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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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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돌아, 30점이라도 좋다. 지금처럼 행복해다오.


BY norway 2001-03-12

우리 아들, 초등학교 2학년.
2학년이 되어서 처음 치른 받아쓰기에서 30점을 받아왔다.
전날 나름대로 연습까지 해갔는데, 그 모양이다.
열심히(?) 하고도 그 점수니까, 괜찮댄다.
아주 당당한 삼돌이다.(울 아들녀석한테 지 애비가 붙여준 별칭)

지난 1학년을 마치면서,
우리 삼돌이도 당연히 성적표를 받아왔다.
물론 삼순이인 누나와는 아주 대조적인 성적표다.
우리 애들이 다니는 학교는 성적을
<잘함, 보통, 노력요함>으로 나눈다.
삼돌이 성적표를 보니,
보통을 나타나는 동그라미가 절반,노력요함을 나타내는 세모가 절반, 그리고 잘함을 나타내는 두동그라미가 가물에 콩나듯 한둘 보이다 만다.
그러고는 전학생에게 분야별로 다 주는 상장을 받아왔는데,
<우정상>이란다.
뭐, 글짓기를 잘하는 것도, 그림을 잘그리는 것도,
그렇다고 하다못해 줄넘기를 잘하는 것도 아니니
선생님도 뭐 꺼리가 없어서 제일 포괄적인(?) 우정상을 주셨겠지.
우정상 받아온 우리 삼돌이.
<엄마가 학교에서 친구들하고 친하게 지내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했지요?>
하면서 아주 자랑스러워한다.
그래서 나두 아주 칭찬해 줬다.
<그래, 그래 엄마는 친구들이랑 사이좋게 지내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 잘했다...>
그러자, 가만 있으면 중간이나 가련만,
우리 삼돌이 뭔가를 열심히 생각하더니,
<엄마, 나, 내 짝하고는 아니지만...(짝하고는 하도 토닥거려서 자리를 바꾼 적이 있으니까....) 내 뒤에 앉은 이준모하고는 되게 친하게 지냈거든요.>
<그래, 그래, 잘했다. 그러니까 선생님이 우정상도 주시지...>
<얼마나 친하게 잘 지냈냐면요,
공부시간에도 내가 뒤돌아보고 너무 친하게 지내니까,
선생님한테 일어~서!하는 벌도 받았구요,
손바닥도 많이 맞았어요.
그렇게 친하게 지내니까, 선생님이 우정상 주신 거지요?>
ㅠㅠ
도대체 우리 아들넘은 뭘 아는 녀석인지, 모르는 녀석인지...
어처구니없어하는 나와, 의기 양양해하는 우리 아들,
그 옆에서 아까부터 엄마와 동생을 한심한 듯
쳐다보고 있던 우리딸 드디어 픽~ 쓴웃음을 날린다.
나이에 비해 너무 야무진 우리 딸,
엄마와 동생이 하는 꼴이 우스웠겠지...

우리 남편은 날 보고 안됐다는 듯이 말하곤 한다.
<당신은, 삼돌이 믿고 어찌 사냐? 늙어서 큰일이다... 나야 뭐 어찌됐든 괜찮지만....>

하지만
길을 걸을 때도 춤을 추듯이 폴짝거리며 걷는 녀석,
겨울 파카가 매일매일 흙투성이가 되어 하루에 한번씩 빨아야만 하는 녀석,
사는 게 즐거워 죽겠다는 얼굴로
마구 놀고 놀고 노는 아들 녀석이 행복해 보여서,
참 좋다.......

근데, 오늘은 급식당번으로 학교 가는 날.
어벙하고 장난꾸러기인데다가, 공부도 못하는
아들을 맡긴 죄로,
선생님한테 납작 기었다 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