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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 슬프다.


BY 얀~ 2002-02-14

명절이 슬프다.


설날 준비 첫번째는 장보기다.
식품점으로 향하는 차에서 바라본 잿빛 하늘이
하얀 떡가루를 날리기 시작했다.
흰눈이 달려들어 내 품에 안겼다.
첫눈이 다섯시간 펑펑 쏟아지던 그때가 새롭게 밀려들어,
흐릿한 눈을 크게 뜨곤 소릴 질렀다.
"눈이다 눈이닷"
삼십분 펑펑 쏟아진 눈처럼 그렇게 오는 해는 넉넉했음 좋겠다.
설날 차례 음식과 끼니 최소 비용은 155,000원이다.
떡가래는 방앗간에 맡겼고,
곶감은 동서가 손수 만든걸로 쓰고
나물은 있는 걸로 쓰려고 한다.

손아래 동서 가족이 왔다.
장 본걸 부엌에 풀러놓고 남편과 잠시 사찰에 들렸다.
나무마다 포근한 눈에 덮여있었다.
소복하게 쌓인 눈을 사람이 다니기 편하게 치웠다.
눈을 치우고, 법당에 들어서 차분히 정근을 했다.
고요함 속에 새해를 시작하려고 말이다.
은은한 향내와 빛을 발하는 얼굴들...

모임에 참석해 대화를 나누었다.
명절을 잘 보내는 방법에 대해 말했지만,
남자들보다 집안 일이 많은 여성들에겐
명절을 축제처럼 보낸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남자도 가사 일을 함께 하길 권하고,
자발적으로 많이 하지만,
어차피 한정적이고 남자들이 음식을 장만하기도 어렵고...

시댁은 내 집으로부터 십오분 거리였다.
어찌 어찌하여 어머님이 함께 살게되자 시댁이 곧
우리집이 되었고,
친정도 오분거리이니 벗어날 길이 없다.
몇 시간씩 달려 고향에 가는 귀향길 소식을 접할 때마다
복에 겨운 소리라고 할지 모르지만
정말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볼 때가 있다.

아침 밥을 먹고,
가끔 힘들면 침대에 누워 책을 읽으며 위안을 삼는다.
점심을 먹고 남동생을 불러 정장 차려입고 사진을 찍었다.
예전보다 둔해진 몸,
사진을 찍는다거나 차려입고 화장하는 일이
드물었음에 색다른 기분이었다.
바람만 덜 불었어도 좋았을 것이다.
오랜만에 외출에 꽁꽁 얼어 집에 들어섰다.

동서와 차례 음식을 만들었다.
남편이 뭐 도와줄 것 없냐길래
어깨를 흔들며 안마해주길 기대했더니
동서 앞이라 쑥스럽게 도망질 친다.
동서부부는 거실에서 tv를 보고
난 코고는 남편 옆에서 뮤직비디오를 보다 잠들었다.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갔다.
산길에 쌓인 하얀 눈이 떡고물 같다.
백설기 같은 눈이 다져지는 소리...

점심은 떡국을 먹었다.
그리고 동서 부부는 준비를 하고
친정으로 향해 가는 배웅을 했다.
남편이 친정에 가자하는데 난 안가겠다고 했다.
딸아이가 억지로 끌고 세배하러 가자하여
귤 한 박스, 엄마 기저귀 두 개를 사들고 갔다.
물론 남동생 부부에게 늘 편한 마음이 아니기에 힘이 드는데,
친정아버지의 말에 또한 가슴이 아파서 돌아왔다.
오래 있지도 못하고,
"니들 아버지 용돈 이십만원 정도는 내놔야 하지 않냐?"
도망질하듯 친정에서 나와 집에 돌아왔다.
현관에 들어서자 전화다.
"네"
"지금 서울인데 출발한다고.."
"네..."
시누의 전화입니다.
그냥 쓰러졌습니다. 몇 시간 후에 시누 가족이 왔습니다.
저녁 챙겨서 먹고, 술 나누고 침대에 누우니,
몇 시간의 낮잠 때문에 뒤척이며 잠 못 이뤘습니다.

아침에 어머님이 준비한 밥과 국을 먹었습니다.
점심엔 새로운 반찬을 해야겠습니다.
밥 먹고 치우자마자 갈비를 사고 간단한 장보기를 했습니다.
남편은 모임이 있어 나가고 점심을 먹고,
시누 가족이 가는 걸보고
들어섰는데 갑자기 사일이란 증발된 시간이 섭섭했습니다.
아이들 데리고 롯데리아에 가서 햄버거를 사고
사진관에 맡긴 사진을 찾고,
그 중 억새 앞에 팔짱을 하고 포즈를 잡은 사진을 몇 장 더 뺏습니다.
가게에 나와 사진을 보며 몇 자 정리하러 컴 앞에 앉았습니다.

계속 전화가 옵니다.
박절하게 바쁘다고, 할 일 있다고 거절합니다.

<명절에 집을 찾지 못하는 사람과 집을 찾는 사람들>
명절에 찾을 곳이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명절에 찾을 고향은 있어도 찾지 못하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다.
명절에 부모가 있음은 행복한 사람이다.
명절에 부모가 없음은 불행한 사람이다.
(왜 난 부모가 옆에 있는데,
마음이 편치 못하고 명절이 되면 슬픈 걸까?)

-흑흑...글 좀 쓰겠다는데
가게 앞에 차를 세우고 다들 차안에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별수 없이 컴을 끄고
어른들과 술을 마셔야겠습니다....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