더라? 복권, 그거 다 부질없어."
여전히 궁시렁대며, 수박 한 조각을 남편이 긁어놓은 속 삭이는데 부어넣고 입을 꾸욱 다물고 있는데, 갑자기 남편이 뭔가 생각난 사람처럼 벌떡 일어나 방에 들어갔다 다시 나오더니 뭔가를 내 앞에 내밀었다.
"이게 뭐야?"
"당신이 좋아하는 복권이지...즉석복권이라구"
"허, 웬일이슈? 복권을 다 사고? 나 이제 그런 거 안 해."
맘 잡은 사람한테 왜그러시나..."
"어이구, 그러지 말고, 그거 공짜로 얻었어. 한번 긁어봐."
"에이, 싫어요. 당신이 긁던지 말던지....."
내가 싫다고 하자 언제나 처럼 더욱 적극성을 띠는 남편은 백원 짜리 동전까지 손에 쥐어주며 부추긴다
"만약 얼마가 됐던 당첨되면 다 당신 거고, 안 되더라도 뭐 밑질 거 없으니 어서 긁어보라니까? "
"그래요 어서 긁어봐요 엄마,"
"......좋아. 만약 천 만원...아니 억 만금이 되도 달라 안 할 테지?
"하하 그렇다니까."
못이기는 척 나는 야릇한 흥분에 휘말리며 동전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그 막연한 매력덩어리인 복권에 머리를 박고 급기야 행운의 숫자 부분에 칠해져 있는 도금을 벗겨내기 시작했다. 마치 보물상자를 열듯 그렇게.......야금야금/
내 옆에서는 꼴딱, 침을 삼키며, 아이들도 점점 모습을 드러내는 숫자를 지켜보고 있었다.
"저거 분명히 2다!"
아들녀석이 숫자를 다 긁기도 전에 마치 퀴즈를 맞추듯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글자 윗 부분이 산봉우리처럼 둥글게 모습을 드러내던 숫자는 2 . 그러자 딸아이가 아파트 선전문구를 흉내내며 노래하듯
"e 좋은 세상....2 좋은 느낌... 와우, 엄마 엄마, 내가 속으로 2 나와라 했더니 정말 2가 나와요? 이거 뭔 징조일까....아, 만약, 만약에 이 복권 당첨되면, 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나, 옷 한 벌만 사주세요..예?"
하며 호들갑을 떠는데...
"쉿, 좀 조용히 해..."
혹시라도 부정을 타서 될 것도 안되면 어쩌나....'하는 생각이 들어 쇳소리를 내며 아이들의 입을 막은 나는 다음으로 금액란을 벗겨냈다.
첫 글자가 5, 그리고 나란히 동그라미 네 개.
"에게... 5000원이잖아?"
마치 잔뜩 불어넣은 고무풍선의 바람이 일시에 푹... 빠져나가는 느낌을 받은 나는 맥이 빠진 목소리고 겨우 5000원이냐는 듯 남편 쳐다보며 말했고, 남편은 그런 내 모습이 한심하다는 투로,
"5000원이든 얼마든 당첨만 되면 당신 것이라니까? 당첨된 것도 아닌데 국물부터 마시네. 아,5000원이 그렇게 만만해보이나? 거, 싫으면 이리 주셔!."
"누가 싫다했어요? 그냥 그렇다는 거지....."
나는 남편이 복권을 도로 달랄까 겁이나 금새 말을 바꿨으나 복권에 불어넣던 내 헛바람은 5000원어치로 여지없이 쪼그라들었다. 그러나 그런 내 기분이
"와, 5000원이면, 치킨 반 마리네? 그거 당첨되면 치킨 사줘요 예? 엄마."
"흐...그러지 뭐,"
딱 5000원이면 되는, 딱 그 정도의 돈이면 충분한 아들녀석의 작은 소망에
'그래, 네 바램이 치킨이라...그렇다면야.'
사실 '5000원의 개념을 100원 짜리 알사탕에서부터 가치를 매겨보면, 5000원은 대단한 위력이 있다. 아들녀석에게 치킨만 사 줄수 있다면 좋겠네~ 나는 좋겠네...하며, 콧노래까지 불러가며, 나는 아주 홀가분한 기분으로 행운의 숫자인 2 를 찾아내기 위해 떨리는 손으로 도금된 숫자를 하나 하나 차례로 벗겨 가는데
"어...ㅇㅇㅇㅇ어어? .... 2 2 다! 2 ! 2 예요. 엄마, 2 !"
아이들의 좋아라하는 소리
'정말 .........이거 정말 2네?'
"와!!!!하하하하!11"
우리는 마치 보물단지라도 찾아낸 사람처럼 환성을 질러댔다. 그런 우리를 동물원 원숭이 구경하듯 빤히 쳐다보던 남편 괜히 인상을 쓰며,
"허, 정말이네....참나," 하며 마치 하나도 기쁘지 않은 표정을 짓는다.
그런 남편의 말투가 왠지 껄끄럽게 들렸지만,
어쨌거나 내 기분은 공중에 붕~~ 날아 올랐고, 아이들에게 치킨을 사 줄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큰 일을한 개선장군처럼 우쭐해져 있었다.
"엄마! 밑에 보너스상품도 있어요. 어서 긁어봐요>"
딸 얘가 보너스까지 챙긴다.
'음, 보너스라...' 다시 빵빵하게 부풀기 시작하는 기대.
어지러운 현기증을 느끼며 보너스 상품 칸을 벗기는데.
"가 가만, 이 이거 티......티, 티고 맞지? 이 그림하고 똑같은거 나오면 당첨...맞지?"
"으악, 티코닷!"
"저 정말....정말, .티코야!? "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복권으로 난리난 집 풍경 생략
'어 어디 이리 줘봐. 하, 하, 정말 티코....? 이거 정말 미치겠네.....'
5000원에 당첨됐을 때도 떨떠름한 표정을 짓던 남편이 또 떫은 감 씹은 얼굴로 눈을 둥그렇게 뜨고 행운의 티코를 확인에 확인을 거듭, 그 틀림없는 사실 앞에서....머리를 쥐어짜는 시늉을 한다? 그렇거나 말거나 내 기절할 지경의 기분! ' 어떻게 표현할 길 없어 실성한 사람처럼 버둥거리는데.
"끄 응!"
앓는 소리를 내며 남편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그래도 아,이쁘고 사랑스런 남편,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고, 멋져 보이는 남편! 티코를 안겨준 그 남편을 존경스레 올려다보며
"이 돈.....은행에 가면 주나? 차도 은행에서 주나?"
내딴에 아주 상냥스럽게 묻는데,
"......휴우"
다시 땅이 꺼거라 한숨을 내쉬는 남편.
'참 못됐다.'괜히 복권을 내게 줬다고 후회스러워 저러나?'
남편이 까닭없이 툴툴거리자 나는 남편의 마음을 십분 헤아리는 마음으로 더욱 애정어린 눈길로 올려다보며,
"이거 나 혼자 다 안가져. 아유, 어떤 사람들은 복권 때문에 쌈하고 재판한다는 기사도 났더만, 헤헤.. 난, 정말 그런 욕심 없으니 괜히 그러지 말고 이리 앉아요 응?"하고 소매를 붙드니
"저....시 실은.....그 복권말야."
"......복권이 왜?"
"실은 그 복권....."
"....??"
"지 지급기한.......지 ..난 ..거 야."
????( @),(@)......서 설마!!!!!!!!!!!!!!!!!!!!!!!!!!!!!
끄~~~~~으~``응~~~
머리 싸매고 누웠어도 티고가 왔다갔다.....이거 뭔 병이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