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창을 닦으며
누군가가 그리운 날은
창을 닦는다
창에는 하늘 아래
가장 눈부신 유리가 끼워 있어
천 도의 불로 꿈을 태우고
만 도의 뜨거움으로 영혼을 살라 만든
유리가 끼워 있어
솔바람보다도 창창하고
종소리보다도 은은한
노래가 떠오른다
온몸으로 받아들이되
자신은 그림자조차 드러내지 않는
오래도록 못 잊을 사랑 하나 살고 있다
누군가 그리운 날은
창을 닦아서
맑고 투명한 햇살에
그리움을 말린다.
詩 문정희
지금 배경음악으로 들으시는 곡은,
"G.Clefs의 I understand" 라는 팝송입니다.
저보다 연배가 조금 높은 독자에게는 아주 익숙한 곡일테고,
-어쩌면, 아련한 추억 한 자락 꺼집어 낼 수도 있구요.^^-
신세대 독자에겐 조금 진부하거나 청승맞게 느껴지는 곡이기도 할겁니다.
조금 전,
낯선 칼럼 방을 몇 군데 순회하던 중, 이 곡을 들었습니다.
'♬I understand just how you feel......'
이렇게 시작되는 부드러운 멜로디에 한순간 맘을 빼앗겨 버린 채,
타임머신을 타고 십 수년을 거슬러 올라가 보았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로 기억합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김광한의 PoPs? -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부드럽고 편안하고 마음을 젖게 만드는, 낯설지 않은 멜로디에 매료되어
한 동안 아무 생각없이 빠져 들었습니다.
처음 들은 팝송인데도 첫소절의 멜로디와 가사가 또렷이 기억에 남아,
'♬I understand just how you feel......' 이 소절을 계속 흥얼거려졌습니다.
며칠 후, 집 근처에 있는 레코드가게에 가서 찾아 보았지만,
수 많은 팝송 속에서 영어 짧은 내가 그 노래를 찾아 낸다는 건,
한양에서 김서방 찾기와 다름 아니었지요.
그 팝송이 좋긴 했지만,
팝송 매니아도 아니었고 영어하고도 친하지 않았던 나는,
그렇게 그 노래를 잊어 버리고 있었습니다.
언제였는지 확실치 않지만 그 해, 어느 휴일이었나 봅니다.
친구들과 광안리 바닷가에 놀러 갔을 때니깐요.
그 땐, 남천동과 광안리가 만나는 그 바다에 도로쪽으로 방파제가
제법 길게 놓여져 있었습니다.
- 며칠 전, 광안리에 가 보았더니 광안대교 공사가 한창이었고,
남천동과 광안리를 잇는 방파제 옆으로 잘 닦인 도로가 나 있더군요.
차량 출입도 통제를 하고 있었구요.
추억 한 자락이 잘려 나간 듯 서운한 맘이 들었습니다. -
그 방파제에 항상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았습니다.
비 내리는 날은 조금 한산하지만, 우산 쓴 연인들은 비와는 상관없이 붙어있습니다.^^
특히, 여름철에는 시원한 맥주를 마시면서 방파제에 걸터 앉아서,
노래하고 얘기나누는 연인이나 대학생들을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나와 단짝 친구 두 명도 이 방파제를 무척 좋아했고 즐겨 찾았지요.
우린 주로 방파제에 걸터앉아 노래를 많이 불렀는데 우리의 18번인,
'♬ 다정한 연인이 손에 손을 잡고 걸어가는 길......'
이 노래를 시작으로 밤배, 모닥불, 얼굴...... 레파토리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한 곡이 끝나려하면, 세 명 중 한 명이 생각난 노래 첫소절을 연이어 불렀고,
두 명도 함께 불렀기에...... 노래 부르며 1시간은 우습게 넘길 수 있었지요.
그 날도 세 명이서 방파제에 앉아 이런 류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기타소리가 들렸습니다.
우리가 부르는 노래에 박자를 맞추어 연주하는 소리였지요.
처음엔 우연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음 노래에도 기타반주가 곁들여져서
우린 그 기타소리가 나는 곳으로 시선을 모았습니다.
우리와 꽤 거리를 두고 -10m 쯤 되었을까?- 오른 쪽 방파제 저 아래에,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자 한 명이 우리에겐 관심도 없다는 듯,
뒤에서 우리가 내려다보는 것도 모른 채 열심히 기타를 치고 있었습니다.
우린 노래를 멈추고 사춘기 소녀의 호기심으로 괜히 키득거리고 있는데,
그 사람이 고개를 돌려 멀뚱히 우릴 올려다 보더군요.
나와 친구들은 마음이라도 맞춘 듯이 그 사람에게 웃으며 인사를 했고,
그 학생은 가볍게 목례를 하더니 다시 고개를 되돌려 기타를 매만졌습니다.
우린 그 사람이 괜히 마음에 걸려 더 이상 노래는 부르지 못하고,
-모두 음치였던 이유로...... ^^* -
학교 얘기로 그냥 수다만 떨고 있었지요.
그런데 우리 수다를 잠재우는 기타소리와 연이어 들려오는 노래소리.
'♬ I understand just how you feel Your love for me ......'
순간, 전 광안리 푸른 바다에 빠지는 줄 알았습니다.
그 노래를 방파제에서 낯선 사람의 기타반주에 맞춰 들으리라고
꿈엔들 생각했겠습니까?
그 대학생이 노래를 잘 불렀는지 못 불렀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그 순간의 놀라웠고 기뻤던 마음은 아직도 가슴 한 켠에 남아 있습니다.
그 후, 이 노래제목을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는 DJ의 멘트에서 들었고,
레코드가게에서 노래를 구해, 노트에 가사를 적어 놓고 달달 외웠습니다.
그 때 처음으로 가사를 다 외우며 -그것도 영어가사를 ^^- 노래를 불렀는데,
참 열심히, 틈나는대로 불렀습니다.
그렇게 멜로디와 가사를 완벽하게^^ 익힌 노래는 몇 달 후,
다른 사람들 앞에서 첫 선을 보이게 되었지요.
그 해 여름,
선생님 몇 분과 선도부원들이 남해 상주해수욕장으로 캠핑을 갔습니다.
캠핑 간 다음 날, 저녁을 먹고 늦은 시간에 바닷가 백사장에 몰려 나와서,
모래위에 퍼질러 앉아 이런저런 얘기로 웃음꽃을 피우던 우리들은,
누군가의 제안으로 돌아가면서 노래를 부르기로 했습니다.
마침내 나의 차례가 돌아왔고,
난 유일하게 부를 수 있는 팝송, 평소에 열심히 불러 두었던 팝송,
'I understand'를 나름대로 분위기있게 불렀습니다.
그런데, 노래 부르며 주위를 돌아보던 난,
너무 조용한 분위기, 의아한 시선으로 날 보는 선배들 앞에 당황했습니다.
자아도취되어 열씸히 노래 부르는 날 보는 선배들의 시선은...... 뭐랄까?
껄쩍찌근하고 떨떠름한 표정......
'쟤가 이 여름 이 바닷가에서 저렇게 청승맞은 노래를 왜 부르나?'
바로 그런 표정이었습니다. ^^;
그래도,
나는 끝까지 꿋꿋하게 다 불렀습니다.
어떻게 배우고 어떻게 연습했던 노래인데......
fan들의 반응에 민감해 할 이유가 없었지요.
-이건 음치의 기본이기도 합니다. 청중 무시, 박자 무시......-
그렇게 노래를 끝내고 마지못한 박수를 받았지만 저는 뿌듯했답니다.
그 어려운 영어 가사 안 틀린게 어디고, 함시롱.^^
오늘,
우연히 이 노래를 접하고서 잠시나마 그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서,
두서도 없이 내 마음결 움직는대로 적어 보았습니다.
잠깐의 시간여행이었지만,
광안리 바닷가의 그 방파제도 그립고,
내 좋은 친구들도 그립고,
남해 상주해수욕장의 밤바다도 그립습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 때 그 시절 그 추억은,
일상의 권태로움을 잊게 해 주는 소중한 보물임에 틀림 없습니다.
2002. 1. 24. 추억 더듬느라 잠 못 이루는 淸顔愛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