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지 이제 오년. 9월이면 꽉 채운 결혼 오년차가 된다.
직장에서 오년차면 업부적으로나 연륜으로나 아무도 무시 못하는 존재가 되지만, 왜 결혼 생활에는 그런 힘이 배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시쳇말로 뱃심같은 거 말이다.
고부 갈등이야 새삼 새로운 문제가 아니다. 너무 진부한 문제다. 그런 진부한 문제를 떨쳐 버리지 못하고 허덕이고 있는 나는 또 얼마나 진부한가?
이제는 시어머니에 전화도 하기 싫다. 말도 하기 싫고 얼굴도 보기 싫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가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자꾸 그렇게 된다.
시어머니는 성격상 과시욕이 강하고 허영심이 많다. 말이 많고 태도를 자주 바꾼다. 그런 시어머니에게 이제껏 맞추어 왔다. 서어머니에게 잘 한다 잘한다 하면서 마음에도 없는 칭찬도 해주면서 맞추어 왔다.
그런 내 태도가 마음에 안 찼던 것일까? 시어머니 그 빠른 눈치로 내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충성심을 안보인다는 사실을 알아챘기 때문에 그게 마음에 안 드는 것일까? 하지만 그건 내 능력 밖이다. 그만큼 해줬으면 됐다는 생각이다. 시어머니가 필요하다고 하면 언제든지 그 요구에 응해 주었지 않았는가? 그리고 실질적인 도움도 수없이 주지 않았는가?
시어머니는 왜 나에게 그렇게 관심이 많을까? 그것도 천박한 호기심으로 말이다. 내 뭘하는지 어딜 다니는지 그런 걸 일일이 알고 싶을까? 내가 집을 어떻게 꾸면 놓고 사는 지 옷을 어떻게 입고 있는지 그런 게 왜 궁금할까?
그런 시어머니 성격, 태도, 지금까지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그 허영심과 과시욕에 지쳤다고 생각할 즈음 아랫동서 될 얘가 인사차 왔다. 그리고 지금 결혼 준비가 한창이다.
그 과정을 지켜 보며 아 이건 정말 아니다 싶은 생각이 자꾸만 든다. 지금까지 그 집-시댁- 식구들에게 정이 안 갔던 이유를, 그리고 시어머니에 대한 판단이 점점 명확해지면서 그나마 있던 정까지 떨어진다.
시어머니는 항상 나란 존재를 경계해 왔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았다. 시어머니 마음에는 두 가지 생각이 공존하고 있었다. 노후를 맡겨야 하니 저 아이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이기적인 계산과, 그렇다고 해서 저 아이가 날 무시하게 할 수는 없다는 자존심.
평소 시어머니가 이기적이고 계산이 빠르다는 것은 알았지만 나에게까지 그럴 줄은 몰랐다. 아니 내가 멍청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오히려 나란 존재가 시어머니에게는 더 잔머리 굴려야 하는 존재가 아니었던가.
시어머니는 항상 내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유심히 관찰하고 내 반응에 일일이 신경을 쓴다. 하지만 동서될 얘에 대해서는 한없이 너그럽다. 심지어 그 아이 앞에서 나한테 절절 매는 모습까지 연출한다. 자기 마음이 걔한데 가는 걸 감추기 위해서인지 걔한테 잘해서 내 질투를 유발하면 자기한테 불리할까 봐서인지.
그러면서도 내 앞에서 걔 칭찬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한다. 난 뭐란 말인가? 근 오년 동안 뼈 빠지게 봉사했는데 인정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했는데, 아직 시집 오지도 않은 얘는 무슨 공주처럼 받들여지고 말이다. 내가 나가서 일하는 건 싫어하고 아랫동서될 얘는 집에서 살림이나 하고 있을 얘가 아니라고 하는 그 이중성은 또 뭐란 말인가?
우리 밑으로 시동생이 둘이 더 있다. 동서가 들어 올 때마다 난 그 스트레스 다 받아야 하는 것인가? 자신이 서지 않는다.
나도 점점 계산적이 되어간다. 시어머니 나에게 해준 거 하나도 없다.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정말 째째 하게 따지는 것 같지만 김치 한 번 해 준 적 없다. 그렇다고 잘 했다고 칭찬 한번 해준 적은 더더군다나 없다.
하지만 난 시누이 아들, 딸 빤스 한 장까지 다 챙겨 준 적이 있다. 아랫 동서 될 애는 우리 집에 놀러 와서 - 나 없을 때- 빨간 립스틱 묻힌 컵 그대로 두고 가버렸다.
아랫동서 될 애는 내성적이고 눈치가 둔한 편이다. 하지만 욕심 많고 허영심 강하고 지지않으려고 한다는 점에서 시어머니와 비슷하다. 그렇게 소심하고 눈치가 둔한 얘의 어디에서 그런 욕심과 과시욕이 숨어 있는지 불가사의할 정도다. 내성적이고 소심해 보이니까 첫인상은 고분고분해 보인다. 하지만 이 쪽에서 조금만 어리숙한 채 가장하니까 금방 기고만장해져서 마치 자기가 전문가인 척, 프로인 척 하는 모습을 보고 기가 막힌 적이 있다. 그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정말 많다.
아랫동서 될 애, 나만 보면 꼭 빼 놓지 않고 물어 온다. '뭐 하세요?' 만나는 말 마다 빼 놓지 않고 항상 묻는다. '요즘 뭐 하세요?' 걘 출세 하고 싶은 거다. 출세해서 뽐내고 싶은 거다. 자기애가 강한 얘니까.
난 인복이 없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그렇게 만드는 것일까? 이 모든 상황을 나의 속좁음으로 자책하게 돼는 것은 왜 일까? 하지만 내 사정 아는 친구들은 그 시어머니 대단하다 그런다. 그 동서 철 없다 그런다. 그래도 이 문제가 풀리질 않으니 답답하기만 하다.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하지만, 그 미움의 불씨는 꺼지지 않고 항상 마음 한 쪽에 남아 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까 진부하다는 생각 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이 해결은 아니다. 긍정으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니까.
누구의 말처럼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이런 진부한 문제 때문에 힘들어 한다는 건 정말 낭비다. 난 그동안 내 욕구를 너무 많이 눌러 왔다. 결혼하기 전에도 그랬고 결혼 이후에도 그랬다.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랬던 건 아니다. 상황이 날 그렇게 만들었고 난 그것을 피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이 결혼은 실패한 결혼이라고 생각한다. 내 상황을 오히려 악화시켰을 뿐이니까.
아줌마, 오년차.
어 넓은 세상 안에서 내 감정이나 머리는 자꾸 작아진다. 좁아진다. 이런 내 모습에 스스로 한심해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