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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주부의 알.콩.달.콩//15. 싸움의 주제


BY 꼬마주부 2000-07-31

15. 싸움의 주제

결혼 전에 신랑과 저는 무척이나 싸웠어요.
신랑은 하루에 한 번을 전화하지 않고 전화하더라도 10 분 이상을 통화하지 않고 내가 말했던 것을 기억해내지 못하고
내가 다른 이를 만나도 질투하지 않고 사랑한다고 말해보라고 하면 "밥이나 먹어." 그러는 , 연애에는 토통 분위기라고는
없는 신랑이 못마땅했어요. 그럴 때마다 저는 "아, 이 남자는 날 겨우 이 만큼만 사랑하는구나. 그래 이 사람은 사실은
날 좋아하지 않는 거야. 나 혼자만 애타게 좋아하는 거였어..."하면서 없는 고민도 사서 가슴 아파 했죠.
저는 이 남자가 오로지 나만 봐서 숨막히도록 나만 불러댔으면 좋겠는데, 이 남잔 먼 곳만 보는 표정을 짓고 있으니 제
가 화가 날만하겠죠? 허구헌날을 싸웠어요. 당신이 날 사랑하기나 하는 거냐, 얼만큼이나 사랑 하는 거냐, 오로지 나만
부둥켜 안고 있으면 안되겠냐...내가 화가 나서 뭐라고 뭐라고 화를 내면 신랑도 뭐라고 뭐라고 화를 내요. 그걸 꼭 말을
해야 알겠냐, 앞도 쳐다봐야지 어떻게 너만 쳐다보고 있으라고 하냐, 나 보고 그러라고 하지 말고 너가 그러면 안되냐...
끊이지 않는 사랑 확인의 싸움이었지요.

결혼을 해서도 싸우는 것은 여전해요.
하지만 연애 때 늘상 싸우던 그 내용의 싸움은 결혼1~2개월 때 뿐이었어요.
요즘 신랑과 싸우게 되는 이유는 그놈의 돈 때문이예요.
두 식구 뿐임에도 웬 돈이 그렇게 들어가는지, 별로 쓴 것도 없는데 순식간에 돈은 바닥이 나곤 하거든요.
안되겠다 싶어서 신랑의 주머니를 좀 노렸어요.
뻐꾸기 시계가 약이 닳아 할아버지 목소리를 내도 신랑이 먼저 발견할 때까지 못들은체 했다가 신랑이 건전지를 사 오
겠금 했구요. 갖고 싶은 몇 만원짜리 지갑 사 달라고 며칠을 조르다가 대신 PCS료 10,000원 내주겠다며 결국엔 손에
쥐었구요. 통닭이 먹고 싶은데 돈이 없다면서 불쌍한 표정으로 사달라고 하고 신랑이 거스름을 받을 때 재빨리 낚아채서 안
주는 수법으로 몇 천원을 확보하기도 했어요.
그러자 신랑은 슬슬 저의 악의를 눈치채고 나름대로의 대책을 모색하는 것 같았어요.
그러던, 이틀 전이예요. 신랑의 휴가 첫날이었어요. 우리는 딴 데 피서가면 괜히 돈만 더 드니까 바다 비스꾸리한 '아쿠아
리움'으로 피서를 가자고 했어요. 쓸 돈은 딱 100,000원으로 정하고 신랑에게 관리하라고 줬어요. 저는 또 딴데 돈을 쓰게
될까봐 아예 지갑을 놔두고 갔지요.
하루종일 신나게 구경하고 집으로 들어오는 차안. 주차비도 안 들었고 서울랜드도 가자는 신랑의 요구를 야박하게 거절했으니
예상보다 꽤 돈이 남았을 것이라는 계산이 나왔어요. 괜히 신이 났어요.
신랑에게 웃으면서 남은 돈 달라고 했지요. 그러자 신랑은 "30,000원이 남았는데 10,000원은 원래 내 지갑에 있던
돈이었어."그러는거예요. 갑자기 기분이 상했죠. "무슨 소리야. 다 내가 준 돈이잖아. 무슨 돈이 있었다구 그래? 빨리 다
내놔." "아냐, 천 원짜리로 10장쯤 있었어." "거짓말 하네. 계산해 볼까?" "해 봐라." 신랑은 굳센 표정으로 자신만
만해 했어요.
"기름2만원, 세차2천원, 입장료2만5천원, 점심 만원, 소세지랑 콜라2천원, 책자2천원, 튀김그릇5천5백원, 오락3천원, 음료
수1천5백원, 핸드폰줄2천원.....7만3천원...2만7천원이 남아야하네. 뭐야, 그럼 3천원 있었다는 소리잖아!" 저는 신랑이 정
확하게 말하지 않은 것에 화가 났어요. 저의 아까 웃던 얼굴은 어데로 사라지고 신랑은 목소리를 높였어요.
"아니야. 10장쯤 있었어." "거짓말! 3천원이라고 계산나오잖아." "아니야, 니가 잘못 계산한거야." "뭐가 잘못 계산
해!" "아니야." "빨리 7천원까지 내놔." 3만원 남았다는 소리를 안 들었으면 아무렇지도 않았을 텐데 3만원이 남았다
는 소리를 듣고 나니까 그 7천원이 아까워 지는거예요. 생각해 보세요. 3만원 남았다고 생각했다가 2만원이 막상 손에
쥐어졌을 때를요. 아마 다들 저처럼 순식간에 만원을 도둑 당한 것 같아서 억울한 생각까지 들거예요. "빨리 안 내놔?
7천원이 어딘데 안 주려구해!" "7천원이든 만원이든 신랑한테 좀 그냥 주면 안되냐?" 사실, 그깟 7천원, 사랑하는 신랑
한테라면 줄 수도 있지만 신랑이 그렇게 안 주려고 하니까 더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거예요. 이번엔 인상까지 썼어요.
"7천원이 어딘데! 빨리 안 줄꺼야?" "알았어, 알았어. 그만 해. 너 다 가져." 신랑은 주머니에서 3만원을 꺼내더니
내 던지듯 제 무릎에 놓았어요. "넌 뭐 내 돈 가져 간적 없냐? 지난 번에 통닭 먹었을 때도 너가 거스름돈 다 가져갔
잖아. 그렇게 신랑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가야 속이 시원하겠냐?" 속이 상했어요. 속이 상하고 돈 7천원 때문에 분위기 험
악하도록 싸우는 내가 참 못?榮募?생각도 들었어요. 결혼 전에는 신랑과 서로 얼마나 사랑하는가, 때문에 싸웠는데 지금은
돈 7천원 때문에 눈에 불을 켜고 싸우다니. 신랑도 내가 실망스러웠는지, 속이 상했는지 화난 표정으로 아무말도 안해요. 저
는 여전히 퉁퉁한 목소리로 "됐어. 만원가져." "싫어." "가져." 억지로 신랑 주머니에 만원을 구겨 넣었어요.
그러고도 한참을 신랑과 저는 말을 안했어요. 집에 와서도 썰렁한 분위기는 계속 되었어요.
신랑은 표정이 굳은 채 tv를 보고 저는 월말이기도 해서 가계부를 정리했어요. 한 30분 쯤 계산기 두드리고 기록하고 그
러다보니까 이것 저것 합해서 20여만원이 남는거예요. 결혼하고 처음 흑자가 난 순간이었어요. 너무 기뻐서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데 분위기상 그러지는 못하고 괜히 혼잣말하듯, 신랑 들으라고 얘기했죠. "그래도 이 번달엔 신랑 주머니 축 냈더니
20만원이나 남았네?" 신랑이 고개를 번쩍 돌려요. 내가 무표정으로 쳐다보니까 신랑은 좋아서 벌써 입이 올라가고 있어요.
"정말? 돈이 남았어?" "응" "으허허. 웬일이야? 우리가 돈이 다 남고?" "뭐, 신랑 주머니 축 내서 그런거지." "으허
허. 잘했네? 예쁘네? 으흐흐." 그리고 우린 한참을 좋아서 웃었어요. 서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요.

이휴, 그 놈의 돈이 뭔지. 이제 8개월 된 우리 부부까지 웃게 하기도 싸우게 하기도 하는 것을 보니 그 놈의 돈이 요물이
긴 요물인가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