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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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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이야기...[11]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밤에...


BY ns05030414 2001-12-12


낙숫물이 죽죽 흘러내리고 주위가 수런수런 하는 소리에 잠이 깼다.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빗줄기가 약해 질 낌새가 보이지 않자 아버지는 물꼬를 터 놓기 위해 논에 가 봐야겠다고 하였다.
물이 흘러나가지 못하도록 물꼬를 막아놓은 논에 비가 많이 와서 물이 많아지면 논둑이 무너져 버린다.
그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갑자기 많은 비가 내리면 한 밤중이라도 물꼬를 터 주어야 하는 것이다.
아버지라고 단 잠을 자다 장대비를 뚫고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나서는 일이 즐거울 리 만무하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쉽게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읽은 나는 아버지에게 제의한다.
제일 먼 곳에 위치한 새보뜰 너 마지기 논에는 내가 다녀오겠다고…
아버지가 혼자서 여러 곳을 다니기엔 너무 힘들 테니까…
아버지는 괜찮다고 어서 잠이나 자라고 했지만 어머니가 거들었다..
그렇게 하면 좋겠다고…
그리하여 손 전등을 들고 괭이를 둘러메고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나섰다.
빗줄기는 많이 약해져 있었다.
집을 나설 때는 아버지를 돕는다는 마음에 즐겁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너 마지기 논에 가기 위해 마을을 벗어나 철길로 접어들었을 때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철길에서는 거의 해 마다 어린아이들이 기차에 치여 죽었다.
애기 귀신이 붙어서 그렇다고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무당을 불러 굿을 하기도 하였다.
희고 기다란 천을 휘두르며 무당이 춤을 추던 모습이 떠 올랐다.
갑자기 뒤에서 누가 끌어당기는 것 같고 쫓아오는 것만 같아 오금이 저렸다.
발걸음을 빨리 해 보았으나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더욱 무서운 생각만 들었다.
빨라진 내 발걸음 만큼이나 귀신도 빠르게 날 덮칠 것만 같았다.
머리끝이 솟아 오른다는 말이 그야말로 실감되었다.
그 때 아버지가 평소 자주 하던 말이 생각났다.
귀신은 마음이 약한 사람에게나 나타나는 것이라던 말이…
아버지는 그랬다.
심지가 굳은 사람에게는 귀신도 범접을 못하는 것이라고…
난 약한 것이 싫었다.
강하고 싶었다.
세상의 어떤 남자보다 강하고 싶었다.
여자라서 물리적인 힘은 남자만큼 강할 수 없을 지 모르지만 마음까지 약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귀신에게도 지고 싶지 않았다.
뛰듯이 걷던 발걸음을 천천히 떼기 시작했다.
그러자 무서움이 한결 줄었다.
스스로에게 말했다.
‘귀신도 나를 어쩔 수 없어. 난 누구보다 마음이 강한 사람이야 ‘하고…
그리고 휘파람을 불었다.
처음엔 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지만 자꾸 하니 평소처럼 휘파람이 나왔다.
더 이상 무섭지 않았다.
물꼬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도 아이들이 많이 사고를 당한 장소를 지날 땐 마음이 편안하진 않았다.
그러나 그 것은 무서움은 아니었다.
단지 조금 불편한 마음 정도였을 뿐…

그 날 밤은 내게 참으로 소중한 밤이었다.
두려움이 나를 휩쌀 때 그 날 밤을 떠올리면 마음이 가라앉곤 하였다.
어떤 어려움도 날 무너뜨리진 못 할 것이라는 오기가 솟아나곤 하였다.
어머니 아버지에게 감사한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손전등과 괭이를 들려 내 보내 준 것에 감사한다.
나도 아이들이 세상의 모험과 부딪쳐보고 싶어할 때, 선선히 허락하는 엄마가 되고 싶다.
아이들이 살아가면서 내내 도움이 되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