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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나서


BY 이재조 2002-02-18

오늘 저녁에 응급실이 나오는 방송 프로를 보고,
생각이 나서 몇자 적는다

병원생활을 입.퇴원 반복해가면서 2년을 했었다
실로 병원생활이라는 것이 아픈 당사자도 문제지만,
그 사람을 보고 앉아 있는 사람도 참으로 대단한 문제다
매끼니마다의 식사가 그러하고,
무료한 그 시간들 또한 그러하다.

아파서 치료받고,의사 만나 면담하고,병의 상태를 알아보기위해
이것 저것 검사할때는 그럭저럭 하다가도,
밤만 되면 잠도 오질 않고,갖가지 잡념에 날밤을 새우기도 일쑤다
그저 인간의 그 마음이 웬수인 것이다.
변하는건 하나도 없으면서,어찌 그리 그 마음만은 그리도 변화
무쌍하더란 말이냐.

그렇게 잠이 오지 않는 밤에,
병원을 이잡듯이 잡고 다닌다
매점에도 가보고,병원 주차장에도 나가보고,
괜히 잠자고 있는 남의 병실 문도 삐꼼히 열어보고,
복도에도 나가보고,1층 접수창구에도 나가본다.
그래도 사람구경할곳이 한군데 있기는 한데(환자와 간호사와
의사말고 일반인),거기가 바로 응급실이다.

내 자신이 응급실에 실려온 경험도 더러 있었거니와,
응급실에서 누가 누구요,뭐하는사람인지,
왔다갔다하는 그 누구한테건 말을 걸지도 않거니와,
각자 너무나 바쁘기 때문에 곁에 사람 신경쓸 새도 없다

병원을 휘젖고 다니다 그래도 잠이 오지 않으면
슬그머니 응급실 복도 의자에 앉아있곤 했었다
저 멀리서 병원 응급차 소리가 들리고,
사람들 발소리가 들리면,
바로 누군가는 실려오게 되어있었다.
그 뒤로 따라오는 황급한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괜시리 내가 그집 아무것도 아니면서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서서 따라 들어가보곤 했던 생각이 난다

더러는 교통사고로 실려오고,
약을 먹은 사람도 실려오고,
감기가 심해 열이 떨어지지 않는 아기도 왔다.

괜히 복도 의자에 앉았다,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다보면
시간은 새벽을 훨씬 넘기고 그제서야 졸음이 밀려왔었다
안면이 있는 의사나,간호사들은 왜 안자냐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쳐다보고,그럴때면 슬그머니 5층 엘리베이터에
올라탄다.

5층 내 병실이 있는 병동에 오면
아직도 그 새벽에 나처럼
잠이 오지 않아 도시의 새벽을 쳐다보고 있는 다른
환자복의 환자들이 몇몇있다
그저 애?J은 음료수 캔이나 마시기도 하고,보았던 신문을 뒤?이며
또 하루를 생각하고 있다.

병원에서 가장 괴로웠던건
꽃피는 봄으로 생각이 된다.
병원에서 여름도 보내보고,가을도 보내보고,겨울도 보냈지만,
가장 괴로운것은 봄이다.
꽃이피고,느껴지는 기운이 따사로운,전같지 않은 느낌에
몸은 스멀스멀 봄이 온것을 감지하고,자유의 갈망이
겨드랑이 밑에서,발?x꿈치 에서 피어오른다

특히나 개나리 진달래 흐드러진 병원의 앞마당을 보고 있노라면
내 오늘밤에 달려나가 저누무 꽃을 전부 뽑아 버리리라
하고 다짐도 해보고,(이것은 기운이 펄펄할때 생각이고)
괜시리 창밖으로 고개만 돌려도 그 봄 꽃의 색으로 인해
벌써 기가 죽어서 눈물만 난다

꽃은 저렇게 겨울을 잘 지내고,또 꽃을 피우는데
서른이 갓넘은 나는 언제 한번 저렇게 흐드러지게 꽃한번
피워보나 하는 생각에 누구에게 포악한번 떨것도 없이
스스로 삭아내린다

어쨋거나,
지금은 병원 생활을 접고, 언제 그랬냐는듯이
그저 어서 봄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봄이 와서 산에 꽃이 피길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