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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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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문안을 다녀와서


BY 얀~ 2001-12-14

병 문안을 다녀왔다. 엄마처럼 포근한 큰 엄마가, 팔이 부러져 깁스(Gips)를 하셨다. 뵈러 가야지 하면서도 일이 많은 남편 일정 따르느라 어제서야 다녀왔다. 비가 내려 손님이 없을 것이란 생각에 일찍 가게문을 닫았다.

큰 엄마는 정이 많다. 그와 달리 친정엄마는, 내가 어렸을 적 외가에서 자란데다, 할머니와 학교 다니느라 떨어져 있어서 정을 별로 받지 못했다. 그래서 접촉이 늘 그리웠다. 큰애를 낳을 때 엄마와 큰 엄마의 태도는 정말 달랐다. 큰 엄마는 안쓰러워 벌벌 떠시는데, 엄마는 '야~아직 멀었어.'하시곤 밖으로 나갔다. 큰 엄마는 옆에서 팔을 주무르고, 요구르트도 먹여줬다. 배가 아파 소리를 지르면 얼굴이 창백해지시며.
엄마는 나보다 강한 분이다. 여장부고, 정말 깔끔한 분이다. 대신 그런 환경에 적응하며 견디느라 힘은 들었지만.
결혼 하고, 남편하고 젤 힘든 부분이 그것이었다. 정리정돈. 몸에 배어있는 나와 엉망인 남편 사이의 갈등. 하루종일 정리 하면, 삼일도 안되어 흐트러진다. 정리를 하며 이를 간다. '이게 뭐야 돼지우리도 아니고...' 열받아 청소한다. 판박이 하듯 엄마를 닮아가는 내 모습에 놀랐다. 이러지 말아야지 싶어 일주일 동안 청소를 하지 않았다. 질끈 눈을 감고 편하게 살자 생각 했다. 그 담엔 남편이 한가하면 청소를 한다. '집에 들어가 청소나 할게' 라고 자연스럽게 말한다. 처음이 힘들지 흐트러지긴 쉬운 일이다. 발을 놓을 곳이 없어도 자는 데는 문제없다. 침대로 가서 자면 그만인걸.

큰 엄마는, 엄마가 병석이라 비어 있는 친정에 가면 내편만 드신다. 한동네에 사니 남편은 과일을 사도 두몫을 산다. 자주 못가니 꼭 인사라도 여쭙고 온다. 남편이나 나나 힘들게 사니, 병실에 있으면서도 친정아버지를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병원에 들어서 깡패 기질로 말한다. 한해동안 다리와 팔과 온몸을 아파하는 모습을 보았다. 주사가 무서워 벌벌 떠시는 등치 커다란, 큰 엄마를 보면서 피식 웃음이 난다. 역시 다르시다. 친정엄마가 병원에 있을 때 아프단 내색을 하지 않았다. 목에 숨구멍이 생기고, 누워있으면서도 항상 배려하고 이번에도 남동생을 시켜 큰 엄마가 아프다고 들리라고 전화를 건다. 여장부답다. 아버지가 벌벌 떤다면, 엄마는 강한 분이다. 친정과 가깝게 살면서 언제나 엄마 대신으로 뭔가를 버텨야 한다. 강한 듯 친정아버지와 싸움도 했지만, 아직도 울고 싶을 때가 많다.

'올해만 아프고 내년부턴 아프지 말고 건강해'라고 말하는 데, 큰 엄마가 남편한테 말한다. 사둔 어른 독사한테 물려 병원에 입원했을 때 모르고 지났는데 미안하다고 말이다.

큰 엄마도 양씨 집안의 장손 며느리고, 어찌하다보니 박씨 집안으로 시집가 장손 며느릴 하는 입장이고 보니, 간혹 힘들어하면 그렇게 말씀하신다. 지금은 예전보단 좋다고 '예전엔...말이다.' 이렇게 이어진다. 지금 난 행복하다. 혹, 어머니가 tv를 보다 '남편을 개 패 듯 패냐고 남편은 하늘인디' 그럼 속으로 되뇌곤 한다. '나도 하늘이고 싶어요, 왜 여잔 하늘 하면 안되나요?'

남편이 큰 엄마에게 장난기 어린 농을 던진다.
'지난 주 일요일엔 장인 어른 하루 기사 했는데, 결혼식장에 모셔다 드리고 밖에서 기다렸다 딴 모임 간다고 모셔다 드리는데 글쎄, 너 돈 좀 있냐, 그래서 2만원 드렸어요'
'아고, 결혼 할 때 해준것도 없음서 맨날 그런댜'
'큰 엄마, 나야 내가 벌어서 결혼 했자너' 내가 말했다.
'아`그래서 내가 이번 딸 시집 보낼 때 잘해서 보내라 해따, 섭하진 않지?'
'잘했어, 여동생이라도 잘해가면 좋은거지, 히히히'
'야 그렇게 생각해주면 다행이구'
'맞어, 나야 잘 사니깐 아직은 걱정 없자너'
(퇴원하고 집에 가시면, 친정아버지 또 박아지 긁히게 생겼네.)
언제부터인가 칭찬을 받는다. 그런데 친정 아버지는 그런 말씀이 없으시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게 늙으시면서 '늬들 힘들지'란 말보단 강하기만을 원하신다. 친정 아버지는 차 고사를 지내는 데 오셔서 그냥 웃으며 동네 어른 모셔서 '이게 우리 딸이고 사위고' 그렇게 말씀하신다. 술 몇 잔 드시고 웃으신다. 친정 오분거리, 시댁은 10거리였는데 내가 어머니와 함께 살다보니 신경은 쓰이지만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다. 후원자처럼 편들어주는 큰 엄마가 있어서 다행이다. 아프시지 말아야 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