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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인 나와 놀아 주기(겨울여행)


BY 들꽃편지 2002-02-14

호수공원엔 얼음이 녹아 있었습니다.
친정 남동생들과 아이들과 호수공원을 찾았더니
바람이 물결을 일으키고
바람이 가만히 걷고 싶은 우리들을
다시 차안으로 밀어 넣어 버렸습니다.

겨울은 어느곳에 있든간에
바람이 매섭고
기온이 살갗을 아프게 합니다.

호수공원 호숫물은
한쪽은 얼어 있었고
한쪽은 물의 원리인 흐름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물 가장자리엔 물풀이 자랐던 흔적이 남아 있었고
나무들은 자신의 키를 여실이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잔디는 마른잎이 되어 땅에 바짝 엎드려 있더군요.

우리들은 잠깐 호수공원 물가에 서서 아쉬움만 남기고
발길을 돌릴 수 밖에 방법이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제일 아쉬워 하더군요.
얼음이 얼어 있으면 썰매를 탈려고 단단히 기대하고 있었을텐데...
썰매를 타지 못해도 바람만 불지 않았으면 공원길을 거닐었을겁니다.
그래서 아이들만큼은 아니였겠지만
내게도 아쉬움이 한웅큼 머리속을 스치고 있었지만 내색을 하지 못했습니다.
혼자선 아이들을 데리고 어느곳에든 나가고 싶지 않았다는 것과
아빠와 같이 여행 온 가족들을 당당하게 바라 볼 내가 못된다는 것과
이렇게 나약하고 속좁은 엄마라는 것도 숨기고 싶었습니다.

아이들과 난 스스로 나아가는 배랍니다.
바람따라 찬찬히 떠도는 돛단배.
사공이 많아 육지로 가는 배는 아니지만
말이 없이 떠돌아가는 배.
그저 가라앉지 못하게 하나는 배 앞쪽에 앉히고 하나는 배 뒷쪽에 앉히고
난 배 가운데에 앉아 목적도 없이 지금 주어진 상황에 최대한
힘들어 하지 않고 슬퍼하지 않고 내색하지 않는 한 척의 돛단배랍니다.

오늘같이 바람이 힘차게 불면 돛을 단 배는 빠르게 달려가겠지요.
그러나 목적지가 없어 어디로 가야하는지 선장인 나도 그건 잘 모르 겠습니다.

호수공원엔 바람과 함께 사람들이 오고가고 있었습니다.
바람이 얼마나 성질을 부리는지
머리가 뒤엉켜 짜증이 날 정도였습니다.
막내 아이의 잠바 뒤에 달려 있던 모자를 씌어 주며
"상윤아 물이 얼지 않아서 그냥 가야겠다."했더니
"저쪽엔 얼음이 얼었잖아요" 하더군요.
미안했습니다.
겨울내내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은 물론 산책도 못했습니다.
바쁘다는 것으로
춥다는 이유를 대며
피곤하다는 엄살을 피우며
겨울동안 훌쩍 어느곳이든 떠나질 못했습니다.

이리 가까운 호수공원에도 여유롭게 나오지 못했다는 걸 압니다.
뭐하느라 이랬나 했지만
아이들도 이러한 엄마를 원망하거나 불평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은 엄마 마음을 알겠지요.
혼자라서 쓸쓸해서 생활비에 쪼들려서...
그리하여 짜증나고 귀찮아서...
그러나,멀건이는 모를겁니다.
어제는 데리고 나가지 않는다고 얼마나 보채는지.
보다못해 한마디를 했습니다.
"밖에 추워서 나가지 못 해! 봄이 오면 자주 나가자?"
했습니다.
그랬더니 오늘은 칭얼거리지 않았습니다.
말못하는 미물도 내 마음을 읽었나 봅니다.
아니다.멀건이를 데리고 나가지 않은 건 정말 추워서였습니다.
참!
나중에 멀건이가 우리집에 살게 된 이유를 쓰겠습니다.
멀건인 잠시 우리집에 맡겨 놓은 개랍니다.

또 다른 한 해가 왔습니다.
겨울동안 이런 저런 이유로 여행을 떠나지 못했지만
그래도 감사했던 겨울이였습니다.

아직도 ?겨나지 않은 집이 있고
나에게 일할 능력과 건강을 주셨고
아이들이 큰 탈없이 한 살만큼 커있고
귀엽고 애교스러운 개 한마리를 가난한 우리집에 살게 했고...
적고 보니 감사할 일 많았습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