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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을 앞두고


BY 나야 2001-03-14

아들이 조심스레 상자를 놓더니 "엄마 선물이에요. 이따 보세요"하며
황급히 나간다. 아침부터 흐린날씨예보를 해대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
보니 사탕 1개와 초콜릿 1개가 들어 있다. 아침에 화이트 데이 운운하길래 국적불명의 명절이라며 예사로 흘렸는데 .......

나는 아들만 셋인(아니 넷인가) 엄마이자 아내이다. 내 이름은 내 자신도 어색하기만 하고 이제는 당연히 xx엄마다. 사람들을 만나도 서로의 이름은 없이 몇년의 인연을 만드는 아줌마이다. 항상 나를 위해 우선순위로 살려고 발버둥치고 나름대로는 앞서가는 의식을 가졌다고 생각하는데 여전히 내 이름은 없다. 윗집아줌마는 나보고 놀라워 한다. 항상 바쁘게 다닌다고. 막내 를 놀이방에 보내면서 돌아올 중년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 보려고 지금도 나는 바쁘다. 공부하고 모임갖고 집에서는 퀼트하고. 그래도 나는 내이름이 점점 낯설다.
내나이 40이 목전인데 아직은 그 나이로 보아주지 않음에 자위하면서도 거울에 비친 내모습이 씁쓸하고 사진 찍는 것이 싫다.
성형외과의 잡지내용에도 눈을돌려 보고 아이 셋을 모유로 길러서 할머니 가슴같은 내모습에 샤워할때 거울을 보지 않는다.
그러면서 점점 나이를 먹는다는게 두렵다. 왜 난 나이 먹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까

작은아들이 제형이 놓고 간 초콜릿을 보고 급히 가게로 달려가 가나 초콜릿을 두고 간다. 비시식 웃움이 난다. 아직은 이 맛에 엄마 자리의 자리가 익숙한걸까?

흔히들 우리는 낀세대라고 한다. 시부모에 대한 의무는 있고 아들로부터는 자유로워야 하는. 아들이 셋이라 여자 짝꿍없이 앉는 아이들이 예사롭지 못하고 주위의 아들이 많음에 걱정이 늘어진다. 하지만 어쩌리. 그것들도 그들의 인생이겠지. 아이들이 자라면서 그들에 대한 해결할수 없는 문제에 노출되면서도 난 나의 독립을 시작할때라고 나를 재촉한다. 그래서 요즘 나의 큰 화두는 '무엇을 하면 좋을까? 나의 잠재된 나의 능력이 무엇일까?' 이다.

조금만 몸이 이상해도 수명다한 가전제품처럼 고칠 수 없을 거란 두려움이 앞서고 사회속에서 일견 비켜선 구경꾼에 익숙해 이 사회의 구성원이 될 수없을 것같아 정말 무섭다. 나를 찾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