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솥에서 반나절은 노골노골 지졌는가보다.
질퍼덩쿵 질퍼덩쿵 절구질 소리에 으깨지고 치대지더니 웃목에 나란히 눕혀지게되었다.
섶자리에 성글게 콩대를 깔고 그 위에 볏짚을 깔고 목침마냥 빚어진 우리들은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또 깊은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렇게 며칠을 잤는지 모른다.
정신을 차리고보니 알몸이었다.
서둘러 옷을 입기 시작했다.
극세사로 만들어진 검고 푸른 옷 곰팡이!
내려다보는 노인의 눈빛이 따뜻하다.
이렛만인지 열흘만인지,,,, 바람좋고 볕살고른 처마밑 바지랑대에 내걸려졌다.
덜 으깨진 콩알들이 부신듯 고양이 눈처럼 졸아들었다.
먼저 와 있던 시래기들이 눈인사를 보내왔다.
오만하게 푸르렀을 그들의 청춘도 반절의 분신을 잃은채였으나 여전히 꼿꼿한 기개.
"이봐요, 메주양반! 그대와 내가 언젠간 같은 뚝배기안에서 한바탕 열락을,,,,, 누가 알으우, 꿈도 못 꾸나?"
짓궂은 무청시래기가 농을 걸어오자 모두들 제몸 한귀퉁이 떨어져나가는 것도 모른채 웃어제꼈다.
-그래요 언젠간 삭혀지고 익혀져 한몸인듯 만나질날도 있겠죠~~!-
바람결에 스치는 나의 화답을 실금 툭툭 터지도록 귀열고 엿듣는 토담벽, 살구빛 우리들의 한시절은 그렇게 끝이나고 있었다.
음력 정월이나 삼월이면 거처가 달라진다.
사람들이 우리들을 가지고 장을 담그는 것이다.
계란이 반쯤 둥실 떠올라야 제격이라는 우리들의 양수에 다시 담겨 정월이면 한달쯤, 삼월이면 스므날쯤 동동 거리거나 잠수를 해야하는 것이다.
음력 정월 말(馬)날 아침.
노인은 분주했다.
다시 알몸인채 말끔해진 우리들이 마지막 세안을 마치면
항아리안을 달군 숯으로 소독을 하고 정갈한 소금물을 붓는다.
드디어 하나둘 퐁당거리며 빠져들고 운좋게 고개내민 녀석들 좋아하는 것도 잠시 한웅큼씩 쏟아지는 빛부신 소금들.
노인은 언제 준비했는지 오려낸 버선종이를 거꾸로 붙이고 금줄까지 동여 맨다.
항아리안은 한동안 정적이 흐른다.
한바탕 태풍이 휘젓고 간 넓은 바다에 밤사이 섬이 떠밀려온 것이다.
봉긋봉긋 솟아오른 하얀도 백도!
다도해를 이룬 바다에 부표처럼 떠다니는 고추랑 숯이랑 외롭지않을 것이다.
노인의 바다, 다도해 깊은 곳 나 다시 허물어지고 부서져 그들막하게 솟아오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