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간지 <작은이야기> 11월호에 "할머니는 마라톤 중독자"란 글이 실려있습니다.
이 글의 주인공은,
얼마 전 이탈리아에서 열린 로마 마라톤 대회에 최고령자로 출전해 42.195km를
완주한 여든여덟살의 '크라운 할머니'입니다.
그녀는 20년 전 유방암선고를 받은 후 자신의 초라한 삶을 포기할까, 생각하다
새로운 인생 목표를 세우는 것으로 생각을 바꿉니다.
그 인생 목표라는 것은 뜻밖에도 '마라톤'이었습니다.
그녀는 새로운 삶을 위해 매일 5km 이상을 비나 눈이 내려도, 쉬지 않고
달리며, '마라톤 코스 완주'의 목표에 한 발씩 다가갔습니다.
아픈 몸으로 달리기가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심장의 쿵쾅거림'이
그녀를 다독거려 주었다고 합니다.
평소에는 잘 들리지 않던 심장 박동 소리가 달리기를 하다 보면 얼마나 크게
들리던지, 그 울림이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어서 달리기를 결코
멈출 수가 없었답니다.
할머니는 칠순이 되던 해, LA마라톤 대회에 처녀 출전해서 7시간 40분이란
기록으로 완주함으로써 다른 이들의 불안과 염려를 잠재웁니다.
그 후 할머니의 마라톤 인생은 활기를 띠기 시작했는데,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개최된 마라톤,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마라톤, 소아암 환자를 돕기 위한 마라톤
등에 출전하면서 세인들의 관심을 모았고, 출전할 때마다 매 번 완주해내는
저력을 보입니다.
그러던 중 세 번이나 유방암이 재발했지만, 할머니는 자리에 드러눕는 대신
운동화 끈을 조여 매고 달리기를 멈추지 않았는데, 그 사이 암세포는 하나
둘씩 사라지고 결국은 암을 깨끗이 이겨내었습니다.
저는 이 글을 읽으며,
여든여덟 살의 할머니가 2.195km도 아니고 42.195km 즉, 마라톤 코스를
완주했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아 한참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건강한 사람도 아니고 유방암을 앓던 할머니가 마라톤을 뛰었다는 것이
현실가능한 일인가, 의구심도 잠깐 생겼습니다.
그리고, 비록 이 할머니를 뵌 적이 없고, 나와 안면이 있는 분은 아니지만,
맘으로 한없는 존경심을 표했습니다.
남들이 노인네라 부르기 좋은, 환갑이 넘은 나이로 달리기를 시작해서 여든여덟살,
지금까지 마라톤을 하고 있으며, 그 사이 불치병이라는 암까지 이겨냈다는 사실이
한편의 인생역전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아 통쾌하기까지 합니다.
흔히 '인생은 마라톤경주'라고 즐겨 비교하곤 하는데, 할머니의 마라톤 인생이 바로
그 본보기라는 생각도 듭니다.
최근 들어, 전국적으로 마라톤 열풍이 거세게 몰아치고 있습니다.
마라톤은 IMF 이후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면서, '건강'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가
높아졌고, 이것이 최근에 대중화되었습니다.
지금도 마라톤 동호회가 수없이 생겨나고 있으며, 한 해에 이름난 마라톤대회만도
몇 번씩이나 개최되고 있습니다.
지난 10월 21일에도 호반의 도시 춘천에서 전국마라톤선수권대회가 열렸지요.
그 날, TV로 생중계하는 마라톤대회를 시청하던 남편이 무심코 얘길 했습니다.
"이 박사님도 어디쯤에서 뛰고 계실텐데......"
"응? 당신 상사 이박사님 말이에요?"
"응"
"그 분이 어떻게 마라톤을.......?"
저는 선뜻 믿기지 않았습니다.
얼굴은 샌님처럼 참하고 깔끔한데다, 체구는 아담하고 어찌보면 연약해 보이기도
한 그 분이 마라톤을 한다니......
제가 남편에게 전해 들어서 익히 알고 있는 그 분은,
거의 매일 새벽 2~3시경에 퇴근을 하지만 출근시간은 칼같이 지키고,
예의를 갖추어야 할 곳엔 빠짐이 없고, 빈틈이 없는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직장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터라 집에선 인기가 없을 수도 있지만,
반면 직장에선 최고의 연구실적을 자랑하는 분이기도 하구요.
"이박사님은 잠도 없대?" 하고 평소에 남편에게 말하곤 했는데, 잠 잘 시간도
부족한 사람이 마라톤을, 그것도 하프코스가 아닌, 42.195km 풀코스를 뛴다니......
달리기 하는 사람들에게 왜 달리는가? 하고 물어보면,
'길이 있어서' , '그냥 좋아서' 혹은 '체력의 한계를 경험하고 싶어서'등의 얘기가
가장 많을 듯 싶은데, 그 분은 왠지 다른 이유가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다음 날, 그 분이 5시간 20분으로 완주했다는 남편의 말을 전해 들으며,
'완주'란 말에 또 한 번 놀라고 말았습니다.
정말 대단한 사람, 이란 말이 입에서 절로 나왔습니다.
저는 마라톤, 아니 달리기에 관해선 할 말이 없는 사람입니다.
가끔 아이들과 공원에 나가거나 놀이터에 가면 아이들이 노는 틈을 타서, 주변을
몇 바퀴씩 돌긴 하지만, 기분에 따라, 날씨에 따라 바뀌곤 합니다.
매일 꾸준히 해야 하는데, 맘만 그렇지 실천은 거의 못하고 있는 거지요.
지난 6월, 창원 언니네 놀러 갔다가 근처 용지호수공원을 달려 본 적이 있습니다.
그 공원은 아침, 저녁에는 달리기하는 사람들로 북적대는데, 제가 달린 때는
저녁보다 이른 시간이라 사람들이 적어서 한산했습니다.
달리는 사람들을 눈으로 따라가며 거리를 어림짐작해보니 2km가 채 안되어 보여서,
나도 어렵지 않게 달리겠다, 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두 아이를 언니에게 맡기고 달릴 준비를 했습니다.
학창시절 반대표 달리기선수로 뛰었던 기억을 되살리며 준비운동을 하고,
허리 굽혀 운동화 끈을 단단히 조여 매었습니다.
그리고, 조금은 자신있게 조금은 여유롭게 즐기듯 달리기 시작했지요.
하지만, 달린 거리가 200m나 될까? 시간은 2분이나 지났을까?
그 짧은 거리와 시간에 벌써 다리근육이 뭉친 듯 뻐근해왔습니다.
'어, 이게 아닌데......'
자신도 믿을 수 없는 상태에서,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양쪽다리근육은 자꾸만
당기더니, 결국 통증까지 몰고 오더군요.
그 상태로 1km 정도를 뛰었을 무렵엔 왼쪽 아랫배마저 아파왔습니다.
근처에 주저앉아 잠시 쉬고 싶었지만, 내 알량한 자존심에 차마 그러진 못하고,
속도를 늦춰 달리다가...... 결국은 걷고 말았지요.
'달리기'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님을 절감하면서......
그렇게 패전용사처럼 걸어가며, 가슴에 새긴 생각 한 자락이 이 할머니에 관한
글을 읽으며 되살아났습니다.
산다는 것은,
만만한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을.
산다는 것은,
어느 영화대사('fight to the death-죽을때까지 싸워라')처럼,
죽을 때까지 치열하게 싸우는 것이란 것을.
그리고 산다는 것은,
힘들다고 중도에 주저앉을 수도, 되돌아 갈 수도 없는 마라톤이라는 것을."

할머니의 말씀 중에, 마라톤의 의미를 되새겨주는 말이 있어 옮겨 봅니다.
"늙었다고 주저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이 세상 떠나는 날까지 건강해야지.
건강 잃으면 아무것도 소용없어. 주책없는 늙은이라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늙었다고 행복하지 말란 법 없잖아.
나는 마라톤하면서 세상을 다 얻은 듯 정말 행복했어. 살아있다는 건 축복이야.
그러면 건강은 스스로 책임져야지. 난 이제 암이 재발해도 두렵지 않을 것 같아.
달리면 말끔히 다 나을 텐데 무슨 걱정이 있겠어.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원하는 일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도전해야 해.
그래야 살맛이 나지. 늙었다고 내일 당장 죽을 사람처럼 살아선 안 돼"
2001. 12. 淸顔愛語

사랑
풀여치 한 마리 길을 가는데
내 옷에 앉아 함께 간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언제 왔는지
갑자기 그 파란 날개 숨결을 느끼면서
나는
모든 살아 있음의 제 자리를 생각했다.
풀여치 앉은 나는 한 포기 풀잎
내가 풀잎이라고 생각할 때
그도 온전한 한 마리 풀여치
하늘은 맑고
들은 햇살로 물결치는 속 바람 속
나는 나를 잃고 한없이 걸었다.
풀은 점점 작아져서
새가 되고 흐르는 물이 되고
다시 저 뛰노는 아이들이 되어서
비로소 나는
이 세상 속에서의 나를 알았다.
어떤 사랑이어야 하는가를
오늘 알았다.
詩 박형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