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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길(71) *남편과 아이들의 시장바구니*


BY 쟈스민 2001-12-10

토요일 오후 퇴근하고 아이들과 점심을 먹고 나서 느긋하게 향기좋은 차 한잔을 마신다.

한 주일간의 쌓아두었던 피로가 몰려와 온몸이 나른한 것이 꼼짝 달싹하기 싫어져서 잠시 읽고 있던 책마저 놓아야 했다.

잠을 두눈에 매달고서 책을 읽기란 늘 제자리 걸음이니까 일찌감치 포기하고 자리에 누워 달콤한 낮잠에 빠져든다.

그날 따라 이른 귀가를 한 남편은 몇날 며칠 아이들에게 시달린 탓일까 ... 아이들의 소원대로 롤러브레이드를 새로 사 주기 위해 할인매장엘 가자고 날 깨운다.

하루가 다르게 발이 크는 아이들에겐 필요한 것도 참 많다.

토요일 오후의 낮잠은 나에게 피로회복제와도 같은 요소이니 그런 제의마저 귀찮게 여겨져 아이들과 남편만 보내고 난 계속하여 잠을 잤다.

몇 시간이 그렇게 흐르고, 집안으로 어둠이 슬슬 들어올 즈음
난 조금쯤 가벼워진 몸을 하고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나 혼자서 잠든 사이 나간 것이니 문단속은 하였으련 하고서 현관으로 가 보니 이게 웬일? 현관문도 잠그지 않은 채 자는 날 두고서 쇼핑을 간 것이다.

현관문을 열어 두고서도 그렇게 단잠에 빠질 수 있는 내가 참 천하태평 무사안일한 사람같아 보였다.

그렇게 사소한 부분조차 챙기는 것에 익숙지 못한 남편과 아이들에게 무언의 화를 내며 소파에 앉아 남은 잠을 떨구어 내고 있을 때쯤
초인종을 누르는 아이들 ....

나가 보니 두 아이의 양손에는 한보따리씩 시장 본 것들이 들려져 있었다.

아이구... 내가 못말려...
너희들 어서 들어와 봐 ... 엘리베이터에서 혹 누구 만나지 않았니?
난 그것부터 다그쳐 물었다.
그리곤 아이들의 짐을 받아 놓으니 아이들은 온 거실에 그날 사온 물건들을 죄다 꺼내 놓는다.

아이들은 자기들이 사고 싶었던 물건을 잔뜩 사갖고서 돌아오는 길이니 마냥 즐겁고 그랬는지 얼굴들이 발그스레해져서 웃으며 봉지 봉지 들고 서 있었던 거다.

나는 그 순간 내 아이들이 마치 엄마도 없는 아이들마냥 시장본것들을 들고 있는 걸 보니 맘에 걸리기도 하고, 이웃사람들이 보았다면
그런 내가 또 얼마나 한심한 엄마로 보일까 걱정도 되었다.

남편은 아이들을 집앞까지 데려다 주고 동창회에 간다고 했나보다.

아이들이 그토록 사달라고 조르던 롤러브레이드와, 하얀색 운동화
두 켤레, 한 보따리의 과자... 등등의 물건들로 봉지안은 그득했다.

거실로 하나 늘어 놓고 아이들은 신어보고, 난리가 났다.

내 어릴적 오일장이 서는 날이면 내 엄마도 날 위하여 꽃고무신을
사오시곤 하였는데 ...

겨울이라고 흰 운동화 안 사주는 엄마를 재쳐두고, 아빠를 꼬득여
기어이 흰 운동화를 신고마는 아이들을 보면서 잠시 나의 어린시절을
떠올리며 한참동안이나 정리할 생각도 앉고서 앉아 있었던 나를
내 아이들은 미처 몰랐겠지 ...

시골에서 갖고 온 대파가 한 푸대나 있는데도 대파 한단, 콩나물,
브로컬리, 닭고기 등등을 사서 봉지에 담아넣은 남편이 우습기도
하고 ...

이제껏 살면서 처음인 그런 모습 ...
나 없이 아이들만 데리고 가서 시장을 보는 모습이 고맙기도 하면서도 왠지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내가 없음으로 해서 편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겨울옷차림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흰 운동화를 타박하고,
어련히 알아서 저녁밥 해줄텐데 그런 것들 사서 아이들에게 들려주었다고
내게서 좋은 소리 못들은 남편이었지만 그날 만큼은 아이들 앞에서
힘이 들어간 목소리로 아이들에게 이것 사줄까... 하고 물었을
남편의 모습이 눈에 선연했다.

엄마 선물은 왜 안사왔느냐고 묻는 엄마에게 아이들은 초콜릿이 엄마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한다.
단 거 싫어하는 나는 기꺼이 한 알을 까서 입에 넣으며 아이들의 즐거움을 잠시 나누어 보기로 하며 토요일 저녁은 그렇게 저물어 갔다.

아이들의 말에 의하면 엄마와 아빠의 차이는 컸다.

엄마는 엄마의 생각이 안된다고 시키면 아무리 아이들이 조르더라도
절대로 사주지 않는 반면, 아빠는 아이들의 생각을 거의 들어주는
편이었으니 부부간에 그런 것들로 자주 의견충돌을 일으키기도 한다.

오늘 아침에 아이들은 겨울옷차림엔 좀 그렇다 싶은 아빠가 사 주신 하얀 운동화를 신고서 학교에 갔다.
좀 덜 어울리는 차림이라 해도 아이들에게 그것은 소중한 것일 수도
있음에 난 잠시 나의 잔소리를 접어 두기로 했다.

아이들은 그 운동화로 오늘 하루 가볍고, 신나는 발걸음을 내딛었을까?
아뭏튼 곁에서 지켜주고, 보아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에게 힘이 될수
있을 터이니 부모의 그늘이라는 것은 그래서 소중한 것일 거란 생각이
든다.

살다보면 이런 날, 저런 날들이 함께 찾아오는 듯 하다.
늘 같은 듯 하여도 같지 않은 하루 하루가 우리에게 찾아온다.

아이들에게 사랑을 전하는 일은 많은 돈을 들이지 않고서도 할 수가
있는 듯 하다.

가끔씩 시간을 내어 온 가족이 함께 공유하는 부분을 늘여간다는 건
더없이 소중할 거 같다.

그러면서 난 또 잠때문에 함께 가지 못한 나를 잠시 꾸짖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