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오케 할머니 서비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246

잡곡밥 사랑


BY 이선화 2000-10-24


1999.12.28

오늘은 조금 일찌기 밥을 앉혔다
아직 플러그는 꽂지 않고 그냥 담궈만 놓은 상태니
쌀이 조금 더 불려지는 셈이다
오동나무로 만든 우리집 쌀통은 유난히 쌀을 내리기가 힘이 든다
손가락이 아픈 나는 얼마전부터 그 일이 꽤나 힘들게 느껴지기 시작했고
그래서 어느날엔가부터 그이가 한꺼번에 쌀을 많이 내려놓으면
난 적당량을 덜어 밥을 하곤했다

오늘도 그이가 내려놓은 쌀을 씻어 삶아 놓은
팥 약간이랑 불린 검은콩 약간을 섞어 앉혔다
잡곡밥을 하지 않고 하얀 쌀밥만 할때면
무언가 영양가가 덜한 듯한 느낌이 들고
그런 밥을 식구들이 먹을때면
내 게으름을 보는듯해서 항상
마음이 편치가 않다

오늘 쌀을 씻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랑도 바로 이런것일거라는...

행여 모자랄까 넘칠까 싶어 염려하면서
어느사이엔가 서로에게 조금씩 길들여지고 익숙해져서
마치 자연스레 상대방의 입맛을 알아
콩밥 보리밥 팥밥을 골고루 때맞춰 앉히는것처럼
사랑도 바로 그런 지혜로운 가운데 성숙해지고 다듬어져가는
것일거라는 ...

오늘도 해가지고 식구들이 다 모이면
어제처럼 옹기종기 모여앉아 정담을 나누며 식사를 하게되리라

늘 비슷한 일상이지만 이런 일상이야말로
얼마나 감사한 나날인지
몸이 아파 끙끙 앓아본 사람들이거나 아니면 한번쯤 심하게
병을 앓아 병원에 입원해 본 사람들은 다 알것이다

지금 썩 건강한 몸은 아니지만 그나마
이만한 여유와 행복속에 지낼 수 있게됨을 감사드리며
언제나 오늘 같은 마음으로 식구들을 위해 잡곡밥을 지을 수 있는
내가 되게 해 달라고 나즈막히 기도 드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