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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의 뇌진탕 책임은 누구에게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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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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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이야기...[9]별명


BY ns05030414 2001-12-11

'쪼깐 강아지'
초등학교에 입학하니 언니의 담임 선생님이 날 부르는 이름이었다.
'벌렁코'라는 별명을 가진 총각 선생님이었는데, 큰 언니의 담임을 했다가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와 작은 언니의 담임을 하고 있었다.
그 선생님은 작은 언니를 '강아지'라고 부르고 있었기에 내 별명은 자연스레 '쪼깐 강아지'가 된 것이다.
'쪼깐'은 '작은'의 전라도 사투리다.

나는 그 별명으로 불리우는 것이 싫었다.
별명이 싫었다기 보다 그 선생님이 날 붙잡아 수염이 꺼끌꺼끌한 자기 볼에 부비는 것이 더욱 싫었을 것이다.
그 선생님은 나를 마치 공 다루 듯 하였다.
번쩍 들어서 공중에 훌쩍 던지고 다시 받고 던지길 좋아하였다.
선생님의 팔을 꼬집고 싫다고 앙탈을 부려도 놓아 주질 않았다.
몇 번 그 일을 당한 후, 나는 그 선생님이 멀리서 보이면 슬그머니 피해 달아나 버렸다.
지금 생각하니 그 것도 즐거운 추억 중의 하나다.
참 좋은 선생님이었었는데...

몇 년 전, 전주 시내를 걷다가 그 선생님과 우연히 마주쳐 인사를 하였더니 못 알아보았다.
하긴 사 십이 넘은 아줌마를 보고 초등학교 일학년 때 모습을 연상하길 기대한 내가 어리석었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그 선생님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비록 여드름이 여기저기 솟아 있던 총각 선생님의 얼굴이 주름 가득한 노인의 얼굴로 변해있긴 했어도...
언니 이름을 말하자 선생님은 금방 기억하였다.
언니가 박사가 되어 미국에서 잘 살고 있다는 말에 흐뭇해 하였다.
'쪼깐 강아지'는 알아보지 못하였어도, 사 십 년 전 제자의 이름을 듣고 금방 기억해내는 선생님의 사랑이 고마웠다.

소사 아저씨에게 우리는 모두 그저 '강아지'였다.
소사 아저씨는 학교가 설립될 때 부터 계속 근무하였기에 우리를 모두 잘 알고 있었다.
큰 언니, 작은 언니, 나, 동생, 모두를 그 아저씨는 '강아지'라고 불렀다.
우리만 보면 실눈이 되면서 얼굴 가득 웃음이 번지던 아저씨였다.
우리를 귀여워한 이유를 지금도 알 수 없지만, 우리를 보면 '이뻐 죽겠다'는 표정이 얼굴 가득 번지곤 하였다.
종아리를 맞고 부비는 나를 유리창 너머로 지나가다 보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눈을 찡긋하고 소리없이 '맞았냐?'하는 입모양을 하고 놀리기도 하였다.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각자의 특징에 맞도록 다른 별명을 지어 주었다.
셰퍼드, 불독, 진돗개, 똥개.
할아버지가 우리에게 지어준 별명이다.
천방지축 날 뛰는 남동생은 '똥개'이고, 툭하면 화를 잘 내고 으르렁거린다고 작은 언니를 불독이라고 하였다.
작은 언니의 심술로 인한 피해를 가장 많이 본 나는 정말 작은 언니에게 어울리는 별명이라고 내심 고소해 하였다.
큰 언니는 의젓하고 말 잘 듣고 잘 생긴 모습이 '셰퍼드'를 연상시킨다고 하였다.
나는 내 별명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그 이유도 최고로 좋았다.
조그만게 당차고 영리하다고...

히히..., 우리집 똥개하고 불독이 이 글 보면 화내지 않으려나 모르겠다.

할아버지도 소사 아저씨도 초등학교 시절의 선생님들도 모두가 그리운 얼굴들이다.
이름이 아닌 별명으로 우리를 불러 사랑을 표현하던 사람들이다.
그 들이 우리 옆에 있을 때, 세상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그 들이 우리에게 쏟아 준 사랑을 누군가에게 되돌려 줄 나이가 되었다.
훗날 그 누군가가 나를 기억하며, 지금의 나 처럼 넉넉한 사랑 속에 잠시라도 잠길 수 있도록...
내 주위에 있는 아이가 내 얼굴만 보고도, 내가 그를 사랑하고 있음을 느끼도록 사랑이 넉넉한 어른이면 참 좋을텐데...
나는 분명 그런 사랑을 받고 컸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