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크리스마스가 거대한 명절처럼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지요.
온 국민이 다 크리스쳔은 아닐진데 해마다 12월이 되면
백화점과 시장, 그리고 상점마다 트리를 매달고 케롤송을 들려주면
공연히 마음이 들뜨곤 했습니다.
그 시절.. 올 나이트라는 것이 한때 유행처럼 퍼져나가
젊은이 들이 밤새워 짝을 지어 놀곤 했잖아요
드디어 기회는 오고야 말았습니다.
직장생활을 처음 시작하던 그해 겨울, 사회초년생인
숙녀로써 첫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게 되었지요.
지금은 미국에 이민가서 성공하여 잘 살고 있는 활달하고
거칠것이 없는 단짝 친구의 주선으로
그 말로만 듣던 올 나이트라는 것을 하게 되었답니다.
부모님이 여행떠나신 어느 친구의 집을 빌려서
남녀가 10명쯤 모여서 먼저 짝짓기 부터 했지요.
눈이 서글서글하고 입술이 정열적으로 생긴 그남자.
피부조차도 어쩜 그리 희고 곱던지요.
한눈에 반하여 내심 그 사람과 짝이 되길 고대했었는데..
오--
하늘이 도우사 바로 그 남자와 제가 짝이 되었답니다.
얼마나 좋던지요.
내게 떨어진 큰 행운이 믿기지 않을 지경이고 그저
황홀하기만 했답니다.
운이 지독히도 없었던 제 친구는 그만 부족한 남자의 수에
밀려 문을 지키는 문순이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남의 불행은 곧 나의 행복.!!
ㅎㅎㅎㅎㅎ
저 절대루 심보 고약한 사람은 아니어서
말로는 심심찮게 그 친구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드디어 게임이 시작되었지요.
손뼉치기 놀이도 하고,
쎄쎄쎄-- 이런 것도 했던것 같아요.
아직 동이 트려면 멀었는데 놀이는 한계에
달하고 조금씩 지루해져 가는 중이었는데
집주인인 친구가 어느 구석에 숨겨진
포도주 한병을 들고 왔어요.
모두들 아기 예수님이라도 만난듯 반갑게
한잔씩 따라서 마셨는데..
오호 통재라..
제 짝꿍인 그 남자는 술 알레르기가 있었던지
그만 그 포도주 한잔에 넉 아웃이 되어
세상 모르고 잠이 들어 버렸지요.
허전하고 무색해진 마음 숨기며 열심히 이런저런
게임을 했는데 짝이 없어서 그런지 번번히
지고 말았지요.
벌로는 팔뚝 맞기를 했는데 처음부터 제게 은근히
눈길을 보내던 또 다른 남자가 기회는 이때다
하면서 제 팔목을 잡더군요.
흐흐흐..
지가 내처럼 연약한 여자를 우째 때리겠노--
속으로 은근히 그리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답니다.
그사람 제가 자기 짝이 안된 것이 분앴던지
(ㅋㅋㅋㅋ 이건 순전히 그때 공주병 말기를
앓고 있던 저의 착각임)
우왁스럽게도 제 팔뚝을 잡더니 이거 완전히
있는 힘을 다해서 때리는 겁니다.
아---
비명과 함께 눈물이 찔끔 나올정도 였습니다.
연약하고 갸녀린 팔뚝이 벌겋게 부어 오르고 있는데
그때까지도 쿨쿨 잠만 자고 있던 내 짝꿍
얼마나 원망스럽던지요.
드디어 새벽 먼동이 부옇게 터올 무렵
짝꿍은 눈을 떴습니다.
젖어 있는 제 눈을 본 그 사람
그때서야 심상치 않음을 깨달았던지 사유를
묻더군요.
문지기 친구가 여차저차하여 그리 되었다 하니
그사람 절 때린 그 사람(둘은 절친한 친구사이)을
사정없이 패대요.
ㅎㅎㅎㅎㅎㅎ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부른다.--
그리고...
모두들 부스스한 모습으로 아파트를 나서는데
하늘에선 함박눈이 펑펑 쏟아졌습니다.
그야말로 환상적인 화이트 크리스마스였습니다.
그 후로 그 무책임한 짝꿍을 한번 다시 만났습니다.
싫다는 데도 미안해서 그런다면서 굳이 차한잔 하자고
해서요.
그런데..
찻집에서 오랜시간 마주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그 잘생긴 외모와는 반대로 머릿속이 뎅뎅하고 소리가 날것처럼
텅빈 사람이었지요.
사람은 절대 외모로 평가해선 안된다.!!
또 하나의 진리를 터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해마다 년말이 되고 성탄절이 올때면 그 시절
철없이 놀던 때가 생각나서 나도 모르게
쓴 웃음을 짓곤 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