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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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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아름다운 것은...


BY 만년소녀 2001-12-31

겨울이 되니 딸아이와 두터운 바지를 사러 나갔었다.
지하도 밑의 눈부신 상가들을 구경하다가 무심코 코너를 돌아서는데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초등학교 때의 친구가 손님들을 상대로 카드가입을 돕고 있었다.

그 친구는 오랜만에 보는 내가 반가워서 어쩔 줄을 몰라 자꾸만 옆에 앉으라고 했다.
카드 손님이 있어서 좀 돌다가 오겠노라고 하고선 걸어 나오는데 우리 딸 "엄마~ 친구 손이 왜 그래? 그러면서 불쌍하다고...
난 아직 보지 못 했는데 우리 딸은 언제 보았을까?

결혼을 하고 기다리던 아이가 안 생겨 병원에 가보니 난소가 하나밖에 없어서 아이를 절대 갖을 수 없다는 의사의 청천벽력같은 말은 한 집안의 맡 며느리 자리를 위태롭게 까지 했었다고...

아이도 없는데 시어머니와 멀뚱히 바라보고 앉아 있기도 그래서 가까운 공장에라도 나간다는 것이 그만 부주의로 손가락 몇을 잃어버리게 되었다고...

이 세상에 단 한사람 피를 나눈 피붙이라고는 없는 홀홀 단신에다가 아이까지 못 낳게 되고 말았으니... 그 후로 남편은 다방여자의 몸을 빌려 아이를 낳아오고...

그 친구 어릴 적 체육시간에 모두들 운동하러 나가면 몸이 약하다는 이유로 항상 교실만 지키던 친구였는데 지금은 시어머니 모시고 다리를 저는 남편 대신 생계를 꾸려나간다니... 가정을 위해서 고생을 마다 않고 살아가는 친구 앞에서 마음이 숙연해졌다.

어릴 적에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타서 쉬는 시간마다 햇볕을 벗삼아 이야기 동무로 하루해가 짧았던 기억이 눈에 아른거려 우린 동심으로 돌아가 한참을 서 있었다.

배 아파 낳지 않는 아들이건만 그 아들 없으면 자기 인생도 없는 냥, 아들 자랑하며 좋아하는 그녀가 바로 천사 같았다.

몇 년 전에 길가에서 옥수수 빵을 팔다가 달려오는 차에 치어 머리수술을 크게 해서인지 예전의 그 고운 얼굴이 많이 상해 보였지만 웃음을 잃지 않고 한결같이 삶에 임하는 진지함이 그녀를 더욱 아름답게 했다.

어느 만큼 배우고 얼마를 가졌는가를 재는 우리의 시시콜콜한 잣대로는 절대로 잴 수 없는 커다란 사랑의 무게와 행복의 넓이가 느껴졌다.
그 사랑의 무게만큼 그녀의 가정엔 행복한 웃음이 넘쳐나겠지.

이 추운 겨울도 무색할 만큼 뜨거운 용광로 같은 훈훈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두고 말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