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서야 들어왔어요.
물론 집에는 오후 느즈막히 들어왔지만, 아이들 챙기고, 집안 청소하고, 된장국에 깎두기반찬을 맛있게 먹구, 저녁 뉴스를 보고 났더니 금방 이렇게 시간이 잘 가네요.
에세이 방에 들어와서는 제가 읽지 못한 글들을 하나씩 클릭하여 읽어보고, 놀웨이님 학교에 급식당번 가셔서 아이들 밥 퍼주고, 청소하시는 모습이 눈 앞에 선해서 잠깐 혼자 빙그레 웃었어요.
처음에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나서 느끼는 그 감정, 올바르게 씩씩하게 잘 자라며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아이가 이해하고, 되도록이면 다른 아이보다 앞서나갈 수 있다면 얼마나 흐믓할까.... 하고 생각하던 제 모습이 떠올랐어요.
(전 이제 급식당번 졸업했답니다... 룰룰루... ^.^)
초등학교에 아이를 보낸 모든 엄마들에게 가끔 저도 한마디 하고 싶을 때가 있어요.
절대루 '촌지'는 안된다.
절대루 '과잉충성'은 안된다.
절대루 '엄마가 대신'해서는 안된다.
다른사람이 하는 것에 휩쓸려서도 안되고, 어떤 것이 진정 선생님과 아이를 위한 길인지, 그 기준에 맞추어서 해답을 구하면 올바른 학부모의 자세가 나올거라고 믿어요.
저에겐 학교선생님을 하는 언니가 있어요.
초등학교는 아니고 중학교 선생님이라 조금 느끼는 정도가 다를 수 있지만, 언니 말에 의하면 촌지가지고 온 학부형에 대해 감사와 고마움의 마음은 들지만 사실 '그때' 뿐이래요.
중학교 촌지라야 현금보다는 구두티켓이나, 과일상자, 악세사리 종류였다고 했지만, 초등학교의 경우는 여러분도 잘 아시잖아요.
그거 '그때' 뿐이라고 하니, 하나마나 아니겠어요?
제 언니는 무척 검소해요.
은행 다니는 형부와 연예결혼을 했었는데, 둘 다 양가에서 팍팍 밀어줄 형편이 아니었으므로 처녀총각 시절에 모아 놓은 돈으로 집을 장만했고, 결혼식도 올렸고, 그렇게 시작했어요.
알뜰살뜰한 언니, 또 언니 못지않게 알뜰살뜰한 형부...
수년을 작은 아파트에서 벗어나질 못했는데, 드디어 결혼생활 12년만에 조금 더 큰 평형의 아파트로 옮기게 되었을 때, 전 언니의 살림살이를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어요.
재활용 쓰레기로 분리되어도 좋을만큼 족히 닳고닳은 플라스틱 쟁반, 우유나 치즈를 사면 사은품으로 주는 반찬통들, 시집갈 때 함께 시장돌면서 사 온 값싼 그릇들이 그대로, 하나두 버리지 않고, 12년이 넘는 세월을 그대로 함께 살아온 그릇들이 즐비하였어요.
그 작은 씽크대 안에 어떻게 이렇게 많은 그릇들이 들어있었을까, 어쩜 이렇게 하찮고 지저분하기 보이기까지 하는 살림들을 버리지 않고 끌어안고 살았을까....
옆에서 분주하게 이삿짐을 싸고 나르며 가벼운 몸놀림을 하고 있는 언니를 물끄러미 쳐다보았어요.
"언니, 어떻게 이렇게 안 버리고 살아?"
"왜? 그걸 왜 버리니? 아직두 십년은 더 쓰겠다."
그 말이 장난이 아니라 진심인 것을 알아요.
사실 전 그릇이 오래되면 그 공로를 실컷 치하해 주고는 쓰레기통에 던지거든요.
'그동안 우리집에서 쓴맛,단맛 다 보며 주방일을 해 준 너의 공로를 치하하노라. 목숨이 다하도록 우리 가족을 위해 희생하였으니 깊이 감사하며 이제 작별을 고하노라.. '
이렇게요.
수건으로 사용하다가 그것을 걸레로 써야겠다고 생각할 때는 임명식을 해요.
'이제부터 너를 걸레로 임명하노니, 우리집을 위해 최선을 다해 목숨이 다 하는 그날까지 성심성의껏 일하도록 하여라..'
물건에도 각별한 애정이 들어가는 걸까요?
결혼할 때 없는 돈 쪼개가며 마련한 내 소유의 물건들에 대해서는 더 애틋하고, 사랑스럽고, 오히려 더 좋다는 다른 물건보다 그것이 성능이 더 좋은 듯 싶고.
아마 언니 마음이 그랬나봐요.
낡고 오래되어 이제 보기 흉해졌다는 이유로 함부로 버릴 수 없는 마음.
'어거 버릴까?..., 언니, 이거 여기 쫌 이상해..'
그럴 때 마다 언니는 손사레를 치며
'아냐, 아직 멀쩡해. 좀 더 둬 보자.'
하며 다시 새 집, 새 씽크대 안에 차곡차곡 집어넣었지요.
그런 언니였기 때문에 빠듯한 살림에 그때그때 시댁의 사소한 대소사에 빠짐없이 성의를 표하고, 시동생, 시누이들 시집장가 다 보내고, 아이들 올곧게 키워냈겠죠?
형부는 언니만 보면 너무 좋아해요.
너무 예뻐서 참을 수 없다는 듯한 그 표정이 바깥으로, 누구의 눈에나 드러나서 참 재밌어요.
우리들이 때때로
'으~~ 닭 살, 가서 대패 좀 가져와.'
라고 하지만, 그런 형부의 사랑이 얼마나 보기 좋은지요.
나이가 들어가면서 하나, 둘씩 허접쓰레기 처럼 쌓여만 가는 낡은 살림살이들.
이건 요순엄마가 은행에서 받았다고 준 접시, 이건 현신엄마가 선물 준 커피잔, 이건 남대문 시장에서 영진엄마랑 같이 사 온 쟁반,
작은 물건 하나하나에마다 추억이 같이 새겨져 가는 것은 그만큼 나이가 들어간다는 뜻일까요?
나이먹어가는 꼬옥 그만큼 낡아만가는 것에 대한 집착 혹은 애착.
결혼때 사 온 냉장고를 가게로 내 보내면서, 엘리베이터에 실려 내려가는 냉장고를 보면서 꼭 딸을 시집보내는 엄마 마음이 이럴거다..하며 아무도 모르게 뒤돌아서서 입술을 살짝 깨물었던 것을 누가 알라나?
형부와 언니의 사랑이 아름답게 세월만큼이나 더 깊게 영글어가고, 하찮은 물건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하는 언니의 살림이 더 윤택해 지기를 이 밤에 소원해 보았어요.
이번 주는 내내 가게에 나가보려구요.
사소한 제 일손이 다른 분들에게 큰 힘이 되는 것을 보니 정말 뿌듯하고 좋았거든요.
시어머님께서 제일 좋아하시구요.
남편두 제가 가게에 나오면 좋은가 봐요.
그러니 또 나가서 돕고 싶네요.
하루해가 이렇게 빠르게 꼴딱 지나가니 안 늙어갈 수가 있겠어요?
우리 모두 아름답게 늙어가기로 해요.
없어도 불행해 하지 말기.
욕심 버리기.
다른 사람과 입장 바꿔보기.
마음 비우기.
세상을 살아가면서 산 속에 있는 스님들처럼 도를 닦으며 선의 경지에 오른다면 더욱 멋있는 일 아닐까요?
여러분, 모두 평안한 저녁되세요.
일교차도 심하고, 낼 모레부터는 급작스러운 추위가 또 닥친다고 하니 겨울옷 너무 다 넣어두지 마시고요.
그럼, 안녕히 주무세요.
저두 이제 개운하게 씻고 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