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또 웬 비누를 만드신다며 부엌으로 봉당으로 수선하십니다. 어디선가 또 식용유 찌꺼기를 얻어 오신 모양입니다.왜 비싸지도 않은 비누를 구태여 번거로움을 감수하면서까지 만들어 쓴다는 것인지 살림을 막 시작한 철없는 딸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비누 한장에 얼마나 한다구..내가 줄께 사다써."
반갑지도 않은 한소리까지 보탭니다.
"상관 말어, 사다쓰던 매글어 쓰던."
하나
어릴적에도 엄마는 곧잘 비누를 만들곤 하셨습니다. 두세달에 한번씩 들르는 잿물장사가 오면 쌀이나 콩등를 주고 잿물덩어리 얼만큼을 사기그릇에 받아 두었습니다.
먼저 쌀겨를 체에 곱게 내려 녹인 양잿물을 넣고 설겅설겅 반죽을 합니다. 그후 발에 비닐 봉지를 버선처럼 신고 발로 이겨 찰지게 반죽을 했습니다. 그 반죽을 알맞은 두께로 밀어 그늘에 한 이틀 말리면 거무스레한 겨 비누가 만들어 집니다. 아! 그전에 미리 칼로 금을 그어 놓아야 굳어서 떼내기가 쉽습니다.
비누값이 백몇원 하던 시절,농사일에 빨래가 많아 비누도 많이 필요했겠지만 비누값 얼마가 아쉬운 형편은 아니었는데도 엄마는 마을의 다른 집들이 비누 만들기를 그만두고 따라서 잿물장사가 더이상 우리 미을을 찾지 않게 되어서도 , 그 한 참 후까지도 어디선가 구해온 양잿물로 비누를 만들어 쓰셨습니다.그 하이타이란 가루 비누가 나왔을때도 말입니다.
지금의 유식한 말로 환경오염,자원재생 하는 거창한 것을 이미 생각하신 것은 아니었을테죠.그저 다만 만들어 쓸수 있는 것을 단지 귀찮아서 헛돈을 주고 사다 쓴다는 것을 자신에게 용납시키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둘
초등학교때 준비물로 비누를 가져 오라고 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세수 비누가 아니라 빨래 비누라고 강조 하셨을뿐 어떤 빨래 비누를 가져 오라고 하시진 않으셨으므로 엄마는 예의 그 거므스레한 겨 비누를 한장 담아 주셨습니다. 왜 가져 오라고 하신 걸까요? 미술시간에 쓸 조각연습용이었습니다. 빨래 비누에 조각을 하는건 누구의 생각이었는지....
여튼 그날 난 미술시간 내내 준비물을 준비하지 못한 아이들과 함께 교실뒤에 손들고 서서 울고 있었습니다. 어린 마음에도 그 검은 이상한 비누를 꺼내 놓고 아이들의 웃음을 사느니 차라리 벌을 서는게 낫다고 생각했는 모양입니다. 하얀 말표 빨래 비누로 토끼 보다 흰 토끼며 무언가를 만드는 아이들을 보며 다음 시간까지 만들어 오라는 선생님의 말씀도 귓등으로 들으며 그렇게 서서 엄마를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얼마나 내가 창피 했었느지...지금은 그런 알로 울지 않지만 다시 엄마가 비누를 만드는 걸 보니 그 때 생각이 납니다.
한때 폐식용유로 비누를 만들어 쓰는것이 환경의 오염을 줄이는 일이라며 여기저기 붐이 일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를 시행하는 이들에 대한 격찬과 함께 ... 그렇게 거창하진 않았지만 아무것도 모르시던 우리의 어머니 할머니 께서는 이미 그 이전 부터 말없이 몸으로 행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필요한 것을 자연에서 얻고 깨끗하게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방법을 말입니다.그 알뜰함에 관한 정신을 이어받지 못한 지금의 우리를 우리의 자손들이 혹 원망하진 않을까 걱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