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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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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만의 친구와의 대화(7)


BY agadacho 2001-02-15

참~, 올해 서울은 눈이 허벌나게 내리는구나...
겁나게 무섭게 내려 쌓이는데 아파트 현관 밖으로 발을 내딛으니 발목까지 푹 묻혀 버리고 만다. 거의 공포까지 느껴지는 눈 내림이다.

네가 있는 곳도 이렇게 눈이 많이 오니? 다리가 불편한 너에게 눈은 결코 아름다운 낭만일 수만은 없을 것 같은데... 연이은 나의 메일을 받아보고도 아직 답장이 없는 것을 보면 기숙사에 있던 아들 놈이 집에 와서 바쁜 모양이다... 그럼, 이야기 하여 달라는 친구는 없어도 할 말이 많아 손이 근질거리는 나의 이야기 진도부터 또 달려가 볼까?

철이 들면서부터 아기자기한 삶의 재미를 별로 느껴보지 못한 나의 또 하나의 삶에의 반항(?)은 '멋내지 않기'였다. 그 실천 세부사항으로 <화장하지 않기>, <파마하지 않기>, <치마입지 않기>, <이쁜 옷 입지 않기> 등...

그래도 회사에 출근하여서는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하였는지 치마로 갈아 입고 근무를 하였는데, 그것도 한 벌로 3개월을 버티고 입어대었더니 같은 부의 대리님이 나를 살며시 불러 돈을 줄 터이니 새 치마 좀 사 입으라고 신신당부... 그래서 새로 추가하여 두 벌로 갈아 입기 시작한 치마가 우리 큰 언니가 20년 전 아가씨일 때 입고 다녔던 일명 '타이트 스커트'.

70년 초반은 미니스커트와 롱부츠가 대유행하던 시절이라 언니가 입던 미디 스커트를 허리를 둘둘 말아 무릎 위까지 끌어 올려서 입었었는데, 그 때 그 대리님의 이 새로운 메뉴인 이 치마를 보고 웃음을 터트리고 말으셨지... 하기사 그 때 무서운 사람도 없었어...

머리는 파마는 물론 하지 아니하고, 가능한 짧은 숏커트로 짜르고는 집에서는 더운 물 사용하기가 어려우니, 뜨끈뜨끈한 물이 콸~콸~ 나오는 회사 화장실에서 살짝 감고는 개운한 기분으로 오후의 근무를 시작하곤 하였지...

그런데 어느 날 화장실에서 일을 보고 나오는데 빌딩 청소하시는 아줌마가 입이 잔뜩 부어가지고는 "어떤 얌통머리 없는 것들이 회사 화장실에서 머리를 감아 이렇게 세면대를 다 막히게 하는지 몰라?"하며 씩!씩!거리고 계신 것이야... 지은 죄가 있는지라 붉어지는 얼굴을 옆으로 돌리고 얼른 밖으로 나와 버렸지...

디 떨어진 운동화에 세월의 흔적이 찬란한 여기 저기 뚫어진 바지를 입고 명동, 광화문을 거칠 것 없이 활개를 치고 다녔는데, 그 때 취직한 친구들의 아지트가 광화문 시민회관 뒤의 '렉스'라는 다방이었는데, 어느날 다방에서 서빙을 하는 총각이 쪽지를 들고 우리 테이블로 와서는 나에게 전해 주더라구요... 70년대식 수법의 왠 테이트 신청 쪽지인가 하고 펴보았더니,

_ 대단히 실례의 질문인지는 압니다만 여성이신지요? 아니면
남성이신지요? 지금 저희 친구들과 내기를 하고 있으니 꼭
가르쳐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

기가 막히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고, 시답지않기도 하고... 그 때 네가 무엇이라 대답을 하였던고 하니,

- 가슴을 잘 보시라구요~ -

이 일은 버스를 타고 가던 길에도 한 두번 더 있었는데, 자기 옆에 서 있는 이 사람이 도대체 여자인지, 남자인지 궁금하여 병이 날 지경이 된 사람들이 실례지만 "여자예요, 남자예요?" 하며 묻곤 하였지...
고등학교 졸업하고 승가대학에 들어가 스님이 된 친구를 산사에서 만나보았을 때 내가 느꼈던 바로 그 기분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결혼한 후 그 친구의 절을 다니는 한 친구와 그 녀석이 있는 도봉산 밑의 절을 ?아가 서먹한 마음으로 마주 대하였는데 진한 눈섭에 부리부리한 눈, 호탕한 모습이 진짜로 잘 생긴 남자 그 얼굴이더라구... 왜, 나도 눈썹 진하기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아니냐~

이 만행이 시들해진 것은 한참 지나서 명동에서 당시 영부인의 조카벌되는 육씨 성을 가진 고3때 짜꿍을 만나고 난 다음이었는데, 이 녀석 고등학교 때 제법 넉넉한 몸매로 통통함을 자랑하고 다녔는데, 그간 미모에 신경 좀 썼는지, 긴 생머리에 입술까지 바르고 제법 호리호리한 몸매를 자랑하고 있더라구...

길에서 우연히 만나 안부나 묻고 헤어지려 하는데 나에게 꼭 할 말이 있다며 다방으로 끌고 들어가, 아주 진지하고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 너, 너무 이렇게 자학적으로 살지 말아라~ 얘~ 미운 얼굴도 아닌데 좀 예쁘게 가꾸고 인생을 즐기면서 살아 봐. 보기에 너무 츠근해~

에이고~ 인생을 즐기기는 나도 나 나름대로 즐기고 있었는데 아무튼 눈에 튀기는 튀었던 모양이야~ 별로 평범하지 않았다고나 할까? 다 한 때의 자기방식의 개성의 고집이었겠지, 아마~~~