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어릴적 술에 취해 집에 돌아오신 아버지의 손에는 흙으로 뒤범벅이 된 작은 나무가 하나있었다.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우리들은 술에 만취된 아버지만을 잠재우기 위해 나무는 뜨랑에 내팽개치고 방으로 아버지를 끌어들였다.
그리고 다음날, 잠에서 깨어 일어난 아버지는 어제 들고 온 나무를 찾으셨다.
작은 나무하나를....
뜨랑쪽을 가르키며 "저기 있어요" 라고 힘없이 말하는 나에게 아버지는 영문을 모르는 화를 내셨다.
무엇이었을까?
아버지의 마음을 알 수 없는 나는 술에 취해 간수 못한 아버지를 더욱 원망했었다.
그러나 이네 밖으로 나간 아버지는 그 나무뿌리에 물을 적셔 놓고, 일상으로 돌아오셨다.
나에게 큰소리로 화를 내시던 아버지께서 아침을 먹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더니만 ,아침상을 물리고, 밭에 나갈 시간에 삽과 나무를 들고 마당한쪽 담옆, 볕이 잘 드는 곳에 정성 들여 그 나무를 심으셨다.
보잘 것 없는 나무 한 그루를....,
그러며 나에게 한마디하신다.
"이 나무는 오동나무야, 언니와 네가 시집갈 때 이것으로 좋은 장롱을 만들어 줄 거란다
"........,
그때 내 나이 일 곱살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계집아이는 그 말의 의미를 몰랐다.
그냥, 아버지의 하는 모습을 옆에서 구경 삼아 보고 있었을 뿐......
세월이 흘러 나무는 조금씩 자라 우리 키 만큼 커져 있었다.
아버지는 술에 취해 집에 돌아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그 나무 옆에서 긴 한숨과 함께 깊은 담배 연기를 뿜어내는 일이 많아져만 갔다.
어린 자식 4남매를 키우면서 혼자 사는 젊은 홀아비의 마음을 우리는 그때 알 수가 없었다.
남편의 무능함과 술에만 파묻혀 사는 모습에 질려 엄마는 돈을 벌어오겠다며 나간
뒤, 벌써 삼 년이 넘고 있는 시간 속에서 아버지의 꿈은 어린 자식 배곯지 않고, 그저 학교공납금을 낼 수 있는 벌이와 아이들을 지켜 줄 수 있는 바람 막이 정도 옅으리라
그런, 아버지가 오동나무에 정성을 쏟는 모습은 또 다른 의미가 있었음을 그때는 몰랐다.
어려운 살림살이 속에서도 세월은 흘러가고, 주린 배를 채워야하는 먹을 꺼리는 아이들이 커갈 수록 더욱더 많이 필요했다.
그러나, 오동나무가 아버지 키를 훌쩍 지나 손을 뻗어 잡을 수 없을 만큼 커가고, 잎이 무성해 지면서 우리는 점점 더 어려워져만 갔다.
아버지의 희망은 점점 살아지고 있었고, 술과 인연을 끊고, 아이들의 든든한 바람막이 일도 점점 힘들어져만 가고 있으니, 아버지도 삶의 힘겨움에 늘 버거워하시는 날이 많아지면서,
중학교에 들어 가야할 언니를 공장으로 보내는 아픔을 맞이 하셨다.
그날, 아버지는 또다시 술을 찾으셨고,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보는 삼 남매의 똘망똘망한 눈망울도 아버지를 위로하지는 못했다.
오동나무가 아름들이로 자라 딸들에게 좋은 장롱 하나씩을 만들어 주는 것이 소원이셨던 아버지.
아이들이 자라 시집보내고, 장가보내는 날까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삶의 끈을 놓지 않겠다
는 다짐을 하셨을 아버지의 마음을 어린 마음에도 조금은 알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날은 아버지의 술 취한 모습도 그리 싫지만은 안았었다.
그리고 세월은 또 흘러갔다........,
오동나무는 보라색 꽃을 피우면서 여름이면 동네 친구들의 그늘이 되어주었고, 넓은 오동나무 잎은 갑자기 내리는 소낙비를 막아주는 우산이 되어주기도 했었다.
아버지의 꿈이 되어주던 나무는 이제는 아버지의 두팔로 안을 수 없을 만큼 자라있었다.
이젠 아버지의 꿈이 이루어 질 날도 얼마 남지 않았음을.......,
그러나, 세월의 무상함 속에 아버지의 꿈은 영원히 정녕 이룰 수 없는 꿈에 불과했음을.........,
아버지의 혹독한 세월을 견디어낸 보상도 없이 꿈은 무너지고 말았다.
언니가 결혼을 하던 그때는 회사에 취직한 후 엄마와 가까이 서 지내던 언니는 엄마가 결혼준비를 해주셨고, 혼수를 모두 엄마의 뜻에 따라 하는 것으로 막이 내려졌고 아버지는 뒤에서 고개를 숙이고 한마디 말도 못하고, 자신의 무능함만을 탓하고 있었으니까.
서를픈 아버지의 인생이 한번에 살아지는 순간이었다.
아버지의 아픔과 고통은 아무런 보상도 없이 그저 무능했던 한사람이 자식들을 고생시켰다는 많은 사람들의 실망스러운 말속에 동정으로만 남아있었다.
정말, 모든 괴로움과 피눈물나는 세월을 살아오면서 아이들의 아버지로 당당하고 싶었던 아버지의 꿈과 희망은 이제 소용이 없었다.
큰딸아이의 결혼에 참석하고 돌아온 아버지는 다음날까지 술에 취해 있었고,
다음날 처음 오동나무를 사왔던 그때 처럼 아침에 일어나 물끄러미 마당 가득 그늘을 만들고 있는 아름드리 오동나무를 바라보셨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톱을 들고 오동나무 곁에 서서 한참을 줄담배로 보내시더니나무를 베는 것이었다.
아무 말도 못하고 지켜보고 있는, 이제는 장성을 한 우리들 곁에서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면서 그토록 정성과 사랑을 드린 자신의 꿈을 잘라내고 계셨다.
아련한 세월 속으로 아버지의 그때 그 모습이 곁에와 속삭인다.
나는 괜찮다, 나는 괜찮다.....................
그러나 얼마나 아프셨을까,,,,,,,,,,,
얼마나 처절하셨을까.............
그 아버지 이제는 당신이 지난 세월을 어떻게 살아왔는지도 모르고 조금씩 조금씩 정신을 놓고 계신다.
치매라는 이름으로....
차라리 그 암담했던 세월보다 지금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는 지금이 오히려 당신은 행복하시리라.
아버지. 당신의 삶이 보잘것 없다하여도 당신이 계셨기에 우리들이 이렇게 당신 곁에 있습니다.
그토록, 소망하셨던 자식들이 결혼해서 사는 모습을 보는 것이 소망이셨던 당신.
우리가 벌써 결혼을 하고 줄줄이 손자, 손녀들의 예쁜 모습도 곁에 있습니다.
이제 할 일을 다했다 는 듯 정신을 놓고 계시는 모습이 너무나 가슴이 아파 당신이 그 옛날 흘리셨던 눈물을 자식들이 흘리고 있습니다.
부디, 건강하소서, 당신의 분신인 저희들이 사는 모습 많이많이 지켜보며, 너무나 많은 맛있는 먹을거리들을 실컷 잡수시고, 좋은 곳도 구경 많이 하고, 즐겁게 살다가 건강한 모습으로
웃으면서 아들, 딸네집 오가면서 당신이 살아오신 삶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알고 가십시오.
아버지, 당신의 삶은 진정 거룩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