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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상을 받아놓고..


BY 이슬어지 2001-12-20

며칠 전 제 생일이었습니다.

생일 전날 남편은 회사에서 아주 늦게 퇴근을 했습니다.
그래도 두 손에는 장을 봐온 보따리가 한가득이었죠..
먼저 들어가 자라는 남편을 뒤로하고 저는 잠이 들었습니다.

생일날 아침,
그럴싸한 생일상이 차려졌습니다.
미역국에 갈비찜, 잡채, 낚지볶음, 조기구이..
게다가 앙증맞은 케?掠沮?

그런데 웬지 서글픈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구는 결혼한 후 미역국 한 번 얻어먹어 본적이 없다고
팔자 늘어졌다고도 하지만
이유를 알 수 없는 가라앉음입니다.

결혼 한 후,
저는 남편에게 저의 생일상도 요구했습니다.
네게 남편이 소중하듯, 저도 남편에게 소중한 존재니까요.
그리고 내 생일을 기억하고 가장 기뻐해줄 사람도
바로 그 사람이니까요.

처음 몇 년은 상이 형편없다고
내가 당신에게 이 정도 대접밖에는 못받는 사람이냐고
따지기도 했습니다.
저 역시 남편의 생일상만큼은 정성을 다했죠.
덕분에 남편은 제 생일이 다가오면
무엇을 상에 올릴까 고민하는 눈치였습니다.

투정이든, 투쟁이든
서로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생일이었는데
어쩐 일인지 이번 생일은 마음이 무겁습니다.

며칠 곰곰히 생각해보니
남편이 아닌 제 문제였습니다.

8년 동안 저는 남편을 변화시키려고
무지 애를 썼습니다.
여성에게 억압적인 사회구조를 설명하기에 앞서
적어도 함께 사는 사람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싸움도 많이 했지요.

그런데 정작 저 자신에게는 제대로 요구한 게 없습니다.
사회으로 제 일이 있고, 그 안에서 적당히 인정받고
바쁘지만 남편과 아이에게 내 생활을 맞추고..
그러다보니 어느순간 내 삶에 열정이 빠져있다는 걸
느끼게 된 모양입니다.

삶에 대한 열정.
그것이 자신의 태어남을 진정으로 축하할 수 있는
바탕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번 생일엔 남편이 어떤 반찬을 올릴까'
'선물은 뭘 해줄까'하는 의타적인 기대감이 아닌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으며
삶에 대한 애정이 함께 커져감을 느낄 수 있다면
자기의 생일을 가장 축하할 사람이 자신이 될 겁니다.

한 해가 저물어갑니다.
늘 빈손이기에 가슴이 싸해지는 시간이죠.
머지않은 새해에는 뭔가 내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해줄
다른 일을 준비하며
기쁘게 생일상을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