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랄때 엄마는 대문옆에 붙어있는
'변소'를 마루를 닦듯이 걸레로
바닥을 닦으셨다.
종이도 네모반듯하게 잘라서
통에 담아놓고,나플탈렌을 걸어놓아
그 냄새는 지금도 친정집 변소를 생각나게 한다.
왜그리 매일 씻고 닦는냐고 그러면
그 집의 얼굴이 바로 '변소'라며
항상 깨끗히 해야 된다하셨다.
그래서 '변소'의 거부감을 못느끼고 자랐는데,
결혼을 해서
강원도 전방에 살때 시골집 문간방에
세들어 살면서 화장실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볏단도 재여있고 옆에 소외양간이 있어
사람이 옆에 가면 '엄~메' 울고
휑그러니 넓은곳 한가운데 구멍만 파놓아
볼일 보면 쥐가 쓱 지나가는 푸세식 뒷간.
볼일 보는게 죽기보다 싫어서
요강을 사서 소변은 보지만
대변은 슈퍼에 가서 물건을 사고 양해를
구하여 볼일을 보는데 하루이틀이라야지
결국 변비에 걸려 너무 힘들어 하는
마누라를 보다 못해 남편은 대대장님께
말씀을 드려
새로온 참모가 들어갈 사택에 우리가 이사를 들어갔다.
옆집에 높은 양반이 사니 그 곤혹함이야 말할수 없지만
그래도 죽여줍쇼하고 고개를 숙이고 다녔던 기억이 새롭다.
지금 우리집 화장실은 내 피난처이자
내 마음의 양식을 쌓는 곳이다.
남편과 다투다가 한마디만 더하면
큰 싸움으로 이어질것 같으면
화장실로 슬그머니 피한다.
한켠에 책이 항상 몇권이 놓여져있다.
에세이집은 단숨에 읽어내려가는
소설과는 달리 음미하면서
읽어야하니 화장실에 두기에는 적합하여
법정스님의 산문집,박완서씨의 에세이,이정하,용혜원님의 시집,...
한시간 넘게 책을 읽고 있으면
기다리다 지친 남편은 혼자서 큰소리를 내다가
어느새 코를 골고 잠들면 슬 나온다.
오늘 새벽녘에도 잠이 깨어 도저히 다시
잠을 이루지 못하여 화장실로 들어가 다리가
저리도록 책을 읽었다.
이상하게도 화장실에서
책을 읽으면 집중도 잘된다.
남편은 화장실에만 들어가면 나오지 않는 마누라보고
아예 그 안에서 먹고 자고 다하라며 악담을 하지만
나는 아랑곳도 않는다.
나도 모르게 친정엄마를
닮아가는지 화장실 청소만큼은 지금까지 반질거리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