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학개론
부제: 탈대로 다 타시오
매년 이맘때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부스스한 머리칼에 꺼칠한 얼굴, 촛점 없는 눈망울로 생각날 때마다 가슴아픈 여인.
여러 차례 나를 찾아왔다가 어렵사리 만나게 된 날,(그 당시 대학원 재학 중이라 자리를 지킬 수가 없었다.) 눈물을 글썽이며 털어놓던 절규...
'3개월 전부터 아무 것도 먹을 수가 없고, 잠도 잘 수가 없어요!'
당연히 맥이 잡히지 않을 정도로 기력이 떨어지고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이 지쳐 있었으며, 가슴에 맺힌 화기(火氣)가 위로 치받을 때마다 숨도 제대로 쉬기 어려울 정도로 괴로워했다.
진찰결과 내장 기관에는 별 이상이 없었으나, 마음의 병이 단단히 들어있는 상태였다. 이 마음의 빗장을 어떻게 열어야할까 하는 고민을 할 필요도 없이 한달음에 쏟아놓는 그녀의 사연은 놀라웠다. 40대 중반의 평범한 주부로 보이는 그녀에게 자나깨나 눈에 밟히는 사람, 남자가 생긴 것.
서로가 가정을 가진 지라 겉으론 무심한 척하지만 오매불망 생각나는 그 사람 때문에 생병이 들어버린 것이다. 이 세상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그 이야기를 눈물, 콧물범벅으로 털어놓으면서 그녀의 병은 이미 반쯤 치료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나에게 원한 건 진심으로 그녀의 심정을 헤아리며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었다.
비장과 심장의 기운을 보강해주면서 화기를 다스리는 약과 가슴깊이 우러나오는 따뜻한 말로 그녀를 다독거려서 보냈지만 그녀를 생각할 때마다 미처 못해준 한마디가 마음에 걸린다. '탈대로 다 타시오, 타다 말진 부대 마소...' 아마 그녀도 그걸 원했으리라.
황진이를 기녀의 길로 가게 만든 것도 처녀시절 이웃집 총각의 '상사병'으로 알려져 있으며, 예로부터 죽음에 이르는 몹쓸 병으로 알려져 있다.
상사병(想思病)은 말 그대로 생각을 많이 하여 생기는 병이다. 요즘 사람들은 '사랑해'라는 말을 너무 쉽게 하지만, 원래 '사랑하다'는 말은 '생각하다'는 의미였다. 누군가를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것, 그것이 쌓여 그리움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동양에서는 오래 전부터 음양의 이론으로 이 '사랑'을 담아내었다. 음(여자)이 저 홀로는 음이 되지 못하고 양(남자)이 저 홀로는 양이 되지 못하니 음양이 서로 어울려 조화를 이루어야 세상이, 이 우주가 돌아가는 것. 따라서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빛 속에는 별도, 달도, 이 우주도 다 들어있다.
사랑이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느끼는 '특별한' 재발견이다.
사랑에 빠진 순간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나를 위해 빛을 발하고, 사랑이 끝났을 땐 세상이 나를 버린 듯 빛을 잃어버린다.
신화에 의하면 큐피드의 화살을 맞은 사람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사랑을 갈구하다가 그 사랑을 얻지 못하면 목숨까지도 버렸다니 도대체 사랑이 뭐길래 이렇게 사람을 못쓰게 만들어 놓는지.....
한자로 '사랑 애(愛)'자는 '받을 수(受)' 자에 '마음 심(心)' 자를 합친 말이다. 마음을 주고받는 일이 바로 사랑이라는 의미다. 그 마음이 일방적으로 가기만 하고 되돌아오지 못할 때 바로 병이 되는 것이다.
오늘도 이 넓은 하늘 아래 또 누가 가슴앓이를 하며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밤을 새고 있을까?
우리 지금이라도 눈을 크게 뜨고 둘러보자. 혹시 내가 놓쳐버린 사랑이 없는지...
그리고 아스라이 생각나는 그리운 이름을 가만히 불러보자. .
- 이 아름다운 가을밤에 여성한의원에서 보내는 사랑의 메시지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