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면 예전엔 우선 커피를 탔다.
카세트에 은은한 음악이 담긴 노래를 켜고,방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서 예쁜 편지지에다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편질 썼다.
항상 비오는 날이면 편질 쓰곤 해서 친구들은 나만 보면 비 생각
이 난다고 했었다.
지붕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나른하게 잠이 드는 행복,
김치부침개의 고소한 기름냄새,고구마의 달콤함,커피의 감미로
운 향기,,,그런 것들로 비오는 날 난 참 많이 행복했었다.
장마철,비가 너무 많이 내려서 피해를 보고 시름에 잠긴 사람들
이 많아도 난 비소리만 행복해 했었다. 아주 철없이...
그러다 좀 더 비 오는 속으로 다가가고 싶어지면 회수권 한 묶음
을 들고 버스를 탔다. 내가 사는 곳에서 부터 아주 먼 곳까지
버스 를 타고 가서 다시 어딘지 모를 동네의 종점까지 그렇게 비
오는 날 버스 창가에 앉아서 오래도록 거리를 바라다 보았었다.
결혼하고 나선,비가 오는 행복을 맘껏 누리기가 힘들어졌다.
출퇴근길에 운전하는 남편이 걱정되었고,비오는 날 눅눅해지는
아기 빨래를 걱정했고,우산쓰고 아기 업고 병원이라도 가는 날
이면 에이~왜 이렇게 비가 오는 거야? 짜증도 났다.
하지만 오늘은,비 오는 행복을 누리고 싶다.
침대에 엎드려 나른하게 잠에 빠지는 딸 아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갖은 목소리(?)를 다해 동화책도 읽어주고,비록 예쁜편지
지에 묵은 연필향 내음이 담긴 글씨를 보낼 수는 없어도,컴으
로 예쁜 편지를 보내야지.
그리고,부침개도 부쳐야지.
남편이 오면 소주 한 잔 곁들여,이렇게 얘기해야겠다.
"여보 비 오는 소리 들으면서 먹으니까 맛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