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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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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3) -- 김포공항


BY ps 2002-01-31

오는 봄을 시샘하듯, 3월 초의 날씨는 무척 추웠다.
지금과는 달리 한적했던 김포공항...바람을 막아줄 큰 건물들이 없어,
북쪽에서 날아온 차가운 바람은 보호되지 않은 얼굴을 사정없이 때렸고,
커다란 안경알 밑으로도 밀고 들어와, 며칠간 마를 새가 없었던
나의 눈에 기어코 또 눈물을 고이게하였다.
가는 내가 밉다고... 마지막 눈물이라도 몇 방울 남기고 가라는
뜻이었을까? 아니면, 공항에 환송 나온 친구들에게 젖은 눈을
보이더라도 '바람이 무척 차네!'하며 늠름하게 떠나라는 배려였을까?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먼 공항까지 나오지 말라고 누누히 당부했건만,
비행기 이륙 장면을 내 덕에 직접 보게된다며 나온 몇명의 친구들...
덕분에 콧등이 한번 더 시큰해지고... 고마웠다.
"잘 가라!"
"응! 나 꼭 돌아올꺼니까, 내 자리 비워놔라!"
"....."
"......."
더 이상 말을 못하고 내민 손들을 꼭 잡았다.
차가운 바람에 얼어가는 손들을...


처리해야할 일들이 남아있어 뒤늦게 떠나시는 어머니 대신에 대장이 된
나는, 출국수속을 마치고, 활주로에 서있는 비행기로 가는 버스 안에서
동생들을 돌아보았다. 고등학교와 중학교를 금방 졸업한 여동생 둘,
그리고 초등학교를 막 졸업한 남동생... 며칠 전 손질한 머리모습이
어색하였고, 미국에는 없을거라며 들려 주신 보자기에 싸인 조그만
항아리 하나씩 들고 모두들 얼빵한 표정들...
'시골 촌놈, 서울구경 간다'라는 표현이 떠올라 피식 웃었다.
그리고 나 이상으로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으로 마음이
무거울 동생들에게 한마디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겁낼 것 없다. 늬들 졸업기념으로 미국구경 가는 거니까!"
어색한 웃음이 그들의 얼굴에 흘렀다.

버스가 서, 내리니, 거대한 보잉 707 기가 멋진 은빛 날개를 뽐내며
활주로 끝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날개 밑에 달린 4 개의 제트
엔진에서는 약간의 검은 연기가 섞인 뜨거운 바람이 굉음과 함께
출발준비를 하고 있었고, 생소했던 비행연료의 연소된 냄새는, 떠난다는
생각을 잠시 밀어내고, 우리를 들뜨게 했다.

난생 처음 들어가보는 비행기 안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의자들...
신발을 벗어야하지 않을까?라는 느낌을 준 산뜻한 카펫...
머리 위로 뚜껑이 달린 수화물을 놓는 장소... 협소하지만 무척
깨끗했던 화장실... 모든 게 신기했다.

처음 해보는 좌석 벨트가 재미있다는 듯, 채웠다, 벗었다, 또 채웠다를
반복하던 동생 녀석이 물었다.
"형! 이 큰 비행기가 어떻게 하늘을 날아?"
"신기하지?"
"응!"
"저 큰 날개 보이니?" 창 밖으로 손가락을 내밀며 가리켰다.
"응!"
"표면적이 틀린, 저 날개 위와 아래로 바람이 빨리 지나가면서,
기압의 차이가 생기고, 그 차이에 의한 양력이 비행기를 들어올려
날게 되는거지!" (물리시간에 안 졸은 게 확실하다. ㅎㅎㅎ)
동생이 이해하리라고 생각은 안했으나, 녀석은 마치 알아들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예쁜 승무원 누나들의 비상시 해야할 일들의 설명이 끝나면서,
조금씩 움직이던 비행기에 가속이 붙기 시작했다.
약간의 '요철'이 있는 활주로를 구르는 바퀴가 내는 "쿵쾅 쿵쾅" 소리가
기내를 가득 채우고, '이게 과연 뜰까?'라고 약간 걱정이 되는 순간,
요란한 바퀴소리가 끝나며 몸체가 지상과 이탈되는 느낌이 왔다.

무엇이 그리 급한지, 조급하게 고도를 높히고 있는 비행기 안에서
가볍게 안도의 숨을 내쉬며 창밖을 보니, 군데군데 남아있는 눈속에
얼어붙은 김해평야가 보였다. 그리고,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선명하게
눈앞에 그려지며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흘러 내렸다.
공항에서 꾹.꾹. 참고있던 눈물이...

"저 땅을 이제는....."




*** 조국에 대한 아쉬움에 떠나는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
이해해 주시기를 빌며, 먼 곳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