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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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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늬만 엄마 아닌가요?


BY 이쁜꽃향 2002-01-15

아이가 방학이면
어찌된 일인지 난 두배는 더 바쁜 거 같다.
전에는 학교 가야할 시간이 있어
늦잠이란 걸 모르던 녀석이
방학 하자마자 아침밥을 같이 먹어 본 적이 없으니
식사 준비를 해 두고 나가야하는 내겐
아침 시간이 그야말로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친구들은 날더러
'얘, 그건 기본이지.
니가 무슨 엄마니? 계모지.
넌 무늬만 엄마인 척 하잖아.'라며 오히려 핀잔을 준다.
자기네들은 늘 그렇게 해 오고 있다며.

난 자라면서 엄마처럼 살지 않으리라 다짐을 했었다.
먹을 것이며 입을 것,
그리고 좋은 것이 있으면
늘 자식들 치닥거리에만 신경을 쓰실 뿐
당신을 위한 것은 뒷전일 뿐이었다.
그렇다고 그 자식들이 자라서 모두 효도를 하느냐
천만의 말씀.
가까이 사는 내게 최종적인 짐이 지워지니
별 수 없이 내가 할 뿐
결코 기꺼운 맘으로 하는 건 아니다.
신경질도 부리고
짜증스러운 말씨를 쓰는 건 습관이 되어 버려
자식 다 필요 없단 생각을 하게 했다.
아마 내가 딸을 낳았더라면
나처럼 성질 못 된 딸이었을 게 분명하리라.

그래서 난 늘 좋은 건 나부터,
그리고 내 위주로
그걸 강조하며 살리라 내심 결심했었다.
그런데 그런 게 일상생활에 배어 나오는 모양이다.
스케쥴이 워낙 바쁜 탓도 있지만
초등학교 땐 엄마의 치마바람이 아일 망칠 수도 있단
내 주관대로
아이에게 덜 신경을 쏟는 편이다.
아이 학교가 시내에선 추첨을 통해 가는 데라서
젊은 엄마들의 극성을 당해 낼 재간이 없으니
상대적으로 난 무관심한 에미 축에 드는 셈이라고나 할까.
다행이라면
내가 왕언니격이다 보니
그네들이 우리 아일 항상 잘 챙겨 준다는 것이다.
6년동안 학교 행사 때
나는 개인적으로 아이 도시락을 챙겨 본 적이 없다.
"언니는 그냥 몸만 와.
옆구리 터 진 김밥 싸느라 고생하시지 말구..."
옆에서들 챙겨주는 바람에
때론 아이 점심이 여러 군데서 나오기도 했다.
물론 그 날 후식은 늘 내 당번.
비싼 과일이나 아이스크림이 내 몫이다.

그래도 난 너무나 복이 많은 사람이라 생각되어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후배들에게 감사하며 열심히 쫓아다녔다.
학원이며 과외도
엄마보다 더 자세히 알아서 정해 주니
자연히 애 터지게 신경 쓸 일이 거의 없다.

학교 다닐 땐 그래서 오히려 편했는데
아이가 방학을 하고 보니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혹시 동네 pc방에 가질 않을까,
이 시각에 컴퓨터 게임을 하진 않나...
때론 나보다 귀가가 늦은 녀석을 찾아
함께 학원에 다니는 아이집에 전활 걸어 본 후에야
아이의 스케쥴을 알게 되는 때도 있다.
'언니, 정말 친엄마 맞아?
무늬만 엄마 아닌가요?'
아뿔싸!!!
난 어느샌가 무늬만 엄마인 여자가 되고 만 것이 아닌가.

아닌데,
그게 아닌데...
오늘도 아들녀석 점심 먹이기 위해
낮시간에 식육점엘 들러
소고기 반근, 목삼겹살 반근 사서
그녀석 식성대로 먹게 해 주려고 부랴부랴 달려 온 나인데
우째 무늬만 엄마인 여자로 전락해 버렸단 말인고...

아니지,
그 엄마에 그 딸이지 별 수 있으려고.
혼자라서 제대로 밥을 챙겨 먹지않는 녀석 때문에
따로 시장을 봐야 하는 나의 고충을
그녀들은 전혀 모르고 있음이야...

나를 위한 삶은
결국 내 가족을 위해 정말 필요한 게 아닐까.
한 가정에서의 주부의 역할.
내가 건전해야만
내 가정이 바로 설 수 있고,
내가 건강해야만
내 가족의 건강을 제대로 챙길 수 있다고
입버릇처럼 주장하는 내 말이
정녕 자기 변명에 불과한 말일까.

나도
가슴 깊은 곳에선
정말 내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모든 걸 버릴 수도 있다는 무모한 에미의 본능이
늘 도사리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진대...

난 정말 결코 무늬만 엄마인
그런 사람이 아니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