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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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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타래 (7) - 도 마


BY oldhouse 2002-01-23

누군가는 기억할 것이다.
내가 등장하는 옛얘기 한대목.

내세울 것이라곤 양반이라는 근본하나만보고 가난뱅이에게 딸을 시집보낸 아비가 있었다.
몇년 세월이 흘러 딸네집을 찾아가게 되었다.
하지만 아비를 대접하는 딸의 정성이 영 아니었다.
한대접 냉수외엔 도대체 끼니상을 올릴 기미가 않보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드디어 방문이 열리고 딸이 들고 들어온 것은 나 도마와 칼이었다.
잠시 숨을 고르던 딸의 냉정한 목소리.
"아버지! 근본이나 썰어드세요"

천만년 칼질을 해댄다해도 이보다 더 깊이 꽂힐수 있을까!

그래요, 옛날옛적 그녀의 한을 풀어주는 뜻에서라도 오늘은 차고 넘치진 않지만 소박한 끼니상을 위한 내 노래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한번 더 이르는 말이지만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그녀로 내세우고 싶습니다.

아직은 이른 봄 언덕 그녀가 나섭니다.
봄햇살로 벼린 칼끝 어린 쑥을 뿌리채 들어올리고 들어올리고
반나절은 헤맸는가 봅니다.
나비처럼 가벼운 몸짓으로 지아비 공양꺼리 안고 그녀가 돌아옵니다.
그녀는 애탕국을 끓입니다.
데쳐낸 어린쑥을 내가슴위에 올려놓고 자근자근 잔칼질을 합니다.
손목에 힘을 빼고도 어찌나 요령껏 칼질을 하던지 오히려 내가 근질거릴 정도입니다.
잘게 썰어진 쑥에다 이젠 고기를 섞을 듯 합니다.
오랜만에 한칼 끊어온 고기를 유난히 소리나게 철푸덕 내게 던져놓고 큼직하게 쓰으윽 자잘하게 서억석 마지막엔 탕탕탕 신나게 고깃점을 아니 나를 두들겨 울립니다.
누군가 들여다 봐주기라도 했으면 하는 맘은 아닐까요.
쑥과 고기로 경단을 빚은 후 조심스레 계란 한알을 꺼내 내 이마를 툭 쳐서 계란물을 입힙니다.
어느새 포르스름한 경단이 동동 떠오른 애탕국을 마주한 정깊은 밥상.

어디 그뿐일까요.
스르렁 열리는 무쇠솥 안에선 밥 말고도 귀하디 귀한 계란 찜이 나오기도 하죠.
쫑쫑쫑 썰어 넣은 쪽파가 유난히 새파란 계란찜.
이런 날엔 영낙없이 내 가슴에도 나를 건너간 쪽파빛 실금이 선명하게남고 고기하고도 안바꾼다는 가을무 쓰윽촤악 쓰윽촤악 동글게 저민점으론 다시 척척척 채를 썰어 생채를 무치고 삭둑삭둑 깍두기도 담고 나박나박 나박김치며 무국을 끓입니다.
아! 참으로 오랜만에 흥건하게 젖어오는 가을, 그녀보다 먼저 맛보는 가을무맛.
어찌 무 뿐이겠어요?
뭐든지 첫번째 맛은 제 차지란걸 그녀는 짐작이나 할까요?
어찌됐든 그녀와 내가 행복하다면 문제될리는 없을겁니다.

흰눈 내리는 음력 정월초하루가 머지 않았나 봅니다.
부엌문 앞에 명태가 말라가고 아침 일찍 잡은 닭한마리가 다시 제 차지가 되었습니다.
살은 살대로 뼈는 뼈대로 발라서 살점은 장국으로 끓여 단지에 푸고 뼈는 고아서 육수를 만들어 따로 퍼 둡니다.
그녀 부부가 내 양 이마 한자리씩을 차지하고 적당히 굳어진 가래떡을 썰기 시작합니다.
소리없이 썰리기도하고 이따금씩 삐-익 거릴때도 있고 뭉텅하기도하고 덜마른 대목에선 쪼올깃거리는 떡점들이 달라붙기도 합니다.
그래도 뭐니뭐니해도 내가슴의 깊은 여운은 또옥똑또옥똑 썰리는 떡점이 하얗게 쌓여가고 이따금 마주치는 부부의 흐믓한 눈빛, 그리고 서툴디 서툰 지아비의 칼질입니다.
정월초하루 그녀는 육수를 붓고 단지안 고기장국 한국자 꺼내 떡국을 끓입니다.
굳었던 샛노란 닭기름이 핑그르 녹아돌고 숭덩숭덩 썰어넣은 연두움파빛이 순하게 떠다니는 떡국 한그릇.
빈 감나무 사이로 떠오르는 아침햇살이 그녀 어깨위에 무등을 타고 박달나무 도마를 새로 깎아주겠다는 어젯밤 지아비 속삭임이 반가운 아침.


그녀의 이런 꿈을 읽는 난 내가슴의 실금이 계곡이되고 계곡이 파여 두동강이나도록 똑똑똑 탕탕탕 일년삼백예순날 울리고 싶습니다.
아침을 열고 지등 밝힌 밤이 사위어 갈때까지 삶의 풍족과 안정을 찾아주는 내 가슴의 울림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