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로니카의 이중생활에 관한 보고서" />
영화감상방의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에 관한 글을 읽고,...
아마 대학원 논문학기 였던 것 같다.
나는 길음동 삼부아파트에 살고 있던 언니네 집에서 얹혀 살고 있었다.
주변에 유흥가가 밀집되어 아파트 허가가 나네 안나네 하는 곳이었기에 가끔 집이 어디냐고 묻는 질문에 난처했을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모처럼 언니네 식구들이 모두 집을 비운터라 아침부터 비디오 몇 편을 보면서 머리를 식히기로 마음먹었다.
가게문을 막 열어놓은 상가 비디오가게에 주인아저씨만 한 분 계셨다.
> 뭘 찾아? 학생!
> 예.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하구요.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 있어요?
아저씨는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조용히 내 옆에 오시더니 이렇게 말했다.
> 한 8~90% 는 그런 것(?) 나오는 비디오 하나 있는데,..
어때 한 번 볼래?
아뿔사!!
... 이중생활 ... 섹스 ... 비디오테이프 ...
내게 향하는 이상한 눈빛을 뒤로한채 난 두 편의 비디오를 손에 들고 나왔다.
모처럼 깐느영화제의 수상작을 보려했던 내가 너무도 탁월한 선택을 하였던 모양이다.
아저씨의 기대와는 달리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은 유럽영화 특유의 우울함과 지루함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흑백영화와 같은 화면구성에 건조한 대사들...
안타깝게도 옛날이나 지금이나 나는 칸느에서 호평받은 작품은 졸립기 일쑤였다.
지루한 명작을 보면서 나는 계속해서 비실비실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냥 화끈한 8~90% 의 명작을 볼 걸 그랬나 싶고,...
원작의 제목이 무었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지나가다 나와 닮은 사람, 아니 똑같은 사람을 만날 수도 있을까?
지구촌 어딘가에 또 다른 내가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선문답과 같은 작품을 대하면서도 끈적이는 시선의 비디오가게 아저씨를 생각한다.
아저씨 역시 나를 <이중생활> 하는 여자로 보지 않았을까?
가끔은 나도 나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고 싶다.
사람은 누구나 또 다른 나를 꿈꾼다.
지금의 나도 다른이의 삶을 동경하고, 다른삶의 어떤 이는 나의 삶을 동경할지도 모른다.
감독이 주는 메시지는 이게 아니었을게다.
하지만, 오늘도 일탈을 꿈꾸며 또다른 나를 향해 다가가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