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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년을 눈꽃을 피우는 朱木


BY 리아(swan) 2002-01-29

남쪽바닷가에 살다보니 겨울을 지내는 동안 눈을 볼 기회가 두 세 번 있을까 말까하여
이번 태백산의 눈꽃축제와 태백산 산행은 다른산에 비해 기대가 컷다
숙박을 예약하지 않은 실수 때문에 태백산아래 눈꽃행사장 부근을
한참을 헤맨 끝에 겨우 민박을 구해서 여장을 풀었다
내가 태백에 대한 선입관은 몇 년 전에 태백을 지나면서 본 산더미
같이 쌓여 있던 검은 석탄과 검은 시냇물 온통 도시가 거무튀튀한 흑빛 이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 태백을 여행하고 나서 내 편견이 얼마나 잘못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태백은 활기에 차 있었다
어둡고 우중충하던 도시는 새로운 변신을 위해 많은 노력과 열의에 차있는 도시였다
무엇보다 아름다운 자연이 태백을 풍요롭게 희망의 도시로 만들어감에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석탄이 80년대 까지만 해도 산업전반의 중요 에너지원 이었던 것이 사양에너지로
전략하면서 석탄을 케던 태백은 검은 탄가루만 날리는 황량한 도시였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나라 유일의 카지노 도시로 탈바꿈되어
돈으로 부를 부르는 도시를 꿈꾸고 있었다

이천년을 눈꽃을 피우는 朱木
(태백산 눈꽃 축제 얼음조각)

늦은 밤이었지만 눈꽃축제 행사장은 아이들을 동반한 여행객들이
얼음조각 앞에서 조명 불빛을 배경삼아 열심히 셔트를 눌러댄다
나도 유난히 빛이 영롱한 조각앞에서 사진을 몇캇찍고
낮선곳에서의 밤의정취에 젖어들었다
석탄의 도시답게 민박집은 밤새껏 따끈따끈한 연탄 구들장이었다
더욱 태백을 정감 나게 했던 건 느닷없는 새벽잠을 깨우는 닭의 홰치는 소리였다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고향의 소리였다
산행을 하려면 일찍 서둘려야했다
태백산의 정상에 핀 눈꽃을 제대로 볼려면 태백산 유일사쪽으로
산행을 해야한다는 말을 듣고 행사장인 당골 민박을 나와 유일사 주차장으로
15분 정도 달려가니 많은 등산객들이 산으로 오를 채비를 하고 있었다
염려했던 것과는 달리 날씨는 그렇게 차지는 않았다
눈발이 날렸다.
겨울산행은 철저한 준비만이 고생을 하지않는 길이라며 남편은
조목조목 챙긴탓에 별 어려움없이 눈산을 올랐다
아이젠을 착용한 발걸음이 약간은 둔했지만 눈 쌓인 등산로는 생각 외로
아주 완만한 길이어서 아이를 동반한 가족산행이 주류였다
많은 아이들이 아빠엄마와 함께 오르는 산행길이 멀고도 숨가픈 길이었지만
아이들은 짜증내지 않고 잘도 오르는 모습이 귀엽고 예쁘다
산으로 오를수록 눈발은 더욱 거세졌고 백설은 곳곳의 설 국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유일사 주차장에서 3.9KM의 힘겹고 고된 산행은 점점 정상이 가까워졌음을
잔 나무 가지에서 피어난 눈꽃으로 알 수 있었다

이천년을 눈꽃을 피우는 朱木
(눈꽃이 피어난 주목)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이라는 주목은 나이만큼이나 몸도 쇄했는지 자신의
비어가는 속을 지나온 풍상에 다 내어주고 인간들이 대신 체워준 무겁고 차가운
시멘트를 거북스럽게 안고 있는 모습이 애처로워 보였다.
정상능선에는 운해와 눈 보라로 멀리 펼 처진 태백의 위엄은 다 볼 수 없었지만
가지와 나무를 감싸고 있는 새하얀 솜털 옷을 입고 자신의 예쁜 모습을
유감 없이 드러내고 있는 눈꽃들의 풍경은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만큼
환상적인 백설의 잔치였다
남쪽에 사는 나로서는 나뭇가지마다 새하얀 눈꽃을 피우고 있는 그런 모습은
내 생애 처음 보는 장관이었고 그 아름다움을 말로서는 표현 할길 없는
지상최대의 백설이 빚어낸 작품이었다
이천년을 눈꽃을 피우는 朱木
(태백산 정상의 눈꽃)

약간의 햇볕만 비췄다면 얼마나 그 고운 모습이 햇살에 반짝이며 아름다움을 더했을까?
안개와 눈발만 날리지 않았다면 보다 선명한 사진을 얻을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남았다
어쩌랴 내 눈(目)속에 내 가슴속에 영원히 잊지 못할 영상으로 간직할 수밖에
정상을 알리는 돌탑을 지나 능선을 따라 조금 내려가니 천제단의 둥근 돌담이 나왔다
옛날부터 역대임금들이 나라의 안녕과 번창을 기원하는 제를 하늘에
올렸다는 천제단을 둘러보고 기념사진이라도 찍을 려니 눈보라는 우리들의
그런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하늘의 허락 없이 인간이 자연을 마음대로 하는 하늘의 노여움인지 카메라 엔 눈이
붙어 습기를 주체할 수 없었고 손은 세찬 바람으로 셔트를 누르는 것이 시리다 못해
따 거웠다.
그런 눈바람 속에서도 천제단에는 무슨 기원을 그리도 절실하게 하는지
자리를 깔고 앉은 기원 객들은 자신의 기원이 하늘에 닿을 때까지 꼼짝 않고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이 보통 정성이 아니었다
10월3일에 천제를 모시는 태백제가 열린다고 한다
이천년을 눈꽃을 피우는 朱木
(백두대간의 등골 태백산정상)

백두에서 힘차게 뻗은 산줄기가 금강 설악을 지나 다시 솟구쳐 오 르며 빚어낸 백두대간의 등골
태백산은 크고 웅장하나 험난하지는 않고 부드럽고 유연하나 자잘하지 않으며 소심하지 않고
기상과 기품이 있어 천제단을 찾는 이들의 기원이 남다른가 보다
천제단을 뒤로하고 만경사를 향해 내려가는 길은 눈을 제대로 뜰수 없을 정도의
눈바람으로 뒤집어쓴 모자 자락에도 손끝의 장갑에도 얼음조각들이 바삭거렸다
단종의 애환이 서린 단종 임금의 비각은 태백의 산신이 되어 외로이 산을 지키고
있다는 전설이 서려있었고 만경사 절에서 마시는 엄동설한의 용정(龍井)의 약수한잔은
세상속에서 찌던 내 오욕을 씻어 내리듯이 짜릿한 찬맛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산을 내려오는 길은 어린아이들의 천국이었다
썰매를 탈 수 있는 신나는 코스여서 힘들게 정상까지 따라간 아이들은
이런 짜릿한 순간을 맛보기 위해 힘든 산행을 마다 않고 부모를 따라 산을 올랐나보다
산 아래에서 빌려주는 "오공썰매"를 짊어지고 올라온 아이들을 등산로 한켠으로
아이들이 썰매를 타고 산을 내려 갈수 있게 다른 길을 만들어 놓은게 특이했다
아이들은 자신이 지고온 썰매를 타고 탄성을 지르며 산을 신나게 내려가고 있었다
안전시설이 되어있지 않은 경사진 썰매코스가 약간은 위험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태백산의 산행을 마치고 당골 "눈꽃축제"행사장에 있는 "석탄박물관"을
관람하는 것도 생소한 그 지방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천년을 눈꽃을 피우는 朱木
(석탄 박물관의 석탄원석)
아이들을 동반한 학부모들의 관람이 특히 눈이 많이 띄었다
태백을 떠나오면서 나는 낯선 고장에 대한 두려움과 또 잘못 알고
있었던 부분들을 새롭게 알게됨이 무엇보다 좋았고
내가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절대로
편견을 가지지 않겠다는 또 다른 일깨움을 갖게 하는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