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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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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날의 까만 눈동자들


BY 라니안 2001-02-23



하루종일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엔 십수년 전에 만났던 산골아이들 생각이나곤 한다.

아스팔트 위를 씽씽 달리던 버스가 , 전혀 길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한 샛길로 접어들어 그로부터 꼬불꼬불, 오르락 내리락 첩첩산중으로 달려간다.

그러면, 그림같은 초록지붕의 자그마한 학교가 나타난다.
그 초록지붕을 가진 산골 학교 에서의 어느 여름날의 일이다.

새벽부터 쏟아진 폭우를 뚫고 아침 출근버스에 올랐다.

하늘이 뻥뚫려 그대로 물을 쏟아붓고 있는듯 차창밖으론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다.

버스가 비틀비틀 빗속을 제대로 헤쳐 나가지 못하더니 급기야 국도와 샛길부근에서 기사 아저씨가 버스를 세우셨다.

" 다들 여기서 내리셔야 겠습니다.. 비가 이렇게 퍼붓는 걸 보면 길이 끊어져도 벌써 끊어졌을 겁니다. "

더이상 버스 운행을 할수 없다며 버스를 되돌려 가버리셨다. 참으로 암담했다.

간간이 끊어져 버렸을 진흙탕 길을 따라서라도 학교에를 가야 하는데 영 앞이 안보이고 비가 거세어 난감했다.

하지만, 버스에 같이 타고 있던 인근 학교의 송 선생, 엄 선생과 난 2 ~ 3 시간이 걸릴지도 모를 빗속을 헤쳐 나아가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동기생이었던 우리는 폭우속에 첫발을 내딛었다.

억수같이 퍼붓던 장대비가 우리가 빗속을 헤쳐나가기 시작한지 30 여분쯤 지나자 다행히 빗발이 가늘어 지기 시작했다.

곳곳에 산사태가 나긴 했어도 길은 어설프게 이어져 있었다.

한 시간쯤 걸었을때 비는 완전히 개였다. 비개인 산 속은 참으로 경이로웠다.

산골짜기를 따라 피어오르던 물안개 , 흠뻑 물 머금은 나뭇가지들 , 아스라이 바라보이던 자그마한 집들......

우리는 산속 풍경을 음미하며 느긋이 소풍가는 사람들마냥 즐거워 지기까지 했다

한참을 걷다보니 저 멀리서 트럭이 한대 다가오고 있었다.

우린 저 차를 타고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마구 환호성을 질러댔다.

우리 곁으로 다가온 차는 소를 싣고 다니던 조그마한 차였다.

송선생과 나는 여자라고 기사 아저씨 옆자리에 앉는 행운을 얻고, 엄 선생은 소를 싣던 지저분한 트럭 뒷자리에서 혼자 카퍼레이드를 벌일 수밖에 없었다.

엄 선생은 " 음메 ! 음메 ! " 구성지게 울어대는 소가 되었고, 우린 그런 엄 선생의 모습이 우스워 배를 잡고 웃어댔다.

근 2시간만에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엉망이 된 모습 그대로 난 허겁지겁 우리반 교실 문을 열었다.

" 야 ! ! 선생님 오셨다. " 하는 기쁨의 환호성과 함께 , 순간 36개의 까만 눈동자가 일시에 나를 주목하고 있었다.

앙징맞은 까만 눈동자들이 기쁨을 담뿍 머금은채 올려다보고 있었다.......

' 아 ! 빗속을 뚫고 애써 오길 잘했구나 ! ' 하는 뿌듯함에 녀석들이 더욱 사랑스러워졌다.

그때의 여리고 맑은 그 까만 눈동자를 가졌던 녀석들을 난 지금껏 잊을수가 없다.

이렇게 비가 오는 날엔 그 산골아이들과의 만남이 더욱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