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을 코앞에 둔 나는 요즘 내 의사와는 상관없는 타령으로
집에 들어가는 게 과히 즐겁지만은 않다.
그 타령이란 바로 더 늦기전에 아들 하나를 더 낳아야 한다는...
딸만 둘이라는 이유로 아들을 더 낳아야 한다는...
도저히 내 머리로는 납득이 잘 안가는 그런 논리들이 나를 에워싼다.
시댁의 오남매중 아들이 없는 집은 우리집 밖에 없다나, 뭐라나 ...
아들이 무슨 생활필수품이라도 되는 건지...
참으로 나는 알수가 없다.
나는 그렇게 말한다.
요즘 세상에 아들은 무슨 ...
그냥 우리의 두 딸들이나 잘 키우자고 ...
지난 몇년간 똑 같은 재방송을 연거푸해서 이젠 그런말조차 지루함 그 자체일 듯 싶다.
남편의 형제자매들은
이집 저집에서 다들 아들 낳는 연구에 몰입을 했었는지 어쩐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아뭏튼 어찌 어찌하여 아들이 해마다 한명씩,
어느해엔 두명씩 태어났던 것 같다.
다른 건 다 의식적으로 깨어있는 듯 한데,
유독 그 남아선호사상만큼은 어느 집안 보다도 투철하리만치 치열하다.
아마도 나의 선택 이전에 그런 사실을 알았더라면,
나의 선택은 좀더 다른 것이었을수도 있지 않았을까?
나는 남편에게 그리 말한다.
아들을 그렇게 낳아야 했으면 좀더 젊었을 적에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그랬느냐고?
글쎄 그 노력이 무얼 의미하는 지, 그래야만 하는 정당성이 있는지
난 아직까지도 알지 못하고 사는 우메한 사람이지만...
지나간 시간들을 탓하면 무엇할까마는 아뭏튼 그 땐 살기에 바빠서
앞만 바라다 보고 하루 하루 살기에도 벅찼던 그런 기억이 선연하다.
누군가 죽은 사람의 소원도 들어준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나는 이제 내 곁에 선 이 남자의 소원을 들어주어야만 하는건지 ...
이제나 저제나 아들 손주 낳을 때 학수고대하는 시부모님들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일도,
더 늦기전에 아들을 안 낳으면 뭔가 실패한 인생을 사는 듯 생각하는 남편의 사고방식도 ...
그 모든 것들이 내겐 그저 중압감으로 다가 온다.
누구는 그렇게 말한다.
늦둥이는 위의 큰 아이가 보아 주니 키우는 건 일도 아니라고...
늦둥이가 얼마나 이쁘다구...
하지만 일을 하고 있는 처지이니
아이를 키우는 일련의 일들에 대한 대책이없다는 것이 무엇보다 문제일 수 있고,
그렇다고 이제껏 해온 일들을 하루아침에 접고,
집에서 아이만 기르기엔
내 젊은 날의 이삼십대를 다 바친 세월의 결실이
아직은 좀 이른탓에
이런 저런 이유로 결정을 잠정 보류하고 있는 처지이다.
부모님과, 남편은 그저 저 먹을 건 다 타고 난다나, 뭐라나 ...
옛날 고려적 이야기로 의견일치를 보는 걸 보면
세대가 다른 이들끼리 어쩌면 그리도 잘 통할까? 의아스럽기까지 하다.
맞며느리라는 자리는
종족보존의 책임과 의무를 그렇게 오랜세월이 흐르고서도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는 걸 보면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도 있긴 있나 그런 생각이 든다.
아무 생각없이 아들하나 낳아서 ...
그저 여느 부모가 하듯이 그렇게
하루 하루를 온통 그 아이에게 쏟으며 사랑으로 키우는 일은 소중한 일일 것이다.
그렇지만 내 앞에 놓여진 현실적인 문제들까지도 수렴하면서 가야말만큼
그건 바로 내 자신의 일이기 때문에
이제껏 쉽게 그들의 그런 생각들에 동의하지 못하고 산 것이다.
나는 그렇게 말한다.
셋째아이 만큼은 낳는다면 내손으로 직접 기를거라고 ...
그 땐 정말이지 예전보다 좀 더 많은 사랑으로 키울 수 있어야 할거라고...
하지만 남편이 기대하는 아내의 모습은
경제적인 능력도 있고, 아이를 잘 키워낼 줄 아는 지혜로움까지 겸비한
수퍼우먼에 머물러 있는 듯 하다.
아...
그 어느것이나 완벽하고 매끄럽게 잘해낼 자신이 내게 있는지
우선은 그것부터 묻고 나서 뭔가 계획을 세워도 세워야 하는 것일텐데,
내 머리속은 온통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풀어헤쳐 놓은 듯 어수선하기만 하다.
기필코 아들 하나를 낳아야만 나는 내가 할일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을려나?
더 늦기전에 ...
무엇인가를 이루어 놓아야만 하는 나의 임무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것인지 ...
한숨의 깊이는 점점 더해만 간다.
왜 나는 그렇게 밖에 살지 못하는 것일까?
무엇이 그리 복잡하기만 한 걸까?
오늘은 왜 그리 스스로에게 반문해 보는 말들만 내 주위를 맴도는지
내가 나를 잘 모르겠다.
세상엔 ...
여자가 반이라는데 ...
아직도 끝나지 않는 아들타령의 그 끝은 어디메쯤일까?
언제부터 우리는 자식을 낳아 기르는 일에도
자신의 선택의지를 부여해야만 하는건지
언제까지 그래야만 하는건지 ...
여자로, 아내로, 엄마로 사는 일이
때론 무척이나 행복하면서도
또 이렇게 많은 고민스러움을 내게 안겨주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