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친구엔 여러부류가 있다.
친구면 그냥 친구지 무슨부류냐구 물어오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친구는 참으로 다양한 느낌과 빛을 지닌 친구가 있다.
a는 보기만해도 마음이 넉넉해지는 친구
b는 생각하는것만으로도 가슴이 아픈친구
c는 그를알았다는그 하나만으로도 세상 다 얻은 거 같은 기
쁨을 주는 친구
d는 만날순 없지만 가슴에 영원히 살아있는 친구
e는 그의 아픔을 다 받아서 대신 안아주고픈 친구
f는 꼭 만나지않아도 어딘가에서 같은 하늘을 우러러 보리
라 느낌이 통하는 친구
g는 친구는 친구되,내속 내아픔따위 결코 보이고 싶지않은
이방인 같은 친구
h는 그냥 히죽 히죽 웃음을 머금게 해 주는 친구
i는 생각해서도 보아서도 보려해서도 안되는 금기투성이의
친구
j는 언젠가 꼭 한번 삶의구비 돌아가다 만났음 싶고, 스치
기만이라도 했음 싶은 애절함이 베어있는 친구
k는 기쁘고 슬프고 행복하고 불행하고 울고싶고 주저앉고
싶은 순간순간에 늘 한결같이 내 맘속 구석자리에앉아
나를 기대게 해주는 나무둥지같은 친구..
어떤 친구가 진정한 친구일까?
다,다르지만 진정한 친구의 기준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언젠가 단행본 계간지에실린 상대성에 관한 글을 읽은 적 있다.
잠시 일부를 인용하자면,
''걸리버를 거인이라 생각하는 리리퍼트/소인국/의 주민과 작디작은 소인으로 생각하는 블르브딘나그/거인국/의 주민들..
과연,걸리버는 거인일까, 소인일까?
세상에절대적인 크기란 없다
크기란 너무도 상대적인 것,
모든것은 더 작고, 더 크고, 또 더 많을뿐..
그 기준의 모호함..
무엇보다 더????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것,
세상에서가장 가벼운 것,
가장 가치가 무거운 것,
가장값진 것
가장하찮은것
가장 예쁜 사람
가장 못생긴 사람
가장 고귀한 사랑
가장추악한 사랑...등등
그건,,기준에 따라 엄청나게다른 답을 낼수도 있을것이다.
정채봉님의 "느낌표를찾아서"라는글중에 보면 3천원짜리쇠덩이에 관한 글이 나온다.
3천원짜리 쇠 한덩이,,
그 쇠한덩어리를 간단한 쇠말굽으로 만들면 6천원, 성당의미사??쓰는 도구를 만들면 3십만원,의료용 기기를만들면 3백만원,시계태엽을만들면 3천만원의 값이 나간다..
인간을 쇠로 생각하면 원가가낮은 똑 같은 쇳덩이에 불과하다.
그값이 올라가는 것은 크기도 아니고 무게도 아니며,,연마의고통, 눈물의담금질과 비례한다''/인용
"연마의 고통, 눈물의 담금질에 비례한다"
나는 이 말의 느낌이 참 좋다.
앞서말한 숱한 친구의부류, 그부류중 간혹은 두가지 세가지그이상의 복합적 특성을 가진친구도 있을것이다.
그러나, 내게있어 진정한 친구란 a류도 b류도 c류도 아니며, 그들을 다 복합한 친구도 더욱 아니다.
나를 좋아해주는 친구,내가좋아하는 친구..
어쩌면, 간단해 보이지만, 그기준의유동성에 따라 그친구가소중해질수도 아닐수도 있는 거 아닐까?
내가 그들을 이 세상에 나서 알아오는 사이, 때로는 슬펐꼬 ??로는 기뻤고 가끔은 시기하거나,등을돌린적도 있?E으나,그들은 정채봉님의그한 마디처럼 더 소중해질수도 더 소홀해질수도 있는원가가 균일하지만,그갚어치의 한계가가늠이안되는 쇠붙이''의 습성을 지녔음이리라.
나의친구들
나는그들이 나름대로 소중한 내삶의 일부임을 인정한다.
때로,고통과 시련과 번민을가져다 주는 친구, 또는 항시 변함없이 기쁨만을안겨주는 친구일지라도,어떤기준을 두어 '나의 가장 진정한 친구'라고 한사람을 콕 꼬집기보다
크고 작은 톱니의맞물림으로 커다란 공정이 이어지듯, 내인생과 그들의 인생이 맞물려 돌아감으로써,더나은 미래로 향해가는것이라고 나는 믿고싶다.
내게는 많은 친구가 있고
그들의 부류 또한 여러 갈래이지만
그친구들은 무한한가능성을 지닌 내 삶의 제 5원소이다.
나는나의친구들,
그들이 가진 나름의 美를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