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어제 이 가령 선생님의 자녀 글쓰기 지도 공개 강좌를
다녀온 뒤 쓴 편지랍니다. 그 분 강의실에 올린 글인데 어제 어느 분의 댓글에 거길 간다고 적었으므로 다시 올리게 되었습니다)
이가령 선생님.
강의를 들으면서도 같이 점심을 먹으면서도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참았답니다.
컴에 나온 얼굴보다 실물이 훨씬 미인이시더군요.
어쩌면 그렇게 말씀도 구수하게 잘 하시던지요?
말귀 어두운 제 귀 안으로 맞어 맞어 정말 맞어 수없이 맞장구를 쳤습니다.
아이들 문제는 갈수록 어렵더군요.
아이의 키에 따라 고민이 늘어가는 것 같아요.
현 시대에 발맞춰 제대로 에미 노릇을 못하니 제 발 저린 탓이기도
할겝니다.
4학년과 2학년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갈수록 태산이라고
일기 독후감에 아이들이 꽤 고민을 하는 경향이 많아서 만사 제쳐
놓고 오늘 거길 가서 선생님을 뵈었습니다.
회사도 땡땡이를 쳤다네요.
점심 후엔 더 앉아서 이런저런 얘기들 많이 하고 싶었고
듣고 싶었는데 오후의 일정이 남아 있어서 냅다 뛰었습니다.
두시까지 도착해야 하는 곳이 있어서 얼마나 부지런히 뛰었던지
등에서 땀이 후줄끈히 흐르던군요.
모든 일정을 마치고 오후 다섯시 반 한강 다리를 건네는데
오늘 하루 온전하게 잘 뜬 해가 기울어지고 있었어요.
그 반짝이는 해를 반사한 한강의 물결이 버스창으로 거울처럼
비춰드는데 야! 오늘 하루 행복하게 지나갔구나.
목안으로 침이 꼭깍 넘어가데요.
버스에서 내려 아이들에게 전화를 했더니 도체 받지를 않는 겁니다.
전날밤 큰 아이가 저녁을 먹다가 엄마 이빨? 그래서 아이가 가르킨
이빨을 가만 손댔더니 쑥 빠지는 거예요.
야 돈 벌었다며 속으로 좋아했는데 화장실에 다녀온 아이가
입가에 피를 흘리면서 엄마 이빨 남았어 그랬거든요.
이빨이 부러졌다고 판단한 저는 아침엔 아이 등교 시켰다가 1교시
시작 전에 데리고 나와 마저 뽑고 올려 보내고 글쓰기 강의갔다가...등등 하면서 하루 계획을 세웠다가.... 새학긴데 아침부터 번잡스레
하지 말고 오후로 미루자 하곤 종일 달리기를 한거였어요.
치과를 데려가려고 아무리 전화를 해도 안받자 옆집 아줌마 집에
전화를 해서 겨우 접선을 해서 아이들을 만났네요.
치과 선생님이 아이 이빨을 보더니 글쎄 부러진게 아니라 새 이빨이
난거라지 않겠어요.어금니였다고 해도 새 이빨인지 부러진 이빨인지도 모르는 엄마가 생활에 얼마나 부실하겠어요.
중앙대학교 근처라고는 하지만 집이 워낙 꼭대기여서 먹을 것을 사들고는 아이들과 함께 오래 오래 걸어가며 많은 얘기들을 나눴어요.
큰 아이는 야채 봉지를 들고 가고
작은 아이는 딸기를 들려서 해걸음을 걸어왔네요.
집으로 올라오는 길엔 늘 짐을 분배해서 들고 온답니다.
너는 우유 들고 너는 시장 바구니 들고 ... 부러 두부를 들려주고
달걀을 들려 주지요.조심해서 들고 올 와야 할 것들을 아이들 손에
들려 줍니다. 올라와선 얘깃 거리가 더 많아집니다.
이제는 아이들도 숙달되어 묵사발 두부도 없고 달걀 마시지 한
달걀들도 없고 죽이 된 딸기들도 점점 줄어들고..
늘 걷는 똑같은 길이였고 늘 얼굴 비비며 사는 아이들인데도
오늘은 몹시 마음이 넉넉했고 가벼웠답니다.
아마 선생님 덕분이였던 것 같습니다.
더구나 학기초여서 가슴 졸였던 부분들이 많았거든요.
삶은 늘 어제같은 오늘
오늘 같은 내일
별일이 없는 나날들이여야 한다는 대목에서 박수를 친 앞에
앉은 엄마였습니다.
돌아와서 저녁을 해 먹이고 숙제를 봐주고 아이들 옆에서
꾸부리고 잤는데 고만 일어나 보니 앞치마를 입고 자고 있었어요.
일어나 못다 한 일을 하고 앞치마를 벗고 두서없는 글 올렸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후기
다른 분들도 시간이 허락했으면 많이 오셨으리라. 생각해봅니다.
말귀 어두운 아줌마인 제가 잘 알아들을 수 있는 강의에다 "세상을 클릭한 아줌마들"이란 책 한권에 점심까지 대접 잘 받은 하루였네요.
양질의 교육을 받았음에 마음 뿌듯했고 행복했습니다.
너무 피곤해서 앞치마까지 입고 잤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으면서 결혼을 늦게 한 탓에
아이들이 어린 저는 아이들을 제대로 된 학원 한군데도 보내지 않고
사는 데다 어찌나 쥐잡듯이 잡는지 하루는 딸이 정말 우리 엄마 맞어
하는 소리까지 하더군요.
어떻게 하는 것이 잘 가르치는 것인가
항상 고민이지요.
아래 닭 홋님의 글을 읽고는 또 코가 석자나 빠지고 맙니다.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것.
넉넉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을 가르치는 것.
제가 아이들에게 물 주듯 쓰다듬으며 하는 바램입니다.
그러게요, 제 힘은 이것밖엔 더 없네요.
2001년 3월 14일 새벽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